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 바스키아
지겹도록 비만 오던 여름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아름답고 청명한 날씨들이 보란 듯이 쏟아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을이다. 가을을 누릴 마음의 여유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자꾸 눈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은 집에 그렇게 있을 때가 아니라며 나를 유혹한다. 물론 나가봤자 마스크나 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지만, 미세먼지는 잊힌 과거의 유산인 듯 쾌청한 가을 날씨를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우니까.
환기 미술관에 갔다. 차가 막힐 때는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라 큰 맘먹고 가야 된다. 전날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평일 오전이니까 왠지 한산할 것 같다. 원래 미술관은 사람이 없을수록 쾌적하게 전시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은데, 관람객 수가 예전보다 줄었다는 점이 코로나가 가져온 몇 안 되는 긍정적 변화로 생각해야 될까. 그렇지만 수많은 전시들의 기획이 취소되거나 미술관 자체가 휴관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미술계의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 kIAF도 온라인 전시로 진행되었는데, 딱히 끌리지 않았다. 내 아이패드로도 충분히 고화질로 작품들을 자유로이, 독점적으로 즐길 수 있지만, 방구석 전시회를 보고 나면 방구석만큼 마음이 답답해질 것 같아서였다.
뭐가 됐든 온라인 전시는 색감에서 전해지는 생생한 에너지, 작가의 섬세한 테크닉, 그리고 작품의 크기가 주는 압도적인 기세 같은 것들을 온전히 느끼기는 어렵다. 잠시라도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감성도 포기해야 하고. 아무리 세상의 사정이 방구석으로 우리를 몰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느끼며 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직관과 방관을 둘 다 경험해 본 내가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직관하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지는 것처럼.
예상대로 평일 오전의 환기 미술관은 나 혼자 전세를 낸 것 같았다. 몇몇 관람객이 있긴 했지만,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조용히들 움직였다. 아니 정지해 있었다. 콘서트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함성이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미술관에서는 작품 앞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서 레이저를 쏘며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그것을 대신할 것이다. 어쩌면 관객들은 그런 방식으로 작품들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각자만의 이야기를 전하며.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1968년 1월 26일에 김환기는 그가 남긴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울리는 미술이라. 실제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의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눈물이 나오지는 않아도 그만큼의 슬픔과 기쁨, 혹은 놀라움과 전율 같은 감정들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분출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나는 그림을 보고 운 적도 있는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그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가 그린 밤하늘의 별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절망과 괴로움으로 보낸 수많은 밤들을 고흐는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위로받았을까. 별빛을 받으며 론강 옆을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외로움에 지친 고흐는 그런 모습을 동경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그때 외로웠을까. 그래서 눈물이 났을까.
환기의 작품을 바라본다. 그의 그림은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넨다. 조금 쉬어가라고, 마음 졸이지 말라고.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머금은 미술관의 공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 앞에서 오롯이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다. 꼭 눈물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울리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몇 달 전 서촌을 걷다가 아주 작은 갤러리에 들어갔는데, 도슨트가 있을 규모가 아닌데 한 청년이 다가와 작품에 대해 똑 부러지게 설명해 주었던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작품과 그가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가 바로 그 그림들을 그린 화가였다. 가끔 예술가들을 만나면 말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말하기 기술이 필요한가 싶다가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몰입하는 일 자체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확장된 세계만큼 내면도 깊어지고, 언어의 세계도 발전하는 게 아닐까. 김환기 화백의 글들, 아내 김향안 여사와 나눈 대화나 편지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 작품으로도 말을 건네니 그렇게 생각하면 예술가들은 재미난 이야깃꾼인 것 같다.
바스키아의 전시를 갔다. 환기 미술관에서 느꼈던 조용함을 이곳에서 기대하면 안 된다. 북적대는 사람들 때문인지 어디선가 바스키아가 걸어 나올 것 같다. 팬사인회에 온 팬처럼 바스키아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어 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이 했던 인터뷰 내용이나 다른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글들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해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문장들을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하고, 촬영이 아예 금지된 전시라면 메모에 남겨두기도 한다. 바스키아도 넘치는 재능만큼 말도 잘했다고 한다. 그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작품에 텍스트를 그대로 표현하거나 본인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해체하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비범한 문장들로 가득 찬 독특한 책을 여러 권 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한동안 뜸했던 전시회를 다니니까 좀 숨이 쉬어진다. 사람과 만나고 나면 기운이 빠질 때도 많은데, 미술관에 가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집 나간 영감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새로 개편한 유튜브 채널, <어나더 리딩>에 잘 반영해야 되는 것이 요즘 나의 과제다. <어나더 리딩>은 제목처럼 뭔가를 읽는 것인데, 그것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책이 아닌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책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술이라고 하면 어렵게들 생각할 수 있는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려 한다. 작품 해석은 전문가에게 맡겨 두고, 그들의 인생사라든지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에 초점을 두고 싶다. 그런 자료들을 일일이 찾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좋은 글과 말을 남긴 예술가들이 많다. 김환기나 바스키아처럼.
남들 이야기 듣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마침 유튜브 개편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에 그런 내용이 올라왔다.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왠지 조회수가 높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에는 애초에 소질이 없는 편이라 막례 할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른들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에 믿고 기대고 싶다면 맞는 말이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용기를 내어 시작해 본다. 부디 내가 전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내게 그랬듯, 여러분의 삶에 아주 작은 영감이라도 반짝이길. 내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믿고 기대고 싶다면 그럴 수 있기를, 그것도 역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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