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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18.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이야기가 고픈 밤 (feat. 툴루즈 로트렉)

 올해는 설 연휴 마지막 날과 생일이 겹쳤다.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설 연휴에 생일인 게 싫었다. 겨울 방학 때여서 반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받기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설까지 겹치면 내 생일은 저 멀리 사라진다. 물론 설이니까 친척들에게 특별히 더 축하를 받을 수 있지만, 세뱃돈과 생일선물이 퉁쳐지는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원치 않는 바였다. 하긴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친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생일에 대해 점점 무뎌져, 내 생일을 기억해주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마음 쓰지 않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식당을 예약해 두었던 예전과는 달리 나도 점점 내 생일 축하에 게을러지고 있다. 요즘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가장 열렬히 일깨워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휴대폰에 쏟아지는 각종 문자들이다. “박소현 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1월 안에 물건을 구입하시면 10%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정말 하루에도 몇 개씩 지치지도 않게 도착한다. 가끔은 고맙기도 한 게,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지인들의 문자도 이렇게 많이는 안 올 것 같다.


 생일처럼, 한때는 꽤나 중요한 날로 여겼던 날에 대해서도 무덤덤해지는 나를 보면, 아, 이제는 꽤나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 받고, 작은 일에 눈물 흘리는 나는 아직은 뾰족한 마음을 가진 예민한 사람이다. 이런 예민함을 잘 이용해 안목을 높이고 감각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쓰면 좋을 텐데, 그 방향으로는 좀 더 분발해야겠지. 피아노를 매일 연습하면서 나름대로 예민함을 갈고 닦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못한가 보다. 미술관으로 부지런히 향하는 내 발걸음이 바로 그 대답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툴루즈 로트렉”전에 다녀왔다.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라 불렸던 로트렉은 물랭 루즈의 무용수들이나 창녀들, 가수들, 노동자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그는 인물을 묘사할 때 절대 미화해서 그리는 법이 없었다. 체코 출신 화가, 알폰스 무하의 뮤즈였던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면 이 두 화가가 동일인물을 그렸는지 의아할 정도다. 화장 전과 화장 후의 차이를 뛰어넘는, 성형 전과 성형 후의 얼굴이랄까. 그만큼 로트렉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특히 무대에 섰을 때의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그 사람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의 시선에서 표현하였다. 그러고 보니 가수 이베트 길베르는 로트렉에게 자기 얼굴을 제발 못생기게 그리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절친이었다는데 좀 예쁘게 그려주지. 어쩌면 친했기 때문에 그녀의 쓸쓸한 내면의 괴로움과 처절함이 눈에 더 들어왔을지도 모르지만.

당대 유명한 가수이자 로트렉의 뮤즈였던 제인 아브릴도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더 큰 포스터로 제작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의 진짜 모습에 집중해서 그런지, 로트렉은 사람의 캐릭터도 금방 잡아냈다. 샹송 가수였던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주로 검은 모자에 붉은 목도리, 검은 망토 같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로트렉은 그 모습을 캐릭터화해서 포스터로 그렸다. 그의 포스터들은 선택과 집중으로 이루어지는데,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드는 요소들만 부각해서 단순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포스터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주제가 확실하고, 한 번만 봐도 그 이미지가 강렬해서 잊히지 않고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선택과 집중은 미술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많은 작업들에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다. 유튜브 채널에 대한 개편 작업을 하고 있는 내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갖고 있는 캐릭터는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강조할 수 있을까. 그의 포스터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포스터 <아리스티드 브뤼앙, 자신의 카바레에서>

 로트렉 전에서 나의 관심을 끈 것 무엇보다도 그의 이야기였다. 툴루즈 로트렉은 정말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작고 예쁜 아이로 태어났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근친혼 때문일까. 유전적 결함으로 생긴 선천적 장애와 사고의 여파로, 키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은 로트렉은 상반신은 길고 하반신은 짧은 난쟁이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다. 게다가 부르튼 입술 때문에 침도 흘리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니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소년 시절의 그는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한 채 소외받았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랬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의 아픔을 투영했을까. 뭐가 됐든 그는 사람을 그렸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마음이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이런 나를 사랑해달라고.

로트렉의 생전 모습

 그의 이야기를 모르고 그의 그림들을 봤다면, 꽤나 상업적으로 성공한, 여기저기서 그에게 포스터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을 테니, 돈이나 밝히는 화가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랑 루즈에서 포스터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맨 앞자리에서 쇼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술이었다. 그는 그렇게 물랑 루즈의 일원이 되었고,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물랑 루즈에서 그는 스타였고, 농담도 잘하는 이야깃꾼이었지만,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였다. 그는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고 나중에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빨리 퇴원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릴 적에 봤던 기억을 떠올려 힘차게 말을 타는 모습을 그린다. 결국 그는 “나는 내 드로잉으로 자유를 샀다.” 는 말을 남기고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그림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육체로부터, 아버지의 외면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경마> 얼마나 말을 타고 달리고 싶었을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던 1890년대로 돌아가 처음 본 사람이 툴루즈 로트렉이었다. 그 시절은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데, 로트렉이 그렸던 그 시대의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그래서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는 걸까. 로트렉도 행복했을까. 이렇게 묻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뭔가를 끄적이는 나를 로트렉이 붙잡는 것 같아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다. 분명한 것은 로트렉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거다. 그가 그린 물랭 루즈의 무용수들, 가수들, 창녀들, 노동자들, 거리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삶이 묻어나는 그의 시선도 또 하나의 이야기다. 진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그런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거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 로트렉이 나왔던 장면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고, 진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날이 내게도 올까. 술 한 잔 하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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