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집콕 3.5일 차... 그 어디쯤
처음에 두려웠던 집콕이 이젠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가슴의 통증은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다만 밴드를 붙여놓은 부분이 간질간질하고, 압박복에 살이 끼이고 스쳐서 너무 괴롭습니다. 알고 보니 피부 트러블이 더 큰 문제였네요. 배액관의 양은 매일 밤 체크해서 적어놓고 있는데, 조금씩 줄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씩 뭐가 나오는 걸 보면 수술은 수술이었나 봅니다.
배액관을 꽂은 경험은 참으로 낯섭니다. 누군들 다 마찬가지겠죠. 자신의 몸에 뭔가 꽂혀 있다는 것... 이 배액관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때 의사 선생님이 말해주셔서 알았지요. 제가 배액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꽤나 오랫동안 달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다행히 배액량이 많지 않고, 계속 줄어서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말 미친 듯이 이것을 떼 버리고 싶습니다. 제 몸에 뭔가 이물감이 느껴진다는 게 너무 거슬립니다. 그 생각에 꽂히면 신경이 무척 예민해집니다. 떨지 않던 다리도 떱니다. 저는 어렸을 때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절대 다리를 떨지 않습니다. 복이 달아나는 것을 정말 원치 않았나 봐요. 그런 제가 배액관에 대한 생각을 하면 다리를 떨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리를 떨다 보니 주말이 왔습니다. 같이 놀아줄 사람이 생기니까 제 마음도 좀 편안해집니다. 글 쓰는 것도 잠시 멈췄습니다. 그냥 일상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아... 하나 있네요. 집콕을 이어가던 저는 주말 아침, 큰맘 먹고 외식을 감행했습니다. 집밥에 물리기도 했고, 저 때문에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남편을 생각해서 선지 해장국을 먹으러 갔습니다. 남편은 해장에, 저는 선지에 초점을 맞춰 선택한 메뉴입니다. 어디선가 선지가 빈혈 예방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요. 이번에 출혈이 꽤나 있었으니 선지 해장국을 먹으면 좋을 거란 생각입니다. 원래 저는 선지 해장국은 먹지만 선지는 먹지 않습니다. 제 국에 있는 선지를 다 남편에게 주고, 저는 국물과 시래기만 먹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선지를 먹습니다. 큰 덩이는 도저히 안 넘어가고 조각조각 내서 작은 조각을 먹습니다. 크고 작고가 무슨 차이인 줄 모르겠지만, 비위가 약한 저를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뭐가 됐든 입에만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선지의 맛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삼켜버렸거든요. 목으로 넘기자마자 바로 깍두기를 투입합니다.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도록요. 이럴 때는 정말 꽤나 철두철미합니다.
선지 해장국을 무사히 흡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드라이브 쓰루 별다방도 들러봅니다. 집에서 내린 커피만 먹다가 바깥 아이스 라떼를 먹으니 꿀맛입니다. 커피도 남이 만들어준 게 더 맛있나 봅니다. 퇴원한 이래 첫 외출, 잠깐이었지만 제겐 숨이 트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잠시라도 제 상태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요 며칠 동안 저에 대한 저의 관심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지쳤거든요. 비록 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배액관 선이 주책없이 옷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무척 신경 쓰긴 했지만요. 그래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니 좀 숨이 쉬어집니다. 하긴 숨이 잘 쉴 수 없었던 이유는 압박복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집으로 돌아오니 다시 답답해집니다. 현실로 복귀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선배가 브런치 글을 보고 걱정된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카톡으로 선배와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저도 지겨운 이 이야기를 오래 끌 수는 없어 선배의 미국 생활로 주제를 바꿔봅니다. 여러모로 저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 선배의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습니다. 키우고 있는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눕니다. 두 살 좀 넘은 아이인데, 한 살 때 선배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원래는 한국식 이름이 있었는데, 미국 이웃들을 배려해서 미국식 이름으로 바꿨답니다. 그런 배려도 몰라주고 한국 사람만 좋아한다는 그 아이의 남다른? 영특함에 웃음이 납니다. 나무에 기대 앞다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그 아이의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제 생각나서 연락해준 선배가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선배를 본지도 꽤나 오래되었네요. 백신을 다 맞은 선배는 자가격리 규정 때문에 한국에 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요, 제 생각만 하느라 일상이 돼버린 코로나 19 잊고 있었네요. 도대체 지긋지긋한 팬데믹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끝이 있긴 한가? 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이 없는 고통은 희망도 다 사라지게 만드니까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어 보여도 희망이 있다고 내 마음 밑바닥에서는 믿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믿고 싶잖아요.
저도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몇 자 끄적여 봅니다. 말한 대로, 믿는 대로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