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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Aug 03.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전지적"주인공"시점

 111년 만의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 치운 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러 갔다. 뉴욕에 살 때, 브로드웨이 42번가와 무척 가까운 50번가에 살았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컬들이 매일 무대에 올려졌었는데, 거기 살 때는 생각보다 많은 뮤지컬을 보지 못했다. 원래 가까이 살면 언제든 가겠지 싶어 계속 미루다, 결국은  못 가게 되는 법. 지금도 산 옆에 살고 있지만, 산에 오른 건 손으로 꼽아보고 있다. 서울에 살 때, 지하철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꾸역꾸역 북한산을 올랐던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오히려 품을 들여야 하는 일에 더 열심히인 건가. 여하튼 브로드웨이는 북한산보다도 훨씬 더 먼 뉴욕까지 몇 시간 씩, 아니 그 이상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뮤지컬 러버들에게는 마음껏 뮤지컬을 볼 수 있는 무대다. 실제로 뮤지컬 배우들에게는 꿈의 무대이기도 하고.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내용 그대로 말이다.

뮤지컬 극장들이 모여있는 브로드웨이 씨어터 디스트릭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지금은 공연중은 아니지만, 최고로 오랜 시간을 공연한 뮤지컬 중 하나다.

  페기 소여는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 출신의, 배경인 뉴욕과 비교하자면, 시골 아가씨다.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왔다가 지각하는 바람에 정식 오디션은 못 보지만,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관계자들에 의해 우여곡절 끝에 작품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주연 배우인 도로시가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 서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뮤지컬 첫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는 해피 엔드로 뮤지컬은 막이 내린다. 그렇다. 줄거리는 이렇게 간단하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라는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뮤지컬은 처음이라서 그렇게 해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주인공 페기 소여와 코러스들의 화려한 군무장면     사진: OSEN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여서 오히려 매력적이랄까. 게다가 꿈이 실종되어 가는 세상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니... 신선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뮤지컬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가 배경인데, 그 암흑기에도 꿈과 희망은 살아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것조차도 새롭다. 대공황 따위는 잊은 해맑은 페기 소여의 현란한 탭댄스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끔은 코러스 역으로 나오는 배우들에게 멈칫하며 시선이 머문다. 극 중에서 그들은, 페기보다 훨씬 더 먼저, 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고,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경험도 없는 페기의 급부상에 그들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지 “제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는 게 자연스러울 상황에서 페기 소여를 추천한다. 만찢남만큼이나 현실감 떨어지는 캐릭터들이라니.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가 아니라 "너야 너!"라는 주문이라도 외운 것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충실할 뿐이다. 질투라는 말이 끼어들 틈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무대만큼이나 반짝이는 무대가 있다. 이 무대는 뮤지컬 배우들만 서는 곳이 아니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름 안에 이미 반짝임이 들어있었군. 2017년 9월 기준으로 8억 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을 감안하면, 8억 명 이상이 활동하는 무대다. 이 무대에서는 누구나 빛이 난다.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설명과 함께, 해시태그를 설정한다. 나의 인친이 하트를 보내면, 나도 하트로 응답한다. 가는 댓글이 고와야 오는 댓글이 곱다. 하트는 쌓이고, 팔로워도 늘어가고.  나는 주인공 같아. 그것도 무척 사랑받는.

인스타그램의  진짜 뜻 !스타가 빛나는 그 스타는 아니지만요~ 내용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인스타그램이라는 무대에서는 즐거운 일은 더 신나 보이고, 힘든 고민도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이 발휘된다. 올려지는 사진들 속의 일상은 한 점의 구름 없이 빛난다. 매일매일 그랬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을 담아 제일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한 장 고른다. 그러나 현실은 인스타그램 관리가 잘 안 되는 1인이다. 사진은 엉망이고, 밑에 쓰는 글도 갈 곳을 잃었다. 해시태그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나를 빛나게 만들어 자랑할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별로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관심이 없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그게 문제다. 내 일을, 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된다는 건 알겠고, 그러니까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지... 펼쳐진 무대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내게 도움을 주는 후배들이 있어 다행이다. SNS 관련해서는 확실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 게 좋다. 예전에 부모님께 카톡을 깔아드리고, 사용법을 설명할 때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겠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나의  첫 인스타그램 사진.  나의 사랑, 뉴욕 하이라인 사진이네! 역시. 인스타 왕초보시절.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인스타그램, 이 두 무대는 해피 엔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물론 그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뮤지컬 속 배우들과 일상 속 우리의 애환이 숨겨져 있다는 면에서도 한 번 더 통한다. 그보다 더한 공통점도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 소여처럼, 같은 무대 속 더 빛나는 존재가 나를 밀어낸다. 친구와 비교해서 초라한 나의 팔로워 수를 볼 때, 댓글이 별로 달리지 않을 때, 보낸 하트만큼 하트가 돌아오지 않을 때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을 들여다볼 때는 더 그렇다. 모두가 행복한 뮤지컬과는 달리 여기서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


 이런 감정이 들면, 무대에 선 우리는 자괴감이 든다. 이러려고 팔로우를 했나. SNS 무대에서 확 잠수 타 버릴까 싶지만, 이 또한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 없인 비교도 안되고, 나 없인 부러움도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의 속내도 같다는 건 자꾸 잊어버리는 사실. 다들 비교도 하고 부러워도 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팔로우하듯 그런 감정도 같이 팔로우하는 것이다. 빛나는 순간과 방식이 다 다를 뿐인데, 그런 생각은 묘하게 비켜간다. 심지어 허상에 속는 일도 생기고, 허상인지 알면서도 속는다. 여긴 또 다른 무대라는 사실도 함께 놓치면서 말이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되야만 해~" 뮤지컬을 부른 임상아. 사진:SBS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들 굳이 어렵고 힘든 순간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까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겠는가. 소소한 즐거움도 큰 행복으로 추억하고 싶은 바람으로, 그렇게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충분히 빛나는 무대다. 뭐가 됐든, 지나고 보면 지금보다는 젊은 날들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즐겁게 일하는 나의 일상을 올려본다. 그 결과물이 올라오기까지 숱한 고뇌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 숨겨두고, 아니, 그것은 잠시 잊고 말이다.

#말하자면 #토크의달인 #김제동 #더위먹고멍했지만 #2시간가장 최근의 인스타그램. 기록의 무대로 널 생각하겠어!

서른 번째 글입니다. 그동안 구독해 주시고, 읽어 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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