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Nov 07.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손톱을 물어뜯는 선택

 이번 주는 선택의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 확정이 날 것으로 기대하는, 미국 대선도 미국인들의 선택의 결과이다. 누군가는 그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남의 나라 대선에 대해 딱히 감정 이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사람이 전체에, 어쩌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역대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가 되었고, 혹시 지금 보고 있는 게 재방송인가 싶은 화면을 며칠째 들여다보는 수많은 글로벌 이방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시간, 11월 7일 오전 10시 반.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정도로 큰 선택은 아니지만 내게도 마음을 결정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잊고 싶었던 과거를 복기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 일로 일주일 넘게 머리가 지끈거렸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안타깝게도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잔인한 현실만 확인했을 뿐, 그 어떤 결정도 재빨리 내리지 못했다. 나는 단단하지 못한 예전의 나와 다시 대면하는 것이 두려웠고, 과거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내 자신에 실망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을 머리를 싸매다 결국 나는 물러섰다. 내가 괴로웠다고 그 괴로움을 돌려주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였다. 과거의 괴로움을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선택에 나는 다시 괴로워졌다. 같은 편에 서야 될 사람들에게 또 다른 괴로움을 준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벗어날 수 없었던 건가. 시간이 좀 더 흘러야 될 일인가.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자책감만 더해진다.


 내 선택의 과오를 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들여다본다. 요즘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선택의 순간들이 흥미롭다.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슬픔이여 안녕>에서 세실은 바람둥이 아빠와 아빠의 어린 여자 친구와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평화롭던 어느 날 엄마 친구로 잘 알고 지내던 안느 아줌마가 휴가를 같이 보내겠다며 찾아온다. 안느의 우아한 매력에 빠져든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여친을 구여친으로 만들고, 안느와 결혼까지 선언하게 된다. 결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 같았던 아빠, 어린 여자들만 좋아할 것 같았던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의 미래가 은근히 걱정됐던 것일까. 현명한 안느라면,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안느라면 진짜 엄마, 진짜 아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세실은 안느 아줌마에 대해 존경의 감정이 있었다. 사업 수완도 좋고, 자기 관리도 뛰어난 안느 아줌마를 꽤나 매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지금까지 아빠와 자유롭게 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웠다. 아빠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전의 어린 여자 친구들, 철없어 보였던 그녀들이 오히려 편했다. 자신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느 아줌마는 세실에게 이렇게 마냥 놀지 말고 시험 준비를 하라고 조금씩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무척 거슬린다. 그녀는 선택을 한다. 안느 아줌마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그것도 적극적으로 막기로.

영화로 제작된 <슬픔이여 안녕> , 왼편이 세실역의 진 세버그인데, 사강의 모습과 왠지 모르게 닮아 있다.

  아빠와 그리고 세실의 선택의 결과는 안느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세실이 놓은 덫에 걸린 아빠의 배신을 눈으로 목격한 안느는 그 길로 뛰쳐나가는데, 이야기는 무척 극적으로 흘러간다. 이 책을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는 정도만 덧붙인다. 세실도, 아빠도, 안느도, 누구에게나 선택은 쉽지 않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꽤나 잔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생은 늘 좋은 선택과 덜 좋은 선택, 그리고 좋지 않은 선택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좋은 선택이라고 해서 결과가 다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선택이라고 해서 결과가 다 나쁜 것만도 아니다. 복합적이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예측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선택은 과감하게 이루어지고 하고, 우유부단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선택이라는 건 매 순간 가볍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어떤 것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사강의 에세이들을 담은 <리틀 블랙 드레스>에 나오는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크리스티앙 디올에서 나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브랜드,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로 선택했다. 그때 그는 이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첫 컬렉션에서 모두에게 증명해 보여야 했다. 무조건 걸작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 대단한 선택이 혹시 잘못돼서 실패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무거운 선택인가. 게다가 이 무모한 남자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려고 컬렉션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성공이었다. 만약 실패였다면 이브 생 로랑 그리고 지금의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를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은 결이 다른, 훨씬 더 엄중한 선택들도 있다. 현실의 괴로움을 이겨내기 힘들어 삶을 포기하는 선택도 있고,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선택도 있다. 하루에 열 시간씩, 그렇게 오십 년을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 어느 날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반신마비가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나고 나니 그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들이었요. 난 이제 끝났구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자살도 생각했다는 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강에게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만 그랬지 시도는 하지 않았어요. 내 말은, 난 일평생 참으로 행복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정말 그랬어요. 그때까지는 정말 난 말 그래도 행복을 위해, 행복한 배역만 맡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만큼, 나는 하루아침에 내 역할을 바꿀 생각이 없었어요. 행복이 습관이 되어 있어 난 계속 행복했으니까요.”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강과 사르트르. 그들은 사르트르 말년에 자주 만났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면 그 선택에 따른 삶에 충실하면 된다. 자꾸 뒤돌아 보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다. 이럴 거면 왜 그런 선택을 한 건가.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선택하는 것처럼 늘 망설이고 주저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에는 서툴고, 후회에는 더 익숙하게 디폴트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에 더 익숙해지도록, 후회와는 더 멀어지도록 원래의 세팅을 바꿔 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일 터. 흠...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