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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18.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집콕 해제 선언

그렇습니다.

집콕이 해제되었습니다. 제 상태가 금방 호전돼서 배액관을 더 빨리 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 가면서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입니다.

들뜬 마음에 병원 예약시간이 한참 전부터 목욕재계라도 하고 싶었지만, 샤워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대신 얼굴에 파운데이션이라는 것을 발라봅니다. 혈색이 돕니다. 눈썹도 그려봅니다. 오랜만에 그리니 어색하지만, 살짝 예뻐 보입니다. 더 강한 임팩트를 위해 립스틱을 발라봅니다. 오... 멀쩡한데! 생각해보니 마스크를 벗을 일이 없어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내적 자신감은 올라갑니다.


옷은 뭘 입을까... 압박복으로 뭔가 두둑한 가슴 부분을 가려주면서, 아직은 달고 있어야 하는 배액관도 살짝 숨겨줄 그런 옷이 필요합니다. 이삿짐을 좀 싸 놓았더니 옷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충 애매한 복장을 골라봅니다. 배액 주머니는 하의 주머니에 넣었는데, 배액관의 줄은 자꾸 삐져나옵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병원 가는 거니까 그 정도면 봐줄 만해 보입니다.


일주일 만에 잡은 운전대. 운전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도전합니다 조심스럽게 앞좌석에 몸을 구겨 넣습니다. 안전벨트에 배액관이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가슴을 너무 누르면 안 좋을 것 같아 약간 배 쪽으로 안전벨트를 둘러봅니다. 시동을 걸고 출발! 평소보다는 느리게 달립니다. 팔에 힘을 주기 힘들어서 그런지 운전대 잡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납니다. 병원에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길게는 운전하기가 힘들 것 같거든요.


무사히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계단을 오릅니다. 병원 로비로 들어섰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합니다. 앗차 싶어서 옆을 확인해 보니 배액 주머니가 옷 주머니에서 탈출한 것입니다. 계단을 너무 힘차게 올라왔나 봅니다. 사태를 수습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걸어갑니다. 생각해보니 여긴 어차피 병원이고, 병원에 제일 흔한 게 환자인데, 뭐 어떠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복주머니 모양같이 생긴 이 배액 주머니를 일주일 달고 있었더니, 이제 미니 핸드백처럼 느껴집니다. 적응이란... 참 무섭습니다.


환자용 가운으로 갈아입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보면 배액관 빼낼 때 아프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이런저런 아픔을 경험했는데, 하나 더 추가해야 되는 건가요. 쾌활한 의사 선생님이 불편한 곳은 없었는지 확인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속으로 생각했죠. ‘진짜 아픈가? 긴장을 풀어 주려고 저렇게 말을 시키는 건가?”그러나 제 예상은 기쁘게도 엇나갔습니다. 솔직히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저는 빌었죠. 이 아이에게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착하게 살게요...! 붙어 있을 때는 미친 듯이 저를 괴롭게 만들더니 떠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 소문도 없이 퇴장합니다. 물론 고맙죠. 만약 마지막 빼는 순간까지 지독하게 아팠다면 진짜 용서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여기까지는 정말 모든 게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생은 반전이죠, 그게 없으면 심심한가 봅니다.

“운동은 안돼요. 하체는 바로 하셔도 되는데, 상체 운동은 6개월 동안 안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 없다고요? 등 운동도, 팔 운동도, 어깨 운동도... 다 안된다고요?

“배액관 뽑아낸 자리가 완전히 아물고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안됩니다. 그게 거의 6개월 걸려요.”

“네.... 에?”

이놈의 배액관!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정말 붙어있을 때부터 찰거머리처럼 나를 괴롭히더니 아주 뒤끝이 작렬하는구나. 저는 정말 멘붕이 왔습니다. 저는 한 달 정도만 참으면 운동을 다시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일상으로 완벽히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운동 못하는 것 가지고 왜 그렇게 난리냐고요? 보기와 달리 저는 운동에 진심입니다. 몸에 크게 표가 나지 않지만, 거의 매일 운동가는 사람입니다. 특히 등 운동과 팔운동에 요즘 꽂혀서 막 턱걸이도 도전하고, 사실 한 번도 성공은 못했지만 거의 돼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신나게 운동하고 있었거든요. 신이시여... 저 정말 몸짱 되고 싶었어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제 앞길을 왜 막으시는 거예요. 제가 몸짱 되는 거, 그렇게 차마 볼 수 없는 일인가요. 정말 몸짱 될 수 있었단 말이에요... 라기보다는 운동은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웬만하면 빠짐없이 하는 활동,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처럼 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돌아오는데 6개월이라니... 헉!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토록 원하던 배액관을 빼낸 기쁨도 잠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을 놓쳐서 엉뚱한 길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옷을 아무 데나 뭉쳐 놓습니다. 스트레스가 확 올라옵니다. 뭔가를 먹어야겠습니다. 지금 이 혼돈의 상황은 라면으로 조금 삭여봅니다. 화가 나도 라면은 역시 맛있네요. 뜨끈한 라면 국물과 함께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롤러코스터 급 감정 기복을 보여주는 글을 쓰고 있네요.


결국... 쓰다 보니, 또 깨닫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구나. 그 지긋지긋한 배액관도 제거하고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는데, 그거면 괜찮지 않을까. 조금 실망스럽지만,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마음이라도 편하게. 최소한 하체 운동, 유산소 운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마음이 조금씩 풀립니다. 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쓰기는 했지만, 제 마음의 상태는 아직 정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제게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요,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답입니다. 그렇게 괴로웠던 이번 일도 제 기억 속에서 언젠가는 흐릿해지겠죠.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그날이 더 빨리 올지도 모릅니다.


잊고 싶지 않은, 붙잡고 싶은 그런 시간들로 가득 찰 앞길을 스스로 응원하며, 갑자기 시작된 저의 집콕 드라마, 여기서 갑자기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저도 건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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