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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04.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꼰대여도 괜찮아.

 IT회사에 방문했다. 미팅을 끝내고 막 나가려니 때마침 점심시간. 로비에는 점심 약속을 위해 삼삼오오 동료들을 기다리는 사원들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 나도 전에는 저 풍경 속의 함께 했던 때도 있었구나. 추억은 잠깐.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건 뭐지... 이질감 같은 느낌. 저기에 섞일 수 없어서 그런가? 물론 섞일 수 없겠지. 내가 IT 회사에 취직할 일은 없으니까. 그럴 능력이 없다. 횡단보도 앞도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로 넘친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마음은 나도 그쪽으로 가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들을 일단 보내고 다른 편 횡단보도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왜 그들과 함께 건너지 못했을까? 그 답은 이미 로비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거기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의 실체는 젊음, 아니 젊음들이었다. 1대 1로 마주칠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젊음. 젊음이 모여 젊음들이 되니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나는 이 젊음들로부터 장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밀려났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류승범 배우로부터 장풍이라도 배워야 하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트

 며칠 뒤, 학원을 확장해서 옮긴 후배를 만났다. 수강생들을 초청해서 확장 이전 축하파티를 연 다음날, 신이나 있을 것 같았던 그녀는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언니, 주인공은 나잖아요. 내가 학원을 확장 이전해서 여는 파티니까. 근데, 저는 밀려나 있더라고요.” "무슨 뜻이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저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더라고요.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약간 충격받았어요.” 이런 걸 문화충격이라고 할 수는 없고, 일종의 나이 충격인가? 그녀가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예전부터 느꼈던 그 느낌. 가만히 있어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나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좌중의 관심을 받으려면 개그맨 뺨치는 유머 탑재는 기본이다. 아재 개그도 그런 노력의 일환인지도. “그래, 웃기는 건 우리가 웃기고, 관심은 다른 데로 가는 거야. 너도 곧 익숙해질 거야.” 위로 아닌 위로를 던져본다. 나보다 몇 살 어린 그녀는 아직은 충격이란다. 한두 해 전부터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애써 무시해 왔는데, 파티가 열리던 날, 하필 그녀가 주인공이던 그 날, 빼도 박지 못하게 느꼈다고 한다.  


 무슨 공주병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모임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타입도 아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서 서운해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내 이야기가 별로 먹히지 않는, 말하자면,  내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그런 슬픈 상황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려워서 그런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기에... 친구들이여, 우리도 종종 그러지 않는가.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속으로 딴생각을 하거나 영혼 없이 ‘네, 네...’ 하거나.  '한 번만 더 들으면 백번 채우는 건데... 본인이나 잘하세요...'라고 생각하기도.  지금까지는 그래도 내 이야기에 즐겁게 반응해주는 동생들이 있어 다행이지만, 영혼 없는 반응들에, 소리 없는 반발에 곧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 내가 눈치를 못 챈 건가? 난 변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변한 건 나이 든 거밖에 없는데...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으려고, 쿨해 보이려고 나름 애쓰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꼰대를 치니 등장하는 미생의 마부장! 사진출처: 서울경제

 나이 든 사람들을 비아냥 거리며 부를 때 우리는 꼰대라고 한다.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부정적이어서 '설마 내가...?'라는 생각만으로도 거부 반응이 든다. 처음 이 단어가 걸인이라는 의미로 1960년대에 등장했다고 하니,  태생부터 좋은 뜻을 가진 단어는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여하튼 그 이후, 선생님을 칭하는 부정적인 은어의 의미로 학생들 사이에 널리 쓰이다가 오늘날의 꼰대가 되었다. 상하관계를 강조하고, 구태의연한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며, 융통성이 매우 부족한, 답답한 사람을 칭할 때 쓰이는 단어로 말이다. 우리가 꼰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회사 부장님일 수도 있고, 옆자리 동료일 수도 있고, 단골 가게 주인일 수도 있고, 가족 중에 한 사람 일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꼰대의 영역이 엄청 넓어졌다.  2030 젊은 꼰대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꼰대의 활약이 전방위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꼰대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오히려 나이는 점점 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누군가의 페북에서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꼰대는 386 꼰대가 아니라 X세대 꼰대라는 이야기를 보고 살짝 발끈했던 기억이 난다. 꼰대라니, 아직은 그런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니라고!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나에게 꼰대라고 콕 집어 말한 것도 아니고, 세대별로 꼰대들 중에, X세대 출신인 꼰대가 제일 얄밉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X세대=꼰대라고 한 것도 아니란 말이다. 꼰대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꼰대임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해석의 오류까지 더했으니 진짜 꼰대인 건가... 


