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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21.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조금 돌아온 일상

한몸이었던 배액관과 이별하고 나니 여러모로 홀가분합니다. 누울 때도, 일어날 때도, 앉을 때도 걸리적거렸던  아이가 정말 지긋지긋했는데, 막상 없어지니 휑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기분 탓이겠죠.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하루 정도는 잠깐잠깐 그랬습니다.


프로운동러는 아니지만, 상체운동을 꽤 긴 시간 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 원수 같은 배액관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술도 정말 피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요, 건강.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언급하게 되는 단어. 정말 나이가 많아지면 이것을 빼고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것. 그래서 건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이 들었나?’를 실감하게 돼서 조금은 피하고 싶었던 주제. 아무튼 건강이 중요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사를 앞두고 무거운 짐들도 옮기고,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고... 그 외에 이것저것 힘쓸 일이 많은데 할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 좀 지났으니 괜찮은 것 같아 작은 짐을 들어 봤는데, 조금 당기는 느낌도 들고 불편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입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더 좋아지겠죠. 한 달 뒤면, 더 뒤면 훨씬 좋아질 테고요. 남편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수술해서 제 수발을 드느라 고생했는데, 이사도 오롯이 남편의 몫입니다. 그동안 남편은 지금을 위해 근육 운동을 많이 해왔던 걸까요. 수술을 앞두고 혹시 몰라 정리를 미리 해두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쓸 일이 많더라고요. 6년을 여기서 살았는데 그 사이 짐들이 많이 늘었나 봅니다. 이사는 그런 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죠. 당분간은 물건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스멀스멀 짐이 또 늘어있겠죠?


이사 날짜가 임박하면서 저는 당근 마켓에 뛰어들었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저는 오래된 가방 몇 개를 내놓았는데, 올리자마자 채팅 알람 창에 불이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인데, 마치 제 인기가 올라간 것 같은 그런 기분도 들더라고요. 신나서 물건들을 막 방출했는데,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런 인기는 낮은 가격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선배 당근러들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며, 그 물건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처분할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써야 잘 팔린다고 코치했었거든요. 그러나 그 이야기가 꽤나 많은 당근러들 사이에 다 퍼져있는지, 다들 작가 지망생급으로 글들을 잘 올리더군요.


결과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물건, 덜 낡은 물건,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쓸만한 물건이라는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력은 역시 가격이었습니다. 초보 당근러인 저는 감이 없어서 제 물건의 가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을 매겼거든요. 오래되고 유행도 지난 가방, 보관 상태는 양호했지만요, 누가 가져갈까 싶었는데, 구입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 20분의 1도 안 되는 값에 내놓으니 생각보다 잘 팔렸습니다. 채팅창의 어떤 분들은 다음 물건 올리는 날짜가 언제냐고 물으시기까지 하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가격을 너무 낮췄구나!


아무튼 가방 몇 개와 가구, 가전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제게 소중했던 것들이 값싸게 팔려나가니 속상하더라고요. 하지만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기회를 얻은 물건들은 그나마 행운이었습니다. 여전히 갈길을 잃은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그 물건들은 그냥 재활용에 버리거나 폐기물 처분을 해야 하는데,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식탁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글도 쓰고, 유튜브도 찍고... 제 시간의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냈죠. 정말 멋진 식탁인데... 왜...  그렇다고 다른 소형 가구들처럼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 제 추억이, 제 시간들이 같이 동반 하락하는 기분이거든요. 갑자기 제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네요. 팔려도 문제, 안 팔려도 문제인 거죠.


주인을 찾아 떠난 자리는 덩그러니 비어 있습니다. 이제 다른 물건들도 하나씩 여기를 떠나겠죠. 저도 마찬가지지만요. 만약에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좀 더 진한 감상에 빠져 이 물건들과, 이 집과 시끌벅적한 이별식을 거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사를 핑계로 술도 마시고, 술을 마시다 추억이 터져서 눈물까지 났을지도요.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인지 무척 담담한데요, 또 모르죠. 앞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여기를 떠나는 마지막 날엔 눈물이 펑펑 날지도. 모든 이별은 아프고 아쉽고 서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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