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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20.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불타오르네 (feat. BTS)

 그냥 덥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더위. 북반구가 다 뜨겁다고 하니,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로 가지 않는 한, 더위 피해 휴가 떠났다가 더위 먹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는 52도를 기록했고, 일본의 하네다 공항은 뜨거운 열기로 구멍이 생겼다. 이례적으로 덥고 건조한 북유럽에서는 곳곳에서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열돔현상 때문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티베트 고원이 예년보다 일찍 뜨겁게 달아올라 열풍을 몰고 왔고,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도 더해져 마치 가마솥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처럼 뜨겁다고 한다. 가장 더웠던 1994년의 여름이 자꾸 비교돼서 언급되는데, 그 당시 서울 기온이 최고 38.4도까지 올랐었다는 기사를 보니, 그때의 뜨거움이 확 밀려온다. 그래, 94년 여름 더웠지. 무척 더웠다.

열돔 현상은 지상 5~7㎞ 상공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반구 형태의 열막을 만들어 뜨거운 공기를 가둬놓은 상태를 말한다.미국 뿐 아니라 북반구가 다 불타오르고 있다.  사진 : CNN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은 여름 방학. 영어 회화를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다행히 같이 다닐 친구도 있어서 강남에 있는 영어 학원 가는 길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등록 당시 불타던 나의 학구열과는 달리, 강남역 출구로 나오면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친구와 나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다가 학원 대신 강남역 일대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땡땡이는 계속됐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더워서 의욕이 상실되었던 게 아닐까. 그래도 그때는 돌아다닐 의욕은 넘쳐서 길거리에서 받은 부채를 의지 삼아 다녔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자신 없다. 그때 그 시절처럼 며칠 전에도 강남역 근처를 걸어가는데, 예전의 발랄한 나는 온 데 간 데 없다. 에어컨 나오는 건물 쪽으로 바짝 붙어 소심하게 걸었으니까. 스무 살의 뜨거운 젊음이 폭염도 이겼던 시절은 갔다. 손풍기라도 들고 다니면 나을려나.


 94년의 더위는 그렇게 지나가고 2년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예상치 못한 더위를 만났다. 그 당시는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의 정보를 지금만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옛날’이어서 바르셀로나가 그렇게 더운지 잘 몰랐다. 8월 초, 한낮에 바르셀로나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긴, 생각보다 한적한 곳이네. 사람 구경하기 힘든 거리를 느긋하게 걸었다.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공휴일인가? 그러나 곧 깨달았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바닥이 너무 뜨겁다. 내 신발 밑창을 뚫고 바닥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앗 뜨거워!!! 그러고 보니 머리도 따갑다. 모자라도 써야 될 것 같아! 그래서 사람들이 없었나. 너무 뜨거워서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지. 개미도 더워서 쉬고 싶은 이 더위에 누가 길거리에 나서겠는가. 게다가 잠시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을 한낮이니 사람들이 더없지. 국가 경제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지금은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더위가 극심해지면 시에스타가 다시 필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로 피신해서 돌아온 나는 더위가 식기를 기다렸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 거리로 나갔다. 그곳에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바르셀로나의 밤은 다시 뜨거워졌다.  

20년뒤 , 2월에 찾은 바르셀로나,  춥지 않아 다니기 좋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아직도 공사중이겠지. 

 열대야로 잠들기 괴로운 밤, 숨쉬기가 답답해질 때 호흡하는 법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뉴스를 보면서 진짜 많이 덥긴 덥구나 싶다. 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지면서 하루의 피로감도 점점 더 커진다. 잠도 안 오는데, 공포영화를 보면 오싹해져서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긴장하고 봐서 그런지 더 덥던데... 꿈에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 잠은 더 안 오던데...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그때도 몹시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촌들과 함께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를 봤다. 뭐 볼 때는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사촌동생이 영화를 보고 겁을 먹었길래,  "뭐가 무서워! 자꾸 무서워하면 꿈에 나온다!" 이러면서 호기롭게 잠들었으니까. 그러나 프레디는 그 사촌 동생이 아니라 내 꿈에 나왔다. 영화 제목대로 제대로 악몽이었다. 심지어 나를 쫓아오는 프레디에게 내가 숨은 곳을 알려 준 사람은 내 친동생-사촌동생을 차마 그 꿈에 출연시킬 수는 없었나 보다-이었다. 아... 꿈에서 도망 다니느라 너무 힘들었다. 얼마나 꿈에서 뛰어다녔던지 자고 일어나니 땀이 한가득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을 보니 괜히 열 받아서 더 더워지기만 했다. 

이게 또 리메이크 됐었네... 무섭게시리. 사진:이데일리

 더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가만히 있어 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덥다. 에어컨을 켜본다. 에어컨을 오래 틀고 있으면 목이 좀 아픈 것 같고, 끄면 또 금방 더워진다.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데 에어컨은 낭비인 것 같아. 나라도 전기를 아껴야지 싶어, 어차피 에어컨을 계속 돌릴 수밖에 없는 카페로 향한다.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나니 여기가 천국이다. 전기료 대신 커피값이 들긴 했지만, 집에서 내가 내려 먹는 커피보다 더 맛있으니 괜찮다.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새로운 더위 피신처로 향한다. 피아노 연습실이다. 집에 피아노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고, 소음 문제도 있고 해서 연습할 다른 공간을 찾다가 이제야 발견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미솔도솔미도. 음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손목과 손가락을 풀어본다. 어색한 손놀림. 오랜만에 건반을 눌러서 그런가? 하긴 3년 만이다. 예전에 줄리어드에서 연주했던 곡들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에 열이 확 올라온다. 한 시간의 사투 끝에 드뷔시의 아라베스크가 손에 좀 붙는다. 내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들을 만하다고 관대하게 생각해야지 별 수 있나. "훗! 그나저나 더위도 잊은 한 시간이었어." 뭔가에 열중한다는 건 그런 것인가? 더위도 잊을 수 있는 것. 물론 피아노 연습실이 시원한 게 한몫했겠지만. 

아이스 라테와 피아노 연습, 더위를 잠시 잊게 해줘 고맙다.

 오늘도 아침부터 푹푹 찐다. 야외 테라스에 있는 나무들이 바짝 말라 보인다. 얼마나 뜨거울까. 그늘도 없이 그대로 햇볕에 노출된 아이들. 이런 폭염이 계속되면 잎들도 탈 것이다. 내 마음도 애가 탄다. 극심한 더위와 추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연이란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번 맹추위에 살아남은 포도나무와 블루베리도 예년만큼 수확이 좋지 않다. 살아남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들의 내상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너무 추워서 열매를 잘 맺지 못하게 된 것처럼 이 더위에는 또 어떤 상처를 얻게 될지 걱정이다. 고통을 직접적으로 받는 건 자연이기 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사실 포도랑 블루베리를 덜 먹게 된 정도라면 괜찮다. 이름만 들어도 답답한 '열돔현상'으로 지구가 심하게 뜨거워지니 정신이 바짝 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의견들이 많다. 지구 온난화는 온실 가스 배출을 많이 한  탓이니,  그 모든 재앙이 다 우리 인간 손에서 시작됐다고 봐야겠지. 예전에는 이 정도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재앙이 곧 오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지만, 너무 더우니까 걱정도 많아진다. 불타오르는 이 지구에서 모두 무사하기를 빌어본다. 

BTS가 전 세계인의 마음에  불을 지른 탓은 아니겠지...^^사진: 시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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