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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n 14.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누구에게나 속사정은 있다.

  얼마 전 만해도 새순이 돋았던 우리 집 나무들은 풍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를 지나가고 있달까. 혹시 죽었나 했던 포도나무 2호도 다행히 1호처럼 잎들이 올라오고 있고, 수국도 작년보다 더 키가 커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꽃도 피겠지. 얼마나 탐스러울까. 비가 많이 와도 씩씩한 로즈메리와는 달리, 너무 습해서 정신을 못 차리던 라벤더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블루베리도 아직 좀 기다려야 하지만 따먹을 생각에 신이 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포도, 수국, 블루베리,로즈메리

 아무 일 없이 잘 자라는 것 같은 나무들도 사실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다. 겨울에는 추위와, 여름에는 해충들의 공격으로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 하니까. 우리 집 아보카도 나무는 진딧물의 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고, 사과나무도 슬슬 진딧물이 생길 기미가 보이고 있다. 우리가 길가에서 흔히 보는 아름다운 장미들도 진딧물이 잘 생긴다. 장미의 가시도 그런 해충을 막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약을 치지 않으면 어느새 진딧물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집 장미도 그냥 방치했다가 꽃 한 번 피우고, 진딧물의 공습에 맥을 못 차리고 사라졌다.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은 나무들도 알고 보면 관리 좀 해달라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나무들이야 관리해줄 우리들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정작 우리들은 어떠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도움이 있긴 했다.  때론 그 손길을 거부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인이 된 지금은 내 인생 하나만 사는 건 데도, 나 하나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부모가 되면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자식 때문에 나를 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나도, 자식도, 모두가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에게는 나무 관리와는 다른, 특별한 관리가 더 필요하다. 바로 마음의 관리다. 마음 관리는 모든 관리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음 관리인데, 마음먹은 데로 마음 관리가 잘 되지 않는, 하드 코어의 관리 영역이랄까. 게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냉정하게 말하면, 마음 관리는 각자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부담스럽다.


 마음 관리가 어려운 것처럼 몸을 관리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몸짱이라고 sns에 자신의 몸매를 매일같이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몸매가 부럽다기보다는 그 몸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지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몸의 관리도 마음의 관리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몸을 만들겠다는 의지 자체가 마음이니까. 그 마음이 절실해야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결국 마음을 관리해서 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다행인 점은 몸 관리가 안된다고 해서 마음 관리가 꽝인가 하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초조해지는 몸짱보다는 음식 앞에서 행복해하는 우리가 마음이 느긋하고 편하지 않은가? 그렇게 보면 덜 예민한 우리가 마음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셈이다.

팔로우하고 있는 몸짱님.  정말 관리의 여왕인 것 같아요!

 이 마음 관리는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작동이 잘 되기도 하고,  잘 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마음 관리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한 번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쇼핑을 했다.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도대체 이건 왜 산 거지?" 집에 돌아오니 내가 산 물건이 너무 별로였다. 내 안목이 이 정도였나 싶어 짜증이 났다. 이런 거 사려고 낭비한 돈과 시간에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스트레스는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고, 그 결과 잘못된 선택으로 기분만 더 나빠졌다. 마음 관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돈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마음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니까.


 매우 느긋해 보이는 나는 어떤 일에는 굉장히 조바심을 내는 편이다. 조바심 낼 일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고, 유리멘탈인 나는 무너지고 만다. 요즘에야 얼굴 찌푸릴 일이 많지 않지만, 한창 회사에서 힘들었던 시절에는 표정 관리도 잘 안됐었다. 어느 날 후배가 회사를 떠나면서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에는 선배님이 엄청 밝은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이 보이던 미소마저 사라져 마음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는 후배도 자기 걱정으로 마음 쓸 틈이 없었을 텐데, 그런 그의 눈에도 내가 힘들어 보였다니... 남이 눈치챌 만큼 내 표정 관리, 아니 마음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유리멘탈의 대명사, 개복치. 스트레스가 심하데요. 사진: 시크뉴스

 마음 관리를 해보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을 쳐보았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책도, 마음 수련법을 제시해주는 책도 읽어보았다. "그래, 그렇지! 다들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하는구나..." 위안은 잠깐이다. 책에서 받은 위로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감정을 자극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었고, 스트레스들은 무서운 기세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현실에서 조금 떠나 있으면 나아질까 싶어 여행도 많이 다녔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 스트레스에서 순간적으로는 벗어날 수는 있지만, 돌아와서 1주일이면 '나 언제 여행 다녀왔니?' 가 된다는 사실을.


 이런 1주일짜리 약발도 스트레스가 견딜만한 수준일 때나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가 위협으로 느껴질 때는 여행도, 여행 그 이상의 것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익숙한 번호. 회사다! '그래, 나는 그냥 무시하고 잘 거야. 내일 센트럴 파크도 가고, 모마도 가고, 많이 걸어야 해. 지금 자야 다닐 수 있어.'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잠도 오지 않는다. 10분즘 지났을까? 정적 속에 울리는 ‘카톡’의 외침. 카톡을 확인하면, 왠지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결국 확인한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와 후배가 다른 부서로 발령 났다는 소식.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뉴욕에서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뉴욕은 이제 서울이 되고, 참담한 현실이 된다. 나의 여행, 아니, 나의 도망은 끝났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를 진짜 그만두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뉴욕의 센트럴파크. 마음은 지옥이었지.


 스트레스받을 회사도 다니지 않으니 마음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전과는 다른 종류지만, 여전히 마음 흔들릴 일도 생기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나니 말이다. 가끔은 회사를 괜히 그만두었나 후회하는 마음도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마음 관리는 평생 해야 할 숙제다. 이 숙제는 잘 풀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한 걸 보니, 이제는 마음 관리가 정말 잘 되고 있는 건가? 내 인생에 다양한 답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을 보니, 관리가 아주 엉망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답을 채우고 있는지 묻는다면,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읽거나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 '말하자면'을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마음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니까.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나는 마음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서인가. 환경이 달라져서인가. 나름 단련을 한 결과인가. 어찌 됐든, 오늘도 나는 마음을 관리한다. 관리라는 표현이 조금 딱딱하다면, 이렇게 바꿔도 좋겠다. 마음을 나의 손길로 어루만진다 정도로. 그리고 그 손길에 오늘도 따뜻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여름이니까, 시원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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