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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Dec 05.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명랑한 은둔자

 친구가 최근에 술을 끊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싶냐마는, 술을 좋아하고, 술에서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이라면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공감할 것이다. 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와 여행을 같이 다녀온 적이 있는데, 자기 전에 와인 한 병 정도는 깔끔히 처리하고 잤던 그런 사람이다. 친구가 와인 병을 따면 나는 한 잔 정도 얻어 마셨는데, 얻어 마셨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왠지 더 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한 병의 양이 그녀에게 모자라 보여 나름 배려한 것이다. 아무튼 친구는 전혀 취하지도 않았으며, 너무 멀쩡한 정신으로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숙면을 취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시던 친구에게, 갈수록 주량이 약해지는 나는 너무 신기해서 물었다. 정말 괜찮냐고. “나도 사람이야. 어떻게 매번 멀쩡하겠냐?”


 그랬다. 내 친구는 “사람”이었다. 와인을 사랑하던 친구는 건강의 이유로 술을 끊게 된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화끈한 주량의 그녀는 술도 화끈하게 끊어 버렸다. 나처럼 찔끔찔끔 먹는 사람은 오히려 확 끊어내지를 못하고 있는데...  한 잔만 마셔도 다음날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는 나는 왜 아직도 술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저는 술 마시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술은 가장 훌륭하고 믿음직한 대처 방법이었어요. 저는 불안을 희석하고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마셨어요. 긴 하루의 끝에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마셨어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 머릿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긴장을 풀 수 없었거든요. 한참을 그렇게 지냈더니, 즉 술을 너무 오래 너무 효과적으로 사용해왔더니, 그다음에는 술을 마시지 않기가 점점 어려웠어요. 중독이 그런 거 아닌가요?


 <명랑한 은둔자>의 작가 캐럴라인 냅은 술에 꽤 오랫동안 의존했다. 술 없는 밤은, 아니 술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자주, 혹은 한꺼번에 많이, 하루를 술로 채웠다. 부모님의 죽음에 너무 괴로워서 핸드백에 술을 숨기고 다니면서 마셨던 그녀처럼 심각하게 술에 빠져있지는 않지만, 나도 그녀와 같은 이유로 술을 꺼내들 때가 많다. 걱정이 많은 밤에, 생각이 깊어지는 밤에, 긴장을 풀어내야 하는 밤이면 무조건 한 잔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기껏해야 한 잔에서 두 잔 정도 마시니 중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을 그래 왔다면 어떻게 봐야 할지... 마음먹자마자 한 번에 끊어낸 사람도 있는데, 무엇이 나를 술의 유혹에서 매번 무너지게 만드는 것일까. 나의 고민들이 술의 기운으로 희석된다고 느끼는 걸까. 예민한 감정들이 느긋해지는 기분을 즐기는 걸까.

<명랑한 은둔자>의 캐럴라인 냅의 다른 글들도 읽어 봐야 겠다.

 여전히 중독은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지만,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집콕이 늘어나는 요즘은 중독에 중독되기 더 쉬워졌다. SNS 중독도 있고, 게임 중독도 있고, 온라인 쇼핑 중독도 있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중독도 가능하다. 최근에 두드러지는 이 중독들은 주로 학생이나 청년층에 언급되는 이야기였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전염되었다.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줄인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에 연결되길 원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창구인 온라인 세계가 있다. 여러모로 안전한 그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친구들과도, 지구 반대편 모르는 누구와도 쉽게 소통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제약이 없다. 그에 비해 대면 접촉의 세계는 벽들이 자꾸 높아진다. 바깥의 상황이 워낙 엄중하다 보니 송년 모임들도 다 취소됐고, 이렇게 되기 전부터 이미 모임을 잡자는 이야기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너무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하루가 어떤지 속속들이 다 보고 있으니까. 어느새 우리는 언택트 소통에 중독돼 버렸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 돼버린 현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새롭지도 않은 2020년의 12월. 우리는 온라인 중독은 기본이고, “은둔”에도 중독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상황에서 비롯된 비자발적 은둔의 시간들이었는데, ‘누구와’ 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지는 날들이 점점 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가져다주는 안전함과 편리함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이런 은둔의 시간에는 자신을 돌볼 의욕은 필수이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혼자 먹고, 혼자 마시고, 혼자 놀고, 혼자 일하는, 혼자인 내가,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고립이 아니라 고독이어야 한다. 세상과 철저히 떨어져 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고립이 아니라, 평화와 고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고독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자칫하면 “어두운 은둔자”로 전락할 수 있다. 고독과 고립은 한끝 차이고, 아주 자주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상 속으로 기꺼이 돌아갈 수 있는 날이 곧 올까? 모두가 기다리는 그 날은 우리에게 곧 돌아올 것이다. 그래, 그렇게 믿자. 그때까지 “명랑한 은둔자”로 잘 버텨 보겠다.



##한약을 먹게 돼서 본의 아니게? 술과 안녕하게 되었습니다. 비자발적 금주지만, 이번 금주가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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