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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Nov 15.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동안의 비결

 가까이 지내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오십 대 중반인데, 이십 년 전 처음 만났을 때랑 비교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얼굴의 주름도, 몸매 라인도 그대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황선배는 왜 이렇게 안 늙어? 그대로야!”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그 “늙지 않는” 외모가 선배를 완벽한 동안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녀와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눠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짜 동안인 것은 태도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녀의 모든 태도는 밝고 긍정적이며 활기가 넘친다. 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상대방을, 세상을 맞이한다. 그래서 그녀 옆에 있다 보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잘 믿어서 종종 뒤통수를 맞기도 했지만, 그녀 특유의 초긍정 자세로 금방 웃어넘긴다. 그녀는 실제로도 잘 웃는다. 10대 소녀들의 웃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데, 그 웃음은 전염력이 강하다. 그녀 말로는 예전보다 많이 차분해졌다고 하는데, 그녀의 변치 않는 그 활력이 좋았다. 후배인 나보다 텐션이 높은 그녀를 보면서 10년 뒤, 20년 뒤의 나를 그려본다. 나도 선배의 기운을 자꾸 받다 보면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좋은 기운은 웃음처럼 전염되는 거니까.


“선배님은 갱년기 아직 안 온 거 아니에요? 전혀 못 느꼈는데...” “어머, 벌써 왔지. 근데 다른 데 에너지를 쓰느라 갱년기도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 꽃병에 꽂힌 꽃이 시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는 불같은 갱년기 시절을 보낸 누군가와는 달리, 동안 선배는 한결같은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회사에 어려운 일도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선배는 우리를 위로했고, 우리는 선배에게 힘을 얻었다. 선배는 어디서 그런 좋은 기운을 끌어오는 것일까. 선배님만 아는 “좋은 기운 충전소” 같은 게 따로 있는 것일까.


 활력 넘치는 그녀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다. 동안의 비결은 피부과에서 나온다며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고 온 지인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의 얼굴은 시간을 거슬러 확실히 “영’해졌다. 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칭찬했지만, 그녀는 그래 봤자라며 나이 든 건 어쩔 수 없다며 우울해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 세월의 흔적은 어느 정도 지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 얼굴이 어려진다고 마음까지 어려지는 것은 아니겠지.


 얼굴의 동안과 마음의 동안은 결이 다르다. 얼굴의 동안은 피부의 주름을 보면 알 수 있고, 마음의 동안은 눈빛이나 표정에서 알아챌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가 그가 갖고 있는 눈빛이나 표정에서 살포시 느껴지고, 거기서 어떤 기운 같은 게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마치 우리 동안 선배처럼. 그럼 나는 어떤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가지고 있던 기운마저 깎아먹는 사람일까. 거울을 들고 내 얼굴을 바라본다. 흠... 다른 건 모르겠고 세월을 많이 먹었구먼.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솔직히 피부과 매일 출근하고 싶네요ㅋ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사람이고 싶지만,  나 스스로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올 만한 일이 별로 없는 요즘이다. “잘 지내?”라고 묻는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딱히 못 지내는 것도 아니지만, 잘 지낼 것까지는 없는 상황. “그냥 그렇지, 뭐...” 약간은 퉁명스러운 투로 응수한다. 나도 좋은 소식을 한껏 전해주고 싶지만 그럴만한 이야기가 없다. 잘 지내는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못 지내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문을 두드려야 되는 것일까. 어쩌면 문 앞까지 다가가지도 못한 것일까.


 며칠 전 후배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지갑이 없어졌나 싶어 당황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후배들에게 밥을 얻어먹은 게 마음에 걸렸다. 본인이 먹으려고 김치찌개 하나를 배달시킨 선배가 지갑을 한참 뒤지더니 “어머, 십만 원짜리 수표밖에 없는데... 어쩌지?”  결국 옆에 있던 후배가 본인 밥이 아닌데도 밥값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아... 왜 그 순간 그 선배가 떠오르는지... 뭔가 찜찜한 점심식사. 체면 구기는 점심이었다.

얘들아, 지갑 잘 있더라... 다음에는 꼭 선배가 살게^^

가까운 후배들이어서 누가 밥값을 낸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잘 나가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멋진 식당에서 제대로 밥을 쏘는 그런 그림일 수는 없을까. 후배든, 친구든, 선배든, 그 누구에게든 그런 모습만 보여주면 안 될까 하는 허세 어린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허세 부리는 어른, 그럼 나는 꼰... 대인가. 그건 절대 아니라고 머리를 저어 보지만, 이미 나이가 확 들어버린 기분이다. 외모도, 마음도 쿨하고 어리고 싶은데, 어느새 노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었나 보다. 한 달에 한 번씩 흰머리를 염색해서 다시 젊음을 되찾는 내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흰머리들이 자라는 속도가 무서운 기세로 더 빨라지면 그것도 여의치는 않겠지만.


 마음의 동안, 생각의 동안은 어려운 것일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일단,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 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정적인 기운을 거두고, 긍정적인 자세로 내 삶을 바라보면 된다. 그래, 뭐 이 정도야, 할 수 있잖아. 아무렴,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정말 할 수 있는 거다. 이 믿음부터가 동안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흠... 늘 말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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