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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Dec 12.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노는 언니의 노는 예술

 요즘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는 게 재밌다. 뭐 지구 밖 외계인이나 그런 쪽까지는 아직 아니고. 박세리 선수를 비롯해 몇 명의 운동선수들이 함께 등장하는 <노는 언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전문 예능인들은 아니기 때문에 큰 웃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럼 왜 보나. 이 프로그램의 맛은 운동선수들이 말하는 경험담이다. 출연자들끼리 놀러 가서 밥을 짓다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예전 라떼 이야기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예를 들면, 검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을 봐야 한다거나... 혹시 속일까 봐 그렇게 한다는데...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 봤다. 도핑 테스트 이야기다. 은퇴한 국가 대표 선수들은 고된 훈련지, 태릉 선수촌의 밥을 그리워할까? 그렇다고 한다. 제철 재료들로 가득한 반찬들, 특식으로 나오는 가재와 후식인 설탕 묻지 않은 도넛인가가 맛있다는데... 도핑 테스트와 태릉 선수촌, 내가 받을 일도 갈 일도 없는 곳이라 그런 이야기들은 무용담처럼 흥미진진하다.

<노는 언니>의 출연자들 조합이 신선해요.

 운동선수는 어릴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체육 시간엔 늘 쭈그리 신세였다. 넘어야 할 뜀틀 위에 사뿐히 앉았고,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뚝 떨어졌다. 대학을 가서 좋았다. 체육 시간이 없어져서. 그렇게 운동과는 영영 이별할 줄 았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은 필수였다. 학창 시절에는 국영수가 필수였다면, 이제는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 운동을 꼭 해야만 한다. 운동이 일상이 되긴 했지만 거기까지. 대신 운동선수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며 부족한 나의 운동 신경을 대리 만족한다. 그들이 겪었던 극한의 경험, 메달을 따기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는지, 그런 희생의 대가로 얻은 영광은 무엇인지... 절대 못할 경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영감들이 넘쳐난다.


 운동선수의 세계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들도 결국은 하게 되는 은퇴에 관한 이야기에는 숙연해진다. 은퇴를 결정할 때 했을 여러 고민들,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한 도전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으면서도, 너무 높은 데 있다 내려오면 공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건가, 괜히 내 처지가 위로가 된다. 공감과 위로 사이를 오가며, 퇴사 5년 차인 나는 이렇게 또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나는 요즘 그런 공감과 위로, 혹은 영감을 꿈꾸며 내 유튜브 채널 <어나더 리딩>에서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예술에 대해 대단히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운동보다는 예술이 편하다. 전시회나 음악회 가는 거 좋아하고 여기저기 관심도 있긴 하지만, 한편을 제작하려면 아무래도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무슨 배짱으로 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루는가. 예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나를 끌어당긴다. 그 아우라를 쫓으면, 그러니까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왠지 그 예술적인 기운, 멋짐이 내게도 묻어나는 것 같아 좋다면 답이 될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유튜브는 예술적인 멋을 추구하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방향은 그러함을 알려둔다.

부지런히 전시회 다닐 때가 좋았죠. 이젠 전시회장도 다 문닫을 것 같아요...

 예술가라 하면 우리와는 뭔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다르면서도 같은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그들도 가난했던 적이 있고, 좋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예술가도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한 주 사이에 나는 두 사람의 예술가를 만났다. 화가 박래현과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국적도, 성별도, 분야도 다른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한번 찾아보기로 한다.


 화가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 더 알려져 있다. 결혼할 때 박래현의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운보가 청각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여성들은 자기 일을 하는 경우가,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거의 없었는데, 박래현은 결혼 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다. 그녀의 뜻을 이뤄줄 신랑감은 운보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결혼을 강행했고 화가 난 어머니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식 아파트의 아버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아내 이본과 결혼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스위스 국적이었던 그는 일 때문에 프랑스 국적으로 바꿔야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어머니와 친척들은 이본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박래현과 남편 김기창

 둘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았다. 박래현은 청각 장애가 있는 남편이 외출할 때마다 동행해서 남편의 일을 보조했고, 아이들과 남편이 의사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필답밖에 할 줄 모르던 남편에게 구화를 가르쳤다. 작품 활동에서도 자신보다는 남편부터 배려했던 그녀다. 르 코르뷔지에도 아내 이본을 위해서 파리의 근사한 펜트하우스를 버리고 지중해의 아주 작은 통나무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도시 생활을 답답해한 아내를 위해 감행한 일이다.


 두 사람은 멀리 떠나는 삶을 살았다. 박래현은 중남미를 비롯해 아주 긴 시간 세계 여행을 다녔고, 미국에서는 6년 정도 살았다. 이런 해외 체류 경험이 그녀의 작품 세계를 확장시켰고, 그녀만의 독특한 추상 화법을 만들어냈다. 르 코르뷔지에도 20대 때 동방여행을 다녀오고 여행기까지 썼다. 그리고 스위스의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그는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 본격적인 건축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 역시 그때 그가 거쳐간 곳들에서 받은 영감들이 그의 건축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더 넓은 세상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하는 일은 사람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우리도 그런 이유로 여행을 많이 다닌다. 그나저나 내년부터는 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까.

뿔테 안경의 르 코르뷔지에 사진: 연합뉴스

 두 사람 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박래현은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는데, 옛날 자료들에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거의 없던 시절, 그녀는 여성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소신을 글로 옮겼다. 르 코르뷔지에도 건축 사무소에서 본업을 하고 일찍 퇴근해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했다. 그는 집을 항공기나 자동차 같은 기계에 비유하면서 많은 공격을 받았는데, 글을 쓰는 일은 현대 건축을 위한 그의 투쟁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글을 남기는 것은 나 같은 예술 팔로워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들의 생각을 여러 번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거니와 시대는 달라도 그들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이름도 낯선 두 사람의 삶이 나와 좀 가깝게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다 해도 별로 관계없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억지로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나와 예술가 사이에 아주 작은 공통점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재미다. 그렇게 재밌게 놀다 보면 예술은 가까워진다. 흠... 그렇지 않을까.


## 혹시 궁금해하실까 봐...

    제 유튜브는 

http://www.youtube.com/c/legatopark​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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