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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07. 2022

미술관 가는 길

매일, 그림을 보러 갑니다

 한 달간의 일정으로 배낭 아니 트렁크 하나 질질 끌면서 1996년 여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유튜브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세상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본 것 같이 잘 아는 그런 시절이 오기 훨씬 전, 꾸깃꾸깃해진 지도를 뚫어질 정도로 들여다봐도 자꾸만 길을 헤매야만 했다. 지금이야 유럽을 몇 번씩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게 세세한 맛집까지 추천받을 수 있지만, 그 당시는 단체 관광으로 다녀온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인터넷 검색 찬스 따위도 없으니 여행책은 성서와 다름없었다. 자유여행이었지만 여행책에서 제시하는 동선대로 모두가 똑같이 움직였는데, 각 나라의 명소들 중에 미술관들이 빠지지 않았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만화가를 꿈꾸었던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반강제적인 미술관 일정에 처음부터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도 삼촌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을 때 보러 간 거 외에는 미술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미술관은 꽤나 중요한 동선이었다. 뙤약볕에서 밖으로만 돌다가 실내에서 쾌적하게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쾌적한 실내 온도와 쉬어갈 수 있는 벤치, 그리고 깨끗한 화장실이 제공되는 곳. 미술관은 유럽 배낭여행의 필수 코스임에 틀림없었다.

  런던의 어느 미술관.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문화 교양인으로서 그냥 나갈 수는 없기에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근엄한 표정의 중세시대의 왕과 귀족들, 치열한 전투의 한 장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로 가득 찬 전시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빛바랜 금빛 액자들은 내가 바라보는 이 앞의 세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임을 더 강조하는 경계선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꾸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나만 몰입이 안 되는 거냐…?’ 그림을 보는 일에 영 집중할 수 없었다. 산만해진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관람객들은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그림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무슨 세포라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목을 길게 빼고 관찰하기도 하였다. 나도 알아보는 유명한 작품 앞에서는 정체현상도 일어났다. 어느 순간 나는 그림이 아니라 그곳의 관람객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저들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보고 있는 걸까. 작품 앞에서 왜 오만가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가. 나는 작품보다 오히려 관람객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그림 앞에서 뭐 아는 척, 좋아하는 척, 연기하는 것은 아니겠지. 박수를 쳐야 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려 눈치싸움을 벌이다 ‘연주의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좀 늦게 친 것뿐이야…’라고 나 자신을 수습하는 것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이 미술관에, 이 분위기에 녹아들고 싶었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사람 옆에서는 나도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응수했고, 작품을 여기저기 뜯어보는 사람 옆에서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작품을 해체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남다른 습득력으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아트숍에서 해바라기 프린트를 구매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였다.

  몇 년 전인가,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꽂혀 뉴욕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를 기필코 가야겠다 결심했다. ‘방송 스트레스도 풀 겸 다녀올게…’라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면 좋겠지만, 일을 떠난 나는 그럴싸한 핑계가 없었다. 게다가 2월의 뉴욕이라니,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도 아니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의 카네기홀 공연까지 보고 올 수 있는 음악과 미술의 역대급 콜라보 스케줄이라고 빡빡 우기면서 전시 종료 전날 아슬아슬하게 뉴욕에 도착했다.

  호크니의 계절 연작을 첼시에 있는 PACE 페이스 갤러리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유명한 수영장 시리즈를 내 눈으로 영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랄까, 나는 물속에 첨벙하고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온몸의 감각이 깨어났다. 호크니의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에 멍하고 흐릿한 내 눈은 몽고 사람들처럼 시력이 급상승하였다. 호크니라는 세상에 완전히 몰입한 나는 그가 그린 수영장에서, 들판에서, 도로에서, 정원에서 활개 치고 다녔다. 사람들 틈을 헤집고 최애 아이돌이라도 만난 것처럼 사진을 찍어대던 내게 시차 따위는 없었다. 지치기는커녕 힘이 솟았다. 밝거나 어둡게, 화려하거나 심플하게, 구상이든 추상이든 어떤 형태로든 뿜어내는 에너지가 좋았고, 그 날것의 기운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나처럼 미술관과 갤러리를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피카소 전시도 첫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그야말로 사람이 미어터졌다. 오죽하면 2명 중에 1명은 다녀온 전시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당연히 피카소니까 그렇기도 하고, 코로나 여파로 갈 곳이 뻔해진 사람들이 전시회로, 미술관으로 몰리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거기에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까지 폭발적으로 늘면서 현대 국립 미술관에서부터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까지 피켓팅(피 터지는 티켓팅) 전쟁 중이다. 원래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치열할수록 더 끌리는 법이다. 경쟁을 뚫고 빠르게 다녀온 친구의 피드에 뒤쳐진 기분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관람객들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들, 컬렉터들도 늘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지인은 예전에는 그림 살 생각을 한 번도 못했었는데, 3,4년 전부터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사게 되면서 지금은 그림이 자산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나처럼 전시회만 다녔던 사람들이 이제는 작품을 소장하는 데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전시를 보고 나서 작품 가격을 묻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꽤나 자연스럽다. “이 작품 판매가 가능한가요?” “작품을 좀 홀딩할 수 있을까요?” 갤러리에서 흔하게 오가는 대화들에 나도 프로페셔널처럼 묻어간다. 호기롭게 작품 가격을 묻지만,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 구하기도 어렵다. 아트 페어나 전시 오프닝에 샤넬 매장에 달려가듯 오픈런해야 한다. 물론 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갤러리 vip들을 대상으로 선예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기다려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전시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솔드아웃입니다”가 돼버렸다. 가끔은 이렇게 과열되는 게 정상인가 싶다가도, 메타버스나 NFT 같이 알듯 말듯한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에 그림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안심되기도 한다.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직 살아있다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뜻대로 현재를 바꾸거나 함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환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제 미술도 상품이 되었고,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지만, 상품으로써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결국 미술관이 아닐까. 물론 순전히 미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가끔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서 혼자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노린다. 작품과 나만 존재하는 세상,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없다. 나는 작품을 보고 작품은 나를 보고 있다. 작품이 내 취향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이 순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적뿐일지도 모른다. 그 정적은 평온과 고독 사이를 오간다. 지금 이 순간이 온전히 내 것인 것 같은 포만감은 덤이다. 나는 적막한 이 공간을 추앙한다.

  좋아하는 그림의 취향이 다 다르듯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도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앞의 그림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든지 상관없이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차지 않은가. 불안과 긴장의 시대에 느릿느릿 걷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림 앞에 서 있다.

<매일, 그림을 보러 갑니다>   이것은 여성 조선 7월호에 실린 제 칼럼의 에세이 버전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썼는데, 다시 수정하는 바람에 쓴 원고가 아까워서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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