 초등학교 때 반장을 맡으면 어쩔 수 없이 했던 임무가 있다. 떠드는 친구 이름을 칠판에 적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의 지시를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내가 반장일 때는 반장이니까 모든 게 원칙대로 굴러가길 원했고, 반장이 아닐 때는 반장이 하라고 하니까 했다.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지만 가끔 반장이 얄미울 때도 있었다. 반장의 권위를 내세워 나머지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럴 때 "왜 저래? 반장이면 다냐?"하고 눈을 흘기고픈 순간이 우리에게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뭐, 순간이긴 하지만, 반장의 역할도 조금 꼰대스러운 면이 있지 않은가? 꼰대의 특성들을 순화해서 보면 말이다. 물론 반장인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나이 어린아이에게 꼰대가 웬 말이냐 하면, 반장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음을 밝힌다. 나도 반장 좀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나의 경험상, 어린 시절에도 등장했던 이 꼰대스러운 면모는 나이를 먹어서도, 자신의 역할과 지위에 따라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수그러든다. 마치 반장을 맡은 1학기 때의 나와, 물러난 2학기 때의 내가 달라지듯이.  꼰대적 성향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다시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발현될 기회가 생기면 꽃을 피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도 모른 체 지나가기도 하고.  뭐가 됐든,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테니, 나의 꼰대 이론도 변변찮은 헛소리일 수도 있다. 게다가 한결같은 꼰대도 우리 주변에 꽤 존재한다. 나도 그런 사람과 일해봐서 안다. 그럴 때는 되도록 엮이지 않는 수밖에.


 나처럼 꼰대라고 불릴까 봐, 언젠간 꼰대가 될까 봐 두려운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가수 조용필 씨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나는 꼰대다. 이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오는 단어다. 거부하고 싶지 않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팬들 사이에서 영원한 젊은 오빠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일에 열정을 불태우며 한 편생을 살아온 그에게 누가 꼰대라고 하겠는가? 오직 본인만이 꼰대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가왕과 나를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나중에 "나는 꼰대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고, "너 자신을 잘 아는군"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 자신을 잘 알아서 좋은 거고, "꼰대라뇨? 전혀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칭찬 들어 좋은 거고. 손해 보는 게 없네. 

50주년!  변함없는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그래, 꼰대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요즘 부쩍 나이를 의식하는 건 왜일까?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냥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이 아니고, 진심 야속해서 하는 말이다. 눈뜨고 나면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나버린다. 지금의 나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오늘 하루 내가 뭐했나 가끔 허무할 때도 있다.  사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느슨하게 지냈던 시간들이 꽤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런 시간들로부터 얻는 것들도 분명 있었고, 딱히 그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흠... 부분적으로는 후회되는 순간도 있지만.  


 요즘 그렇게 시간 가는 게 아깝다.  부지런히 달리고 싶다. 뒤쳐진 시간들까지 커버하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될 텐데...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쁘다.  가끔 나이를 의식하는 것도 좋다. 종종 꼰대스럽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것도 좋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나를 의식하는 거다. 그동안 너무 고이고이 간직해 왔다, ‘나’라는 사람을. 잠재력과 대기만성이라는 말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보여줄 게 있다면 부지런히 펼쳐 놓을 때다. 없으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만들어 보자. 그게 '아직은' 꼰대스럽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니까.

영화 인턴 중에서...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사진출처: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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