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의 연결
요즘 화제인 바스키아 전시회를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대규모 전시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축소된 시기라 멀리 사는 절친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몹시 반가웠다. 언택트 시대에 사람이든, 예술이든, 자연이든, 뭔가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예전보다 더 설레는 일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도 과장 조금 보태서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천 공항에 들어설 때의 그런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전시회는 나 같이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은 조심스럽지만, 그런 것쯤은 감수해 본다.
사전 예약에, QR코드에, 열체크에... 전시회 하나 가는 일도 신경 쓸 게 많다. 그러나 전시회가 열리고 전시회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불평하기보다 고마워해야 하는 거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 될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더 놀라운 일은 저항할 줄 알았던 내가 당연하지 않은 것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는 거다. 세상은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고 나도 다음 세상으로 가는 그 열차에 탑승했다.
지난 주말 BTS 온라인 콘서트를 봤다. 오프라인 콘서트에 다니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그래 봤자 작년 10월 일이다. 그때 삼일 동안 서울에서 콘서트를 했었는데, 나는 중콘(둘째 날 콘서트)과 막콘(마지막 날 콘서트)에 갔었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 오프라인 콘서트가 될 줄은 몰랐지만.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할 때, 리더인 RM이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저희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믿어주실 거죠?” 그래, 그들은 달라진 게 없는데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실제 무대 앞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6월에 열렸던 첫 온라인 콘서트가 떠오른다. 오랜만의 공연이라 즐겁고 반가웠지만, 솔직히 낯설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에 열린 이번 콘서트는 그 ‘낯섬’이 많이 사라졌다. 굳이 나가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내 방 안에서 치맥을 하면서 보는 콘서트도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공연은 온라인 화면에 맞게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증강현실이니 확장 현실이니 뭔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우리의 기술 현실은 놀랍긴 하다. 그런 쪽으로는 감이 떨어지는 나도 탄성이 나온다. 아는 게 없어서 더 놀라는 건가.
공연에서 보여주는 기술도 멋지지만, 뭔가 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빈틈없이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오프라인 공연도 마찬가지지만, 온라인 공연은 약간의 빈틈이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완벽하게 무대를 구성해야 한다. 그 무대 위에 서는 아티스트들도 오프라인 무대보다 심적 부담이 크다. 자신을 보러 온 팬들 앞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아무래도 더 긴장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팬들의 환호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가장 힘든 부분이다.
아티스트들이 준비한 멋진 무대에 관객들과 아티스트와의 교감이 더해지면서 그 공연은 완벽해진다. 예전에 오프라인 공연은 그랬다.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아티스트와 관객의 시간이 현장에 살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처음부터 완벽히 준비해서 제시해야 한다. 완제품이어야 된다. 관객들의 반응에서 오는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연결해서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무대를 찢어버렸던 그 힘의 원천은 팬들의 열렬한 응원 덕분이었는데, 이제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공연하는 사람은 힘들다.
나도 비대면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나면서, 온라인 콘서트라는 낯선 세계에서 공연하는 아티스트들의 고충을 조금, 아주 조금은 경험한다. 온라인 공연을 처음 경험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인터뷰를 듣게 됐다. “처음이라 정말 긴장됐어요. 음향 같은 부분도 더 신경 써야 되고 새롭게 준비할 게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렇다. 온라인은 그동안 반복적으로 해왔던 일도 다른 차원의 준비와 노력을 요구한다.
비대면 수업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간을 수업하는 건데 훨씬 더 많이 수업 준비를 해야 함은 기본이고, 하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왜 그럴까. 예전에 오프라인 수업 때는 농담이라도 던지면 학생들이 웃든지 말든지, 반응이 바로 왔다. 근데 온라인 수업 때는 약간의 딜레이가 있다. 그 짧은 틈은 더 이상 그 농담을 이어갈 의지를 꺾어 버린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 이런 연결은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느낌.
학생들과 눈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한 화면에 여러 학생의 얼굴이 뜨는데 누구를 보고 얘기해야 되나. 학생들이 화면 너머에, 각자의 공간에서 나를 바라보며 소소하게 반응하지만 왠지 원맨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대면 수업했을 때보다 훨씬 더 지친다. 무대 위의 아티스트처럼 나도 학생들과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아야 힘이 났었나 보다. 아니면 내 앞의 노트북이 내 기를 다 뺏어가는 걸까.
우리의 기운이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비대면 연결은 우리 시대의 연결이다. 누군가가 올린 SNS의 댓글에 공감 버튼을 누르고, 온라인 채팅창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이번 온라인 콘서트의 채팅창도 너와 나의 연결로 넘쳐났다. “거기 앞에 분 머리 좀 낮게 묶으세요~” “저 아미밤 건전지 다 떨어졌어요, 건전지 빌려주실 분?” “옆에 분 소리 너무 크게 지르지 마세요. 귀 아파요~” 누군가는 진지하게 묻는다. “콘서트 다들 어디서 모여서 보시는 거예요? 오프라인으로 하고 있는 건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장난이다. 오프라인인 척 장난하는 게 웃기다, 아니 웃프다. “다음 콘서트는 오프라인 콘서트로 우리 꼭 만나요” 온라인 공연이 끝나고 아미들끼리 채팅창을 가득 채웠던 말. 행복하면서도 슬프기도 했던 온라인 콘서트의 시간. 그 시간에 자꾸 적응하기 싫은데...
우린 다음에 오프라인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온라인 공연이 웃픈 추억으로 남을까.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공연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보다 언택트 세상에 많이 길들여졌나...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