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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Apr 11.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우리들의 라라랜드

 선배들은 후배들의 나이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나보다 한참 밑이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최근까지도 나의 선배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소현이가 마흔이 넘었다고? 하시며 놀라신다. 마흔이 넘은 게 언제인데... 내게 관심이 없으신가 만날 때마다 나이를 묻고 놀라실까 하다가도, 하긴 나도 후배들의 나이에 매번 놀라긴 하니까. 한참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후배들도 이제 나이를 들어가는구나 싶어 빠른 세월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 나만 나이 먹고 있는 줄 알았는데 후배들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구나 하는 왠지 모를 동료의식도 생긴다.  


“제가 벌써 서른아홉이에요. 이제 완전 나이 들었어요.” 풀이 죽은 후배다. 

“아니, 이 선배 앞에서! 아직 어리고만! 그래도 앞에 3자잖니?” 살짝 부럽다. 

“죄송해요, 선배님. 저 아직은 어린 거예요?” 안심한 듯한 후배다.  

“그럼, 그럼. 3자가 앞에 붙어있을 때 한창 때야. 근데, 4자로 바뀌면 다르다. 얼굴도 슬슬 처지는 것 같고,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아.” 무엇을 말해도 이렇게 확신해 찰 수는 없다. 

사실 39와 40 사이에 불과 1년의 차이밖에 없는데, 앞자리 바뀌는 게 뭐 그리 큰 거라고, 이렇게 우쭐대는 건지. 38과 39 사이와 39와 40 사이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그렇지만 겪어보면 안다. 다르다. 많이 다르다. 세월이 흘러 앞자리 숫자가 또 바뀌면, 딴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른 걸로! 

후배들아! 다음에 만나면 사진 좀 찍자. 대신 내가 아는 가장 예쁜 하트를 보낸다.

 후배들을 만났다. 마흔을 막 넘긴 후배도 있고, 마흔을 곧 바라보는 후배도 있고, 아직은 여유가 있는 삼십 대 중반의 후배도 있다. 우리는 서로가 제일 싱그러웠던 때를 같이 했고, 그리고 지금도 가장 젊은 날에 만나고 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순간이니까. 나이는 내가 제일 많지만, 회사를 그만둔 걸로 따지면 내가 제일 후배다. 아끼는 후배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날 때마다 제대로 붙잡아 보지도 못했는데, 결국 나도 떠났고, 지금은 이렇게 밖에서 날을 잡아 따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회사에서 매일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참 좋은 후배들 덕분에 회사 생활이 즐거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결혼 생활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잠깐,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일 이야기였다. 먼저 나간 후배들은 회사에서 나온 지 몇 년 지났고, 그 사이 이런저런 상황들을 많이 겪었다. 그들도 프리랜서는 처음이라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았고, 하기로 했던 일들이 막판에 틀어지기도 했다. 때론 잘 풀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주저앉기도 했겠지.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 생각도 많이 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괴로운 근심의 시간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많이 성숙해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나랑 농담 따먹기를 하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은 점프를 하기 위해서 공중으로 도약하기 전에 빙판 위를 달리며 속도를 끌어올린다. 속도를 서서히 올리며 멋지게 뛰어오를 그 순간을 준비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선수들과 같다고 할까? 그들은 언젠가는 뛰어오를 것이다. 뛰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아직 빙판에 서지 못하고 몸만 풀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운이 난다. 

꿈의 상징, 김연아 선수. 언제든 뛰어오를 수 있는 그녀.  사진출처:중앙일보조인스

 집에 돌아와서 영화 라라랜드를 다시 보았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오기도 했고, 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다니엘 헤니가 사는 라라랜드, LA를 방문하고 온 이야기를  봐서 며칠 전부터 이 영화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엠마 스톤과 슬림핏이 돋보이는 양복을 입은 라이언 고슬링이 LA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볼 때마다 가슴 설렌다. A Lovely Night을 흥얼거리며 그들이 함께 추는 춤을 따라 해 본다. 내가 추니 막춤으로 변질되는구나. 이런 춤은 어디 가서 배워야 되나?  

몇 번을 돌려본건지... 멋지고 황홀한 영화 라라랜드의 명장면. 사친출처: 한국일보

 흠... 춤은 기회가 되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엠마 스톤의 마지막 오디션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속에서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보지만, 이번은 사랑도 흔들리고 꿈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녀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간 오디션이다. 대본도 없고 주어진 상황도 없으니, 아무 이야기나 해보라는 오디션 담당자. 당황한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모가 센 강에 뛰어들었어요.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기침을 한 달간 해야 했지만 다시 하래도 똑같이 할 거랬죠.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바보 같은 그들이지만, 아파하는 가슴들을 위하여, 망가진 삶들을 위하여... 조금은 미쳐도 좋아. 지금까지 없던 색깔들을 보려면. 그게 우릴 어디로 이끌진 아무도 몰라...” 엠마 스톤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꿈을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엠마 스톤의 이모처럼, 이모 이야기를 노래하는 엠마 스톤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없이 도전하고, 무너지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위로받고 거기서 힘을 얻어 다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아플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용기있는 가슴과 희망있는 내일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꿈을 꾸는 우리는 영원히 젊다. 그러니 계속 꿈을 꿀 수 있다.

수많은 오디션들, 우리도 알게 모르게 오디션들을 치루고 있다. 사진:영화 라라랜드

 사실 이 영화는 꿈의 관점에서는 해피엔딩이지만,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새드엔딩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결국 사랑은 못 이룬 거니 꿈을 성취했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 아니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허탈한 마음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꿈에 집중하다 보니 꿈꾸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해석은 보는 사람들의 몫이니, 꿈을 그리는 영화라고 해석해도 괜찮겠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꿈과 사랑 중에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런 극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에게나 라라랜드는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라라랜드는 LA처럼 먼 곳일 수도 있고,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가 일하고, 내가 글을 쓰고, 내가 노래하고, 내가 춤추는 바로 이 곳도 라라랜드라는 거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니까, 여기서부터 이미 나는 꿈을 꾸고 있으니까... 나의 라라랜드, 후배들의 라라랜드, 그리고 꿈꾸는 모든 이들의 라라랜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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