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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25.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기대라는 이름으로 (이른 퇴사 선배의 지극히 개인적인 썰)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일이 잘 되면 마음을 비워서 잘 된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기대를 많이 하면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있는데, 그게 작용하지 않아서 일이 더 수월하게 잘 풀린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기대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조금만 잘해도 엄청 잘한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기대를 하면, 대개 그런 편이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실망감도 함께 커진다. 마음의 상처를 덜 입으려면 뭐가 됐든 처음부터 기대는 안 하는 게 유리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상,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마음을 비워 보지만, 그냥 그러는 척할 뿐이다. 사실 기대를 많이 했다고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기대를 거두었다고 일이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노력한 만큼 딱 거기까지고, 거기에 운이 좀 더 따라주고 안 따라주고의 미세한 차이가 있는 정도지 않을까.


 지난 피아노 연주회를 돌이켜보면,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연주회 직전까지, 아니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동안에도 있었다. 프로페셔널 연주자는 아니지만, 생애 첫 연주회지만, 감기가 들어 컨디션은 별로지만, 그래도 근사하게 잘할 것 같다는 그 기대. 하긴 그 기대 하나로 연주회 무대에 앉을 수 있었다. 만약 그런 기대조차 없었다면 처음부터 연주회를 열 엄두도 못 냈겠지. 기대는 멘탈 약한 나도 뭔가를, 혹은 기대 이상의 것을 시도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기대에 기대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도, 기대에 배신당하기도 한다.

연주회는 끝났지만, 여전히 연습하고 있어요. 다음에 또 연주회 해야죠^^

 유튜브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무료한 박아나>라는 콘셉트로 영상을 올릴 예정이다. 개편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이전에 올렸던 영상들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독자 수도 몇 주째 그대로, 조회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개인 소장용이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손을 보기로 했다. 사실 고민의 핵심은 ‘어떻게 바꾸느냐’가 아니라 ‘이대로 접어야 되나’였다. 끈기 하고는 약간 거리가 먼 편인 나는 그만두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원래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걸 하려고 하나, 눈도 아픈데 그만 때려치우는 게 어떨까, 정말 아닌 길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그만두어야 하는 온갖 이유를 대고 나니 드는 생각. 이걸 접으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하나. 나는 또다시 두려웠다.

 그랬다. 나는 뭐하나 제대로 끝장을 보는 독한 사람은 아니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답게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가 생각난다. 뭐, 속은 참 후련했다. 인생의 중요한 뭔가를 내려놓은 나의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보냈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일을 그만둔 나의 무모함은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딱 삼개월은 편하고 좋았다. 남들처럼 매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보기 싫은 얼굴도, 듣기 싫은 목소리도 다 피할 수 있었다. 고통 끝, 행복 시작이랄까.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에 명상을 접하게 됐다. 명상은 신세계였다. 15년 회사 생활 동안 쌓여왔던, 그리고 그만두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시끄러웠던 머릿 속도 조용해지고, 들끓었던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이런 평온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무대가 끝나고, 관객도 다 빠져나간 그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공허하고 따분했다. 다음 무대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슬슬 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했다. 자극이 그리웠다. 그게 싫든, 좋든, 누군가가, 무엇이든, 나를 흔들었으면 했다.

영화 <eat pray love>에서 명상하는 줄리아 로버츠. 저도 명상하러 인도갈까 고민해봤어요. 사진:NEWS1

 뭔가를 조금씩 시도해봤다. 그러나 회사 밖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나운서 생활을 15년한 덕분에 몇 군데서 강연이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방송과 강연은 개념이 달랐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만 같을 뿐. 강연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면서 나는 점점 깨달았다. 내게는 아직 전할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내 나름대로 힘든 일들이 있었다고 해도 누군가에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와 닿지 않는 메아리 같은 것일지도. 어쩌면 좀 더 깨져야 될지 모르겠다고. 한마디로 가슴을 울릴 에피소드가 부족해도 한참은 더 부족했다. 나의 이야기는 이제 고3 올라가는 학생이 대입 준비하느라 힘들어 죽겠다고 재수생 앞에서 하는 칭얼거림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EBS에서 “책으로 행복한 12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 되었다. 책 프로그램이어서 하루에 한 권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두 권까지도 읽고 가야 방송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내용도 모르면서 작가가 써준 대본을 보며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성의 있게 책을 읽고 갔고, 그러면서 독서에 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책으로 행복해지고 있었는데, 행복이란 짧아야 제맛인 것인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방송도 열심히, 책도 열심히 읽었던, 그런 열심의 날들이 끝나버린 나는 넘치는 시간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겁이 났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내 빈 시간들을 채우려고 애썼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무료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무료했다. 무료함은 내 일상을 지배할 작정이었나.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책으로 행복한 12시> ,  라디오 디제이 시절이 그립네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무료함을 허락하지 않기로 한 것이. 나는 뭔가를 계획하다가, 어느새 하고 있었고, 그다음으로 넘어가 있었다. 내 일상에 무료함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무료함을 ‘기대’라는 것으로 슬그머니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팟캐스트도 제작하고, 피아노 연주회도 열고, 유튜브에 도전하고. 잘 될 거라는 기대로, 그 기대 하나만으로 크고 작은 도전들에 도전하고 있다. 잠시 강연했던 시절에 깨우쳤던 그대로, 깨지고 또 깨지면서, 그렇게 내 미약한 경험들을 모으고 있다. 모이고 모이면 창대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런 기대의 힘으로 무료함의 시간들을 물리치고 있다.


 “그냥 다 내려놓고 편히 지내도 되잖아. 왜 그렇게 뭘 하려고 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고 욕심이라고도 한다. 뭐,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치 못해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다. 기대가 사라진 내 일상은 무료할 것만 같아서. 무료한 일상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기대의 힘도 예전같지 않고, 뭔가를 시도할 기력도 떨어지면, 그때부터나 무료해지면 안 될까.


 계속 기대만 하고 싶지도, 계속 도전만 하고 싶지도 않다. 무작정 시도만 하는 허황된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는 나의 도전 앞에 “성공적인”이라는 말도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지.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뭘 할지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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