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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04.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make it right

 2020년 1월 1일. 새해가 주는 효과는 놀라웠다. 하루 전만 해도 의욕이 없었던 나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달라졌다. 새해 첫 날을 맞아 묵혀 두었던 플래너를 꺼내 새해의 계획을 적어본다. 뭐 놀라울 정도로 작년의 계획을 그대로 복사한 것 같지만, 그래도 1번, 2번, 3번 적어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친김에 어린 시절 방학 때 동그란 원을 그린 다음 시간을 나눠서,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고, 언제 숙제하고, 언제 놀지를 적었던 생활계획표도 그려보고 싶었지만, 그런 통제를 받을 나이는 지난 것 같아 접는다. 단순히 1월 1일이라서 바닥으로 꺼졌던 나의 의욕이 되살아났을까. 수많은 1월 1일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 일어난 이 마법 같은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

요즘 아이들도 이렇게 하는 군요. 사진 : 이투데이

 미국으로 건너가 일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뉴욕에서 알았던 친구인데, 현실에 안주하는 법이 없이 늘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후배다. 지금은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낯선 환경에서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는 또 다른 업무를 맡아 해쳐나가고 있다. 그녀와의 대화는 대부분 일에 관련된 것들인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지만, 다른 사람이 뭘 하고 사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미국 회사를 다니면 어떨까. 영화 ‘인턴’에서 봤던 것처럼 뭔가 자유로운 분위기일까. 동료들과는 어떤 식으로 친해질 수 있을까. 퇴근 후의 모습도 궁금하다. 가본 적은 없지만, 후배의 이야기만으로 대충 상상이 되는 미네소타의 어느 분위기 좋은 바에서 동네 수제 맥주를 즐기고 있을까.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온다는 그곳은 부츠가 필수품이라고 하는데, 짝이 맞지 않은 부츠가 차 안에 늘 찌그러져 있겠지.

후배의 인스타그램 속 미네소타 풍경, 가보고 싶다. 사진:Boon

 뉴욕에 있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에 우린 많이 젊었고, 아니 어렸다. 외로움 따위는 느낄 새도 없었고, 뭘 해도 즐겁고 뭘 봐도 새로웠다. 그랬던 나도, 그녀도 그때보다는 자주 시큰둥해지고,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각자의 삶에 바쁜 친구들과 만나기도 어렵다. 특히 타지에 사는 그녀는 처음에 어울릴 친구가 없어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각자 다른 환경이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녀의 외로움이 상상이 된다. 우린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안 된다, 혼자 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렇게 공항 가기 직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요즘 의욕이 떨어졌다는 내게 브레네 브라운의 강연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좋은 콘텐츠를 공유하는 친구처럼 고마운 존재는 없다.


 며칠 뒤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제법 자리를 잡은 후배다. 회사 다닐 때는 내가 선배였지만, 유튜브에서는 선배인 그녀가 그날따라 무척 커 보였다. 본인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직 아니라지만, 그녀의 유튜브는 햇병아리인 내게는 대단한 성공으로 보인다. 물론 그녀도 그녀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럴 테지만, 뭐든 상대적인 거니까. “유튜브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좋아요. 요즘에 주변 사람들에게 유튜브 시작하라고 권하는 저를 보면서 느낀다니까요.” 나도 언젠가는 남들에게 해보라고 권할 날이 올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거니까,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좋아요. 그동안 해왔던 일 중에 온전히 제가 주인인 것은 없었잖아요.” 물론 공감한다. 나도 주인의식을 갖고 내가 찍고 내가 편집도 한다. 결과가 별로여서 그렇지. “선배님이 의욕이 생기면 그때 다시 시작하셔도 돼요.” 내가 능력이부족한 건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구독자수는 어떡하지?

www.youtube.com/c/legatopark

 후배와 헤어지고 마음이 씁쓸했다. 요즘 의욕이 떨어졌던 게 유튜브 때문이었을까. 피아노 연주회를 기획하고 도전했을 때만 해도 쿨한 능력자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뭐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내는 못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뿌연 날씨처럼 마음도 답답하다. 뭔가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 미국 친구가 언급했던 브레네 브라운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치심이나 취약성에 관한 연구를 해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마음 가면’이라는 책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사랑해주면 나는 가치 있는 존재야.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면 나는 가치 없는 존재야.’  수치심은 당신에게 왜 괜한 시도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넌 괜찮은 사람이 아니야. 주제 파악 좀 해!’라고  말한다. 당신이 자신의 가치를 당신의 예술작품이나 창작물, 또는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계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한가? 수치심이 당신을 조종하고 당신의 삶을 지배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 갖춰진다. 당신은 당신의 자존감을 결정할 권리를 남들에게 넘겨줬다.(브레네 브라운의 '마음가면' 중에서...)

TED역사상 최다 시청률을 기록했던 명강의의 주인공, 브레네 브라운. 사진 :전자신문

 수치심이라...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에 약간의 반발심은 들었지만, 누구에게나 어떤 면으로든 수치심이라는 게 작용한다고 한다. 오히려 수치심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사이코패스인지 의심해봐야 된다고. 여하튼 나는 나의 유튜브가 잘 되지 않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고, 심지어 그 수치심이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뭘 보여주고 싶은지 메시지가 없다고. 잘하지도 못하는 영상 편집은 왜 하냐고.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며 할 거면 왜 하냐고. 내 능력 밖의 일이 아니냐고. 이렇게 밖에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고.


 브레네 브라운은 '마음가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창작행위는 당신이 하는 한 가지 일일 뿐 당신의 정체성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당신은 대담하게 뛰어들었고, 그것은 당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가치가 당신이 만들었거나 생산한 것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창작물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점점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이미 나는 나의 가치를 유튜브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일까. 내 영상이 재미없으니 난 재미없는 별로인 사람이라고. 유튜브가 사랑받지 못하니 내가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브레네 브라운의 글처럼 호기롭게 유튜브 세상에 뛰어들었던 나는 누구였지. 유튜브가 이 시대 소통의 중심이라며, 그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거라고 그렇게 선언하면서 시작했는데...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왜 이런 생각들은 매번 뒤늦게 드는 걸까. 새해가 되니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도 들기 시작하나. 잘 풀리지 않는 상황 탓만 하는 내가 부끄럽다. 이런 수치심은 자연스러운 거겠지. 게다가 내 정체성을 내 유튜브에 부여할 정도로 유튜브에 공을 들였는가도 의문이다. 솔직히 그 정도로 애쓰고 있지는 않다. 그럼 인정하긴 싫지만 그냥 욕심이 많은 건가. 마음이 급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 부끄럽잖아... 


 이제는 나의 노력도 새해만큼이나 새로워질 필요가 있겠다. 아직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려나. 뭐가 됐든 나의 의욕은 되살아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새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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