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Jun 29.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런투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질 거라고 예상했다. 축구 최강국인 독일을 이길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전의 경기에서 보여준 아쉬운 모습들과 그로 인해 이미 상당한 질타를 받은 대표팀이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여력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져도 큰 점수차로 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들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확신 같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후반에 경기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두 점을 연속으로 내며 독일을 무너뜨렸다. 내 눈으로 보고도 두 눈을 의심할 기적 같은 상황. 그날 밤, 마음속의 말과 밖으로 나오는 말이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했던 우리에게- 내가 그랬다. 마음속으로는 ‘이길 거야’라고 생각하고, 겉으로는 ‘설마 이기겠어?’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적도 함께 일어났다.  

손흥민 선수가 두번째 골을 막 넣고 환호하는 모습. 사진 :KBS중계 하이라이트 캡쳐

 사실 이런 일들은 축구 응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일 일어난다.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원하는 일이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속의 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면서 기대치를 낮춘다. ‘잘 될 거야’ 대신,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를, ‘자신 있어’ 대신, “과연 될까?”를 말한다. 이렇게 안전장치를 해두면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좌절감과 실망감이 덜 느껴질 수 있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는 고개를 숙인다. 어쩌면 우리는 습관처럼 잘 안 될 것 같다고, 이번 생은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도 가요제에서 이적과 유재석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그대 생각한 대로)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사진: 데일리안

 마음의 말과 실제 나오는 말의 싱크로율이 비교적 높은 나는 꽤 솔직하다는 평을 듣기는 한다. 칭찬이겠지...? 내 심정이나 생각은 잘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을 향해서 이야기할 때는 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남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한다든지,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든지, 이렇게 남을 좀 불편하게 만들 것 같은 이야기들은 엄청 빙빙 돌려 말한다. 나로서는 기분 덜 나쁘게 하려고 배려하는 건데, 5분이면 될 이야기를 30분은 넘게 하는 것 같다. 말이 길어지니까 내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사라진다. 변죽만 울리다 끝날 때도 많다.


 래퍼와 대화를 하던 중에 래퍼들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딱 필요한 말만 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랩 할 때만 그런 게 아니라 평소 대화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랩을 하지 않아도 말하는 스타일만 봐도 저 사람이 같은 업계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가늠이 간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쏟아내는 촌철살인의 랩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 가사를 쓰고 지우고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딱 할 말만 추려내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 대화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나름 말 좀 하는 직업을 가진 아나운서들은 상황을 길게 설명하거나 미사여구들을 사용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일까? 장황하게 말하는 데 더 능숙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줄여야 한다는데, 말을 길게 하는 능력만 강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줄일 수는 없고, 랩을 배워서 촌철살인의 기술이라도 습득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편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해낼 수 있는 마음가짐부터 먼저 길러야 되는 건가. 

'말하자면' 게스트로 출연해 준 래퍼 "파로". 감사해요! 사진: 한국일보

 반대로, 나의 마음을 쿡쿡 찔러대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어쩌면 나는 내 입장을 둘러댈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변명도 늘어놓고 있지 않을까? 남들이 내 이야기에 불편할까 봐, 마음 상할까 봐 조심하는 것을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상처받기에 그런 배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불편한 이야기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꼭 하고 넘어갈 이야기도 에두르지 않고 말하지 않았을까? 나의 생각과 감정이 내 말에, 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겠지. 공자는 나이 마흔이면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지... 핑계 같지만, 여기서 또 할 말은 있네. "공자님! 그 당시 마흔과 지금의 마흔은 다르지 않을까요?"


 며칠 전 방송에서 DJ.DOC 멤버들의 최근 모습을 보았다. 콘서트에서 오래된 팬들을 향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중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아요!”라는 말에 꽂힌다. “아니, 왜 저런 말을!” 했는데, 카메라가 객석의 팬들을 비추고 나니 마음이 짠해진다. 짠해지면 안 될 것 같은데 짠해진다. 관객들은 내 또래들이었다. ‘그렇구나.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을 수도 있구나...’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말에 내 마음이 요동쳤다. 역시 ‘불혹’의 마흔이란 존재하지 않는 건가. 

DJ.DOC의 신나는 무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사진 : 이데일리

 흔들리는 마흔에게도 믿을 구석은 있었다. 랩을 쓰는 래퍼가 가사를 쓰면서 할 말이 정리되듯,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된다. 부정적인 목소리보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말한 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법. 어쩌면 쓰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쓴다. 마음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상처받으면 받는 대로, 그런 살아있는 감정에 감사해야겠다.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니까. 그들의 노래, 런투유처럼 너에게든, 그 무엇에게든 달려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기뻐하리라. 바운스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