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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Feb 22.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한번 써봅시다

 운동을 하다 허리를 삐끗했나 보다. 떨어진 수건을 줍기 위해 몸을 굽힐 때도 통증이 느껴진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불편하다. 뭐, 순전히 운동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운전할 일이 많았는데, 특히 막히는 구간에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오랜 시간 번갈아 밟으면 이럴 때가 있다.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의 나를 되돌아본다. 차선을 옮겨볼까 싶다가도 그런 시도도 왠지 부질없게 느껴진다. 멍한 눈빛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복잡한 내 머릿속과는 달리 시간은 막힘이 없다. 2월 달력을 넘긴 게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 며칠 뒤면 한 장 더 넘겨야 한다. 내 하루는 똑같고, 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겠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잘만 흘러간다. 얄밉다.


 오늘이 며칠인지 인지하고 나니 덜컥 마음이 급해진다. 분명 1월 안에, 늦어도 2월 안에 책 프로젝트를 실행해 옮길 계획이었지만, 정체 구간에 기름만 소비하고 서있는 차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다. 분명 힘은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신경은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자리에 그대로다. 의욕으로 부풀었던 1월 초의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이라도 되어 버린 걸까. 며칠 지난 식빵처럼 푸석푸석해진 내 마음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가. 의욕과 공허가 한 끗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책 한번 써봅시다>. 누군가 내게 뭘 해보라고 권유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나이, 장강명 작가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꺼내 읽었다. 내 책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형편없는 책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자꾸 물러서는 내게 그는 어떤 말을 해줄까.


이런 분께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멋진 책을 쓰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것과 책을 아예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서는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졸작을 써도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다음 책’이라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그렇다. 계속 미련을 두며 사는 삶을 평소에 얼마나 비웃었던가. 그런 나는 정작 쓰는 것도, 그렇다고 쓰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붙잡아 두고 있다. 물론 시간을 붙잡고 있다는 것도 내 착각일 뿐일 테지만. 아무튼 장 작가의 말대로 졸작이라도 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데는 동감할 수밖에 없다. 작년, 아니 재작년에 있었던 피아노 연주회가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질 수준의 연주였지만, 만약 연주회를 열지 않았다면... 내게 아무런 연주회 경험도 쌓인 게 없고, 다음 기회라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코로나라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까지 생긴 이 시점에 연주회는 막연한 꿈으로만 남아 있었겠지.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경험과 깨침이 있었다. 그때 이룬 성장으로 나는 지금도 계속 피아노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고, 다음에는 더 멋진 연주회를 준비해야겠다는 희망도 덤으로 가지게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쪽이 나은 선택이다. 이왕이면 잘하면 더 좋겠지만.

  그럼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잘 쓸 수 있는지, 에세이 쓰기에 대한 조언들을 집중적으로 읽어보자. 에세이는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만큼 도전도 많고 경쟁도 치열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간은 출판기획자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편집자들이 에세이 원고를 검토할 때 공통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은 ‘원고를 요약해서 소개문을 썼을 때 독자가 그 내용을 흥미롭게 여기고 전문을 읽어보고 싶어 할까?’ 그러니까 ‘독자의 시선’이다. ‘독자의 시선’에 대해서는 브런치에 올리는 내 글들을 보고 건네는 최정화 작가의 조언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지 타기팅 targeting 을 구체적으로 하라는 것. 언뜻 보면 조금 다른 말인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붓가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누구를 향해 쓸 것인지, 독자의 시선을 의식해서 쓰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유튜브 채널도 마찬가지다. 에세이처럼, 어쩌면 에세이를 쓰는 일보다도 더 진입 장벽이 낮은 유튜브 채널은 독자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자들이 책을 몇 장 읽다가 덮어버린다고 작가가 일론 머스크의 말에 요동치는 비트코인처럼 민감하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유튜버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성적표가 바로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유튜브를 해보니, 구독자수를 끌어올리는 일도, 조회수를 높이는 일도 그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유명 셀럽이면 얼마간의 구독자수나 조회수는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어떤 콘텐츠를 보여주느냐, 특히 그 내용이 구독자들이 얼마나 관심 있어하는 것이냐에 따라 채널의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다. 나처럼 소소한 채널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든 것보다 구독자들 맞춤형으로 진행한 에피소드가 조회수가 훨씬 많다. 물론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본인 마음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개인 소장이 목적이 아니라면 구독자의 니즈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자신의 관심 분야 중에서 구독자들과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아이템들을 다루는 것이 실패의 확률을 낮출 수 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데, 내 채널은 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비트코인으로 장난치는 것은 아니...죠?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다. 다시 에세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장 작가의 조언은 이렇다. ‘세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내면을 더 많이 드러내 줄 수 있는 글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내가 하는 일, 나의 직업이다. 몇 년 이상 한 분야에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만의 경험이나 태도, 의견이 있을 것이다. 아나운서를 그만둔 지 5년이 훌쩍 넘은 나도, 15년간 몸담았던 아나운서 일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고 나니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 놓쳤던 것들도 새로 보인다. 프리랜서 일의 경험까지 더해져 나만의 비교도 가능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이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혹은 일을 얻는 과정에서, 아니면 일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누구나 치열한 삶의 깨달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고,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그런 좋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2021년 2월의 마지막 월요일,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남긴 조언들을 곱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사실 몰랐던 이야기는 없다. 다 알지만 하지 않았을 뿐. 그동안 예열은 지나치게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시동만 건다고 차가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잖아. 원하는 목적지에 가려면 액셀은 밟고 핸들은 꺾어야 한다. 그래, 이제는 정말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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