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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04.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소확행을 추억하라.

 팟캐스트를 하면서 SNS를 통해 불쑥 질문을 던지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일단, 팟캐스트 제작에 꼭 필요한 부분이고,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살짝 엿볼 수 있어 즐겁다. 덤으로 질문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하나 더 생겨 숍 인 숍 (Shop in shop, 매장 안에 또 다른 매장을 만들어 상품을 판해하는 형태)을 차린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거듭되는 나의 질문에 질려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답을 기다리는 기쁨이 커서 이제는 그만두기 힘들다. 요즘 흔한 말로 소확행이라고나 할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주제로 한 영화, 리틀포레스트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끼가 처음한 말. 사진: 스포츠 서울

 며칠 전에도 질문을 했다. “어떤 목소리를 좋아하나요?”  뮤지컬 배우 옥주현 씨나 가수 성시경 씨 목소리 좋다는 분, 가수 박정현 같은 약간 하이톤의 귀여운 목소리가 좋다는 분, 발음이 정확한 저음의 목소리가 좋다는 분들까지 다양했다. 라디오 진행할 때 내 목소리가 그립다는 분들도 있어 더욱 신이나, SNS 안, 나의 작은 창구를 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내가 라디오 프로그램 ‘올 댓 뮤직’을 진행했을 때를 기억하는 옛날 팬의 글을 보았다. 13년 전이라고 했다. 아... 13년 전이었나. 2004년 봄에 시작했으니까, 그렇네. 13년 전 18살, 학창 시절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셔서 고맙다는 말에 찡하다. 나도 잊고 있었던 라디오 심야 방송 디제이 시절, 새벽 세시부터 다섯 시까지, 이 시간에 누가 깨어 있어서 이 방송을 들을까 싶었던 시간. 그래도 이 프로그램으로 나를 기억하는 분들을 아직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간이었나. 스물아홉, 샐리의 추억으로 잠시 돌아가고 싶다.

이런 식으로 합니다요! 제 인스타그램에서...

  그 당시 우리 프로그램은 오프닝인 ‘샐리의 잠 못 이루는 밤- 스물아홉의 디제이는 샐리이자, 우리 주변의 흔한 친구 같은 설정이었다-과 두 개의 코너만 작가의 원고로 진행되었고, 음악이 나가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내 몫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해야 할 말이 진짜 많았다는 거다. 자유롭게 말할 시간이 많으면 좋은 거지, 뭐가 문제냐고? 많은 심야 방송이 그렇듯이 대부분 녹음을 하게 되는데, 녹음 방송은 세상에 큰일이 생겨도 말할 수 없고 그날 그날의 날씨도 말할 수 없는 게 문제다. 마치 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나만의 시간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굳이 녹음 아닌 척하지는 않았지만, 녹음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나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프로그램 홈페이지의 청취자 게시판 외에 딱히 청취자와 소통할 공간이 없는 것도 지금의 방송 시스템과 비교하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 역시 녹음 방송이라  생일 축하도 놓치기 일쑤고,  소개를 제때 해도 그 맛이 살지 않아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었다. 

찾아냈다. 옛날 홈페이지! 나의 첫 피디 선배는 박혜영 선배님(배철수 선배님과 아주 가까운 관계이심)  사진: imbc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나가야 하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니 환경 탓을 할 수는 없는 법. 머리를 쥐어짜며 할 말을 만들어냈다. 하루치를 녹음하는 날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하루에 이틀 치를 녹음하는 날에는 정말 할 말이 떨어졌다. 이틀째 3부즘 녹음할 때는 머리도 텅텅 비고, 내 영혼도 텅텅 비고. 나의 아무 말 대잔치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말도 매일 하면 할 말이 없다는 게 현실. 그래서 그때 영화도 많이 보고, 공연도 많이 다니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내느라, 참 바쁜 나날을 보냈다. 충전과 방전이 매일같이 반복해서 일어났던 시절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피디 선배는 남이 써준 원고가 아닌 네 이야기를 하라고 늘 주문처럼 말했는데, 그것도 약간의 부담이 되었다. 고인이 되신 나의 아름다운 선배님이 진행하셨던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사랑해주셨던 팬들이 많았는데, 개편을 하면서 그 자리에 들어온 프로그램인 것도 이래저래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내 이야기를 그렇게 할 게 있나, 내가 뭐라고...’라는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이건 네 프로그램이야. 주인의식을 갖고 너의 이야기를 해봐.”라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피디 선배. 말은 그렇게 차갑게 해도 나의 얼토당토 한 이야기에도 편집하지 않고 조용히 웃어주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지금 이렇게 팟캐스트를 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 그 피디 선배 덕분이다. 그 선배는 또 나에게 라디오 콘솔을 다루는 법을 배우라고 했는데, 만지는 기계마다 오류를 일으키게 만드는 자기장이 흐르는 나는 회사 기물 파손죄로 곤란해질까 봐 마다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된다. 진작 배웠더라면 지금도 팟캐스트도 하면서 고생이 덜했을 텐데... 좀 배워뒀으면 배철수 선배님은 넘사벽이지만, 나의 라디오 디제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선배 말은 좀 듣는 걸로.  

정은임 선배님. 모든 면에서 너무 아름다웠던 선배님! 나를 나무같은 후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짧을 줄 몰랐던 선배님과의 추억.  사진: 미디어오늘

 처음에는 ‘내 이야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뉴스를 주로 했던 내가 라디오를 통해 ‘내 이야기’를, 그것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은 스트레스 많은 나의 회사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스튜디오에 나 말고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며, 콜라의 '모기야'를 선곡하고,  모기와의 대화를 시도했던 -아마 모기도 라디오 게스트가 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지만 - 어느 새벽의 헛소리도 기억난다. 어느 날 새벽, 여의도 MBC 맞은편에 있던 편의점에 방송 시간에 맞춰 갔던 적이 있다. 나름대로 현장 시찰이라고 할까. 내 방송이 요즘 말로는 나름 병맛이 있어서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믿었던 데다, MBC 앞인데, 91.9를 듣겠지 싶었다. 아니었다. 다른 방송을 듣고 있었다. 크게 실망한 나는 점원에게 ‘왜 올 댓 뮤직 안 들어요?’라고 계산할 때 말할 뻔했다. 그러고 나서 그 새벽의 충격적인 사건을 청취자들에게 이르면서 지금 방송 듣고 계시냐며 전국의 편의점 점원 분들에게 한동안 출석체크를 했던 일도 떠오른다. 청취자들이 보낸 고민거리에 정답 같은 정답은 말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순간들도, 어느 날 너무 지쳐-아마 녹음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뻔하디 뻔한 말을 했을 때 자책했던 일들도 여기 내 머릿속에, 가슴속에 살아 있었네.  이제 생각하니, 그 시절 모든 순간이 소확행의 연속이었다. 소확행으로는 부족한가? 그럼 대(大)확행이라고 해도 좋고. 

콜라의 '모기야' , 1996년  노래네요! 우와... 사진: 헤럴드POP

 추억은 이래서 좋다. 좋은 기억들만 남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지워지니까. 올 댓 뮤직을 했던 그 당시가 즐겁기만 했겠나? 힘들었던 일도 당연히 있었겠지. 그런 아픈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때만큼 강렬하게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새 점점 잊히고, 좋은 기억만 가슴에 남는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올 댓 뮤직의 옛날 팬과 13년 전의 추억을 주고받던 날이 있었다고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는 날이 오면,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장담하건대, 젊은 날의 행복한 순간으로 추억될 거다.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시간들이니까.  과거의 소확행을 추억하는 지금 이 순간도 소확행의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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