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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31.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이사와 회복

수술 후, 일상으로의 복귀는 내 몸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은 이런저런 상황을 봐주지는 않으니까요. 간단한 수술일 거라고 믿었던 저는 이삿날 2주 전에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작은 수술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일주일 동안 배액관을 차고 있던 저는 그 징그러운 놈을 빼는 경사스러운 날,  6개월 뒤에나 상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은 당분간 무거운 짐을 옮기지 말라는 뜻이었죠. 그래요, 저는 다음 주가 이사였습니다.


이사. 요즘에 포장이사를 해주니 뭐가 걱정일까 싶지만, 이사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 손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버리고 갈 물건들도 많고, 따로 챙겨둬야 할 물건들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의 이사는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먼저 보관창고로 짐을 보내고, 임시 거처에서  지내다가, 7월 중순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임시 거처용 짐과 창고행 짐들을 각각 나눠 정리해야 했습니다. 이삿짐의 규모도  많이 줄여서 보내야만 했죠. 창고와 임시 거처의 크기를 고려해서 말이죠. 결국 이삿날이 오기 전에 대대적인 버리기 작업이 꼭 필요했습니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일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수술 부위가 당기는 느낌이 들어 잠깐만 물건을 옮겨도 아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이 돼가는지, 다행히도 조금씩 일의 양을 늘려갈 수 있었습니다. 냉장고부터 살펴봅니다. 냉장고 안에 유통기한 지난 간장과 식초, 찬장에 놓아둔 참기름과 올리브 오일들은 아깝지만 버려야만 했습니다. 배달 음식에 달려오는 1회용 피자 핫소스, 회 초고추장, 케첩들은 왜 그렇게 모아두었을까요.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거라고 믿었나 봅니다. 도대체 언제... 배달할 때마다 계속 갖다 주는데 말이죠. 냉동실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김을 모으는 게 취미였나 봅니다. 아니면 고춧가루였을까요. 아무튼 냉장고 비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내용물들을 버리는 것도 일이고, 그렇게 나온 빈용기들을 버리는 것도 일이었으니까요.


패셔니스타는 아니지만 저는 옷도 많았습니다. 옷은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정리를 하는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옷은 서랍을 열 때마다 ‘까꿍’하고 튀어나왔습니다. 남편 서랍 안에서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옷들과 심지어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한, 택이 붙어있는 옷도 나왔습니다. 아... 느슨한 기준으로 옷을 둘지 말지를 결정했던 제가 달라져야 할 때가 온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정말 옷들이 저를 집어삼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년 말고, 1년 안에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 유행이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있었던 아이들도, 평소 제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언젠가 특별한 날에는 입을 거라고 여겼던 아이들도, 살이 빠지면 입을 거라고, 반대로 지금보다 몸이 불었을 때를 대비해 남겨둔 아이들도... 모두 처분했습니다. 옷이라는 거대한 산을 몇 번 오르고 내리고 나니, 옷을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아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사람이란 고쳐쓸 수 없다고 하니... 언젠가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옷을 다시 사기 시작하겠죠? 그때를 대비해 하나를 버려야 하나를 들일 수 있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책... 책들도 엄청났습니다. 책은 옷보다도 더 버릴 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자를 알면 알아서, 모르면 몰라서, 미안해졌습니다. 나름의 기준을 세웠는데요, 일단 제게 서명까지 해서 선물로 준 책들은 남겨두었습니다. 나중에 내 책이 나왔을 때를 상상하니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책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그래도 양심상 막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 내 곁에 두고 싶은 마틴 게이버그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를 글로 옮긴 “다시, 그림이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미셸 오바마의 “Becoming” 같은 책들... 전신 마취 영향인가요, 더 이상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멋진 책들은 일단 남겨두었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남겨두었지만 여전히 읽지 못한 책들은 선별해서 버렸습니다. 제 취향이 아닌 책들은 보내고, 그래도 취향에 가까운 책들은 뭐... 언젠가는 읽겠죠. 아무튼 선택된 책들을 이사 박스에 옮겨보니 여전히 방대했습니다. 그렇게 줄였는데... 누가 보면 교수님인 줄 알 것 같습니다.


역시 이사를 앞두고 조금 무리했나 봅니다. 처음에는 상처부위가 살짝 쑤시더니, 이사 나가기 전날 저녁에는 격렬하게 아팠습니다. 밤에 자다가 통증 때문에 중간에  정도였으니까요. 수술하고 최소한 2주는 일상생활 정도만 해야 하는데, 이러다 큰일 나는  아닐까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보니 손이 나가더라고요. 쓸데없이 성격은 급해서...


수술 경과를 보러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사때문에 팔을 많이 썼는데 괜찮을까요?” 쑤신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이야기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헛웃음을 지으시더군요. 일단 수술 부위가 문제는 없어 보이니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잘못하면 상처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고, 꿰맨 놓은 곳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  가만히 있을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사는  어떻게 하나요?


이삿날을 정점으로 제 통증은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팔 사용을 자제하고 있거든요. 뭐, 강도는 많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가끔씩 콕콕 쑤시고, 살짝 거슬립니다. 상처가 아물기는 하고 있는 거겠죠? 지금 느끼는 이 작은 통증이 상처가 덧난 게 아니라 잘 낫고 있다는 신호이길 바랍니다. 이 신호가 멈추면,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예전의 일상으로 더 가까워질 때까지 조금 더 조신하게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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