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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l 27.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더위가 왜 그럴까.

 내 평생 태풍을 기다려 보기는 처음이다. 12호 태풍 '종다리'는 어떤 경로로 오고 있는지, 날씨 예보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기상 캐스터들은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투로, 당분간은 죽 더울 것이라는 안타까운 이야기만 전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시원하게 비가 좀 내릴지도 모르겠다고 누가 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하긴 너무 기대했다가 비가 안 오면 열 받아 더 더워질라나.

태풍 종다리말고 진짜 종다리 . 국내  비행기 충돌 조류 1위라고 한다. 사진 : 경향신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척 더운 날, 지하 주차장은 들어오는 차량과 나가는 차량에서 뿜는 열기로 바깥보다 더 후끈했다. 마땅히 있을 곳이 없어서 한 10분, 차 안에서 책이나 읽으며 기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차문을 열고 앉는 순간,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감지했다. 일단 에어컨을 틀자. 다행히도 차 안이 식어간다. 얼마 전 주차장에서 오랜 시간 공회전하던 차에서 내뿜던 매캐한 공기가 떠올랐다. 저러지 말아야지 하던 생각도 함께. 그래, 잠시 끄자.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에어컨을 끄자마자, 이건 정말 어떤 과장도 일절 없이, 끄자마자 거의 동시에 강렬한 더위가 느껴진다. 이 녀석! 차 어디 한 구석에 숨어 있었던 건가. 사라진 줄 알았던 열기가 짠하고 바로 나타난다. 5분 정도 지났다. 아니, 참았다. 엄청난 더위가 나의 목을 조른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은데, 그전에 나부터 챙겨야 할 것 같아 다시 에어컨을 켠다. 열기라는 점령군이 물러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사이 문자가 온다. 조금 늦는다는 내용. 아...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온다. 다행인 건 무자비한 점령군 대신 냉기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다시 기운이 난다. 그래, 이 정도 냉기면 다시 에어컨을 꺼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다시 껐다. 나름 쾌적한 상태로 책을 읽는다. 5분이 지났을까. 다시 답답하다. 답답하다고 생각하니까 숨을 더 못 쉬겠다. 여기서 탈출해야 할 것 같아...   

 

더위에 도전하는 게 아닙니다. 사진:국민일보

 왜 그랬을까. 그러고도 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5분을 더 버텼다. 정말 무모하게도! 나는 그 더위에, 열기로 가득 찬 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차 내부 온도는 10분 만에 20도 가까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내 차 안의 온도가 몇 도였는지 재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찜질방 뺨치는 정도였다. 밀폐된 차량 안에서 질식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여름철에 종종 일어나는 걸 보고도 그러다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버티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 그대로 더위를 먹었다. 그냥 더운 거랑 더위 먹은 거는 많이 달랐다. 내가 경험한 증상은 이랬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려 잠에서 깼는데, 그러고 나서는 불편해서 잠이 바로 오지 않았다. 두통과 함께 약간의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겼는지 몸이 좀 붓고, 얼굴도 창백했다. 결국 온몸에 기력이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 쉬고 나서야 점차 기운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후배들을 만났다. 마침 유튜브 방송을 앞두고 있는 후배도 있어 팟캐스트 초창기 시절-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만 열면 잘 될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은 온몸의 기능을 두루 써야 하는 일이었다. 머리도 쓰고, 눈도 쓰고, 귀도 쓰고, 손도 쓰고, 발도 쓰고, 결정적으로 마음도 쓰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들의 연속. 몸의 모든 기관들의 협업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뉴스 하는 게 제일 쉬웠어요’라는 자기 고백이 절로 나오던 그때 - 물론 뉴스도 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 팟캐스트 초창기의 험난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나름 무모하다면 무모하던 그때, 나는 개인 방송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의욕만 넘쳐 덤볐다. 물론 그 의욕 덕분에 용감하게 시작은 할 수 있었지만, 실수도 많았고 많이 서툴렀다. 완벽히 준비해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일. 이번의 교훈을 제대로 살려 다음 도전에는 좀 더 우아하게 안착하길 바라보는 수밖에. 뭘 또 하려고? 몇 개월 전의 나처럼 ‘큰일’을 앞두고 있는 후배는 부디 나처럼 고생 많이 하지 말고, 수월하게 잘 해내길 응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전하길 잘했다고 후배도 곧 느끼겠지.

요즘 대세는 크리에이터.   사진: 스포츠Q

 무모함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도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보니, 무모함과 도전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최근에 접한 부러운 도전은 쇼팽의 발라드 1번에 덤빈 50대 후반의 신문사 편집장의 이야기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들도 연주하기 꺼려하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곡이다. 처음에 그가 이 곡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정말 대단한 곡인데, 왜 하필 그 곡이냐였다. 그 자신조차도 험한 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마터호른을 정복하겠다는 격이라고 비유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연습하는 동안 그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다. 게다가 연습에만 열중할 수 없는 바쁜 편집장 생활로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큰 문제였다. 연습을 해도 하루에 고작 20분 정도 채우기에 급급했는데, 그나마도 일 때문에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가 1년 넘는 기간 동안 이 곡 하나에 매달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혹시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보기 좋게 해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독일군 장교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치는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 사진 : 스포츠서울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 이걸 시작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생각하는 일이 나이 들수록 더 많아짐을 고백한다. 그동안 크고 작은 도전에서 이미 실패를 거듭 맛봤기 때문에 자신이 점점 없어져서겠지. 하지만 이런 도전들을 통해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니까 쉽게 멈출 수도 없다. 그럼 이번에는 손가락도 근질근질한데, 나도 쇼팽 발라드 1번에 도전해볼까? 마터호른에 오를 수는 없으니. 시간이 없다는 것도, 나이가 많아서라는 것도 앞에 편집장님을 생각하면 진짜 핑계일 뿐.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해낸 것처럼 발라드 1번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가끔은 내가 가진 능력치보다 훨씬 더 높은 꿈을 갖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도전의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지난 경험들을 통해 알고 있으니. 결과가 뭐가 됐든.

마터호른,  폭염에 보니까 시원해 보이고 좋네~  등반은 영 다른 이야기겠지만^^ 사진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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