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Apr 25.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숲 속의 작은 집을 찾아서

 신록의 계절, 5월이 되려면 며칠 남았지만, 이미 세상은 온통 연둣빛,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아이는 사과나무. 하얗고 작은 꽃이 핀 사과나무는, 꽃이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있는 옆자리 수국과 경쟁이라도 하듯 푸른빛을 다투고 있다. 봄이 오니, 매일 이렇게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 원두를 직접 갈아 뜨거운 물을 내리며 잘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아침. 커피 향에 코도 즐겁고, 푸른빛에 눈도 즐겁다. 며칠 전, 추운 겨울 내내 집안에 데리고 있었던 올리브 나무를 밖에 내놓았다. 내놓자마자 하필 큰 비에, 강풍에, 다시 찾아온 추위에 정신 못 차리는 이틀을 보낸 올리브 나무. 조금만 더 데리고 있을걸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강하게 키워야 밖에서의 적응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잘했다 싶다. 실제로 나무는 흔들리면서 뿌리를 튼튼히 한다고 한다. 오히려 집에 있어서 약해졌을지도 모르는 뿌리에 비바람 치는 날씨가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내가 그 날씨에 밖에서 이틀을 지냈으면 몸살감기로 쓰러졌겠다. 그렇다면,  올리브 나무가 나를 걱정해야지, 내가 올리브 나무를 걱정할 일이 아니구나.

흰 꽃이 핀 쪽이 사과나무와 구분 안 가지만 그 옆이 수국! 사이좋게 지내라.

 자연친화적인 곳에서 살다 보니 도시에서는 보지 못한 생소한 일들을 겪게 된다. 우리 집 테라스에 죽어있는 새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너무 놀라 벌벌 떨었지만, 그 뒤 또 새가 죽어있는 것을 보니 처음보다는 차분해졌다. 모기나 파리보다는 집게벌레와 자주 마주친다. 참 흔한 벌레다.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눈빛에 놀라 천천히 뒤를 돌아본 적도 있다. 정말 엄청나게 큰 장수하늘소가 까꿍한다. 꺄악! 기겁했다. 여기 막 이사 와서 관리 사무소 아저씨에게 산 밑이라 동물 같은 거 나타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멧돼지도 도심 한복판을 질주하는 판에 집 뒤가 바로 산이면 멧돼지 할아버지라도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에이~ 그런 적 없어요.” 다행이다. “아, 근데, 예전에 뱀이 한 번 똬리를 틀고 엘리베이터 앞에 나타난 적이 있긴 하네요. 그러고 나서는 안 나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뭐라고요? 그 말을 듣고 며칠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발밑을 살폈다. 괜히 질문했다. 모르는 게 약인데.  

모닝커피... 아침에 커피 마시고 싶어 눈이 일찍 떠진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친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남자애들이 잠자리나 개구리를 왜 잡으러 다니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손도 못 데겠는데 말이다. 부모님이 산에 가자고 하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바다에서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죽 나열하고 보니, 자연과 친하지 못한 게 겁이 많아서였나? 심지어 강아지도 무서워했으니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 옆집 살던 검은 개 ‘메리’를 잊을 수 없다. 그 개는, 지금 생각해보면 강아지였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개로 보였는데, 무척 사나웠다. 사람만 보면 짖어댔는데, 그 우렁찬 소리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집 대문이 열린 어느 날 메리와 눈이 마주친 나는 본능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메리는 나를 쫒아왔다. 내 생애 통틀어 그렇게 빨리 달린 적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울타리 같은 데 올라타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했는데, 메리는 다행히 다리가 짧은 종이어서 올라오질 못했다. 그때 이후로 강아지 트라우마가 생겨서, 나를 보고 강아지가 막 짖으면 무서워하게 되었다. 강아지를 무서워한다는 게 겁쟁이처럼 느껴져서 비밀처럼 숨기고 지냈지만, 주변에 반려견 키우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제는 아주 사나운 녀석만 아니라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려견을 키우는 날도 오지 않을까!

배우 박서준씨도 키우는 비숑 프리제가 이쁨^^ 사진: 박서준 인스타그램

 이렇게 겁이 많은 나는 자연을 경험하는 쪽보다는 자연을 멀리서 지켜보는 쪽을 선호했다. 자연이 싫다기보다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두려움 때문에 자연에 대해 거리를 두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없어졌다. 이렇게 자연과의 연결 고리가 별로 없었던 내가 자연 이야기를 꺼내는 날이 올 줄이야. 자연친화적인 동네로 이사 온 것은 또 어떻고?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나무에 물 주고, 잡초 뽑고 있는 게 일상이 된, 이런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어떻게 내게 일어났을까? 이렇게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연스럽지' 않은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퇴사 즈음에 나는 내가 살아왔던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나에게는 다른 세상이 필요했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다른 세상이. 그래서 자연으로 왔다.  


 자연 이방인이었던 나는 어느새 자연 관찰자로 바뀌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 멀었지만,  자연 관찰자로서의 과정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 친구가 놀란다. 잡티가 왜 이렇게 많이 생겼냐고. “햇볕을 많이 받아서 그래. 아침마다 나무들 물 줄 때 그냥 나가서 했더니 그런가 봐. 바깥 풍경 보려고 하루 종일 커튼을 안치고 있어서 더 그렇고.” 나무만 광합성을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인 나도 광합성을 하고, 그 결과 몸과 마음의 아픔이 싹 치료되고 있다. 자연 관찰자가 얻는 훈장이 잡티라면 기꺼이 받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건강을 얻었으니 잡티 정도야. 

위에는 현재 작약 상태, 그리고 지난해 활짝 핀 작약.  이제 곧!!!

 “그 동네로 이사 가서 제일 좋은 점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 없이 “자연과 가까워진 거요.”라고 대답한다. “진짜 그렇죠?”라는 상대방의 호응을 기대했는데, ‘그게 장점인가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 되돌아왔던 적이 있다. 하긴 나도, 예전의 나에게 누군가가 “자연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한다면 영혼 없이 “그렇지요.”라고 했을지도. 이사온지 거의 3년. 자연 관찰자로서의 일상을 아직은 더 즐기고 싶다. 연애할 때 사계절을 겪어봐야 상대를 안다고 했던 말이 나무들을 보니까 비로소 이해가 된다. 사과나무 잎은 엄청 빨리 나고, 대추나무 잎은 진짜 늦게 난다는 사실, 로즈메리가 라벤더보다 훨씬 추위에 강하다는 것, 수국이 얼마나 오래가는 꽃인지 그리고 직박구리라는 새가 포도와 블루베리로 날아드는 시기가 대충 언제인지 이제 막 알기 시작했으니까.  그밖에 더 알아야 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심은 적이 없지만 피어난 제비꽃, 그리고 대나무 사이에 소나무도 마찬가지. 

 완전히 자연 속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숲 속의 작은 집으로 지금 당장 떠날 수는 없더라도, 가끔은 자연을 찾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결국 자연이니까 자연 속에 있어야 가장 우리다워지지 않을까. 자연을 지켜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자연이니까. 자연을 지키는 일이 우리를 지키는 일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