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Nov 23.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뉴욕 소네트 3

 걷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뉴욕에 왔다면 피할 수 없는 곳, 센트럴 파크로 가보자. 그러고 보니 뉴욕에 있을 때, 센트럴 박이라는 이름으로 아나운서 홈페이지에 소식을 전하기도 했었다. 그게 벌써 8년 가까이 돼가네... 8년 전 나는, 여기 센트럴 파크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걷고 있었을까.

                                                                                                                                                                                                                                                                                                                                                                                          

                                       

센트럴 박의 뉴욕 데스크 시절에 올렸던 글... 검색해보니 아직도 있긴 하네.

 그 당시 나는 센트럴 파크와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그렇다고 와~ 할 만큼 대단할 일은 아니다. 뉴욕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가로로는 피프스 애비뉴와 센트럴 파크 웨스트 사이, 세로로는 59가부터 110가에 이르는, 맨해튼 크기로만 따지면, 맨해튼 면적의 20분의 1에 달하는 엄청 넓은 공원이기 때문에 미드타운 위쪽으로만 살면 센트럴 파크와 가까운 데 사는 셈이다. 어쨌거나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몇 번씩은 센트럴 파크를 걷거나 지나가기라도 했었다.  날이 좋은 주말 아침에는 공원 안을 달리기도 하고, 달리다 지치면 잔디에 앉아 책도 읽으며 여유를 즐겼다. 소풍 나온 아이들, 반려견들을 산책시키는 도그 워커들, 보트를 타며 데이트하는 연인들, 햇살 좋은 여름날이면 태닝 하는 젊은이들, 마차 타는 관광객들... 그렇게 센트럴 파크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중간 위쪽으로 직사각형 녹색 부분 보이죠?  여의도 전체 면적인 89만평보다도 넓은 102만평을 차지합니다. 사진: 구글


 어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것도 뉴욕에서, 센트럴 파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경험해 본 나는 정말 행운아다. 연애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사랑도 깊어진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정말 사실이겠지 싶게, 센트럴 파크에 대한 나의 감정은 뜨거워졌다. 날이 추워도, 반대로 날이 더워도 나는 센트럴 파크를 걸었다. 때론 쉼 없이 걷기만 하고, 어쩔 때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내 평생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이 이곳일지도 모를 정도로.

공원 안에서 보이는 건물들. 센트럴 파크의 매력 중의 하나. 사진: 2015년 여름.

 센트럴 파크의 많은 다리 중 가장 좋아하는 오크 브릿지는 수없이 건넜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멋지냐면 나처럼 사진 잘 못 찍는 사람도 여기서 찍으면 예술로 나온다. 다리 앞으로는 호수가 펼쳐져 있고, 그 호수를 미드타운의 멋진 빌딩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다리의 포인트는 뒤쪽인 뱅크 록 만이라고 생각한다. 전설처럼 자란 나무들과 그 모습을 비추는 호수, 그 늘어진 나무들에서 떨어진 잎들이 다시 호수를 채우고, 그 그림자들이 떠오른다. 봄에는 벚꽃 내음 가득한 분홍빛으로, 여름에는 싱그러운 푸른빛으로, 가을에는 진한 단풍색으로,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의 회색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백설공주의 왕비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하고 물으면 호수에 비치는, 내 눈에 비치는 이곳의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달까.  

오크 브릿지 위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 2018년 가을
그림이 따로 없네. 오크 브릿지 뒷쪽인 뱅크 록 만의 모습. 모든 걸 다 비추네요...사진:2018년 여름


 센트럴 파크는 영화도 있듯이, Autumn in Newyork, 가을이 제일 아름답다. '모든 계절이 다 아름답다'는 단서를 붙이지만, 그래도 역시 가을이 제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계절에 왔다고 실망하지는 마라. 계절마다 주는 느낌이 다 다르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지에 따라 다가오는 풍경의 맛도 바뀌니까. 무엇보다도 센트럴 파크는 한 번을 찾아와도 특별한 곳이니, 그 한 번이 언제이든 그때가 제일 좋은 때인 거다. 무더운 여름날 센트럴 파크를 찾았던 아빠와 동생도 뉴욕 여행 중 제일 좋았던 곳은 센트럴 파크라고 두고두고 이야기해서 뉴욕에 가보지 못한 엄마를 질투 나게 만든다. 또 누군가는 겨울 왕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추웠지만, 그날의 그곳을 가슴 시리게 기억한다며, 어느 눈 내리는 날 센트럴 파크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겨울의 끝자락에 센트럴 파크. 보이는 다리는 오크 브릿지 다음으로 좋아하는 보우 브릿지. 사진 :2018년 겨울

 

여름에 찍은 보우 브릿지, 느낌이 또 다르죠? 사진 : 2015년 여름

  다녀온 지 사실 얼마 안 됐는데,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다 보니, 다시 가고 싶네. 아직 센트럴 파크 이야기를 시작도 못한 거 같은데, 다음 이야기에서 우리 진짜 센트럴 파크를 함께 걸어 봅시다. 더 추워지기 전에.

작가의 이전글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