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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Nov 29.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뉴욕 소네트 4

 요즘 기분이 왜 이렇게 우울한가 했더니 날씨 때문이었다. 겨울이 오면 원래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이번 겨울은 특히, 미세먼지와 함께 답답하게 보낼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글이나 열심히 쓰면서 이 겨울을 보내야 하나. 주차 안내한다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하루 종일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떠올리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미안하다.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 먼지 투성이 세상에서 모두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 먼지를 막는 것보다 미세 먼지가 몸속에 들어갔을 때 몸에서 배출해내는 약을 개발하는 게 빠르려나.

비행기에서 바라본 인천의 미세먼지 뿌옇죠...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디든 걸을 수 있으니 상쾌한 호흡으로 센트럴 파크를 걷는 상상을 해본다. 한때는 센트럴 박이었던 나와 함께라면 지도도 필요 없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걷는 거다...라고 해놓고서는 같은 경로를 돌고 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면 매번 새로운 길을 시도했을 것 같은데, 모험 정신이 부족한 나는 갔던 길, 익숙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보니 드는 생각. 나만의 센트럴 파크 걷기 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

타임 워너 센터에서 바라본 콜롬버스 서클. 가만 보니, 콜롬버스는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네.

 59가에 있는 남서쪽 입구, 그러니까 콜럼버스 서클 쪽으로 자주 드나들었으니까 일단 이곳을 시작점으로 하자. 여기는 자전거를 빌리라는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걸어야 하니까 그냥 무시하고 일단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한 오분 이상, 천천히 걸으면 십분 가까이 걸리려나, 쭉 걸어 올라가면 무척 넓은 잔디밭이 등장한다. Sheep Meadow, 예전에는 양을 풀어 기르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양 떼 대신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여유를 부리는 곳이다. 볕이 좋은 주말, 특히 토요일이면 뉴욕 타임스와 함께 가벼운 야외용 의자를 등에 짊어지고 이곳으로 갔었지. 뉴욕 타임스 주말판은 잡지책 한 권 마냥 묵직하니 볼거리가 많아서 주말판은 꼭 구입했다. 센트럴 파크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으니 뉴요커가 따로 없구나. 모르는 단어는 뜻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20대처럼 자연스럽게 태닝을 즐기는 허세도 부려본다. 피부 노화가 걱정스러워 선크림을 많이 바르고 나오긴 했지만.  뛰어노는 아이들, 소풍 나온 친구들, 가만히 드러누워있는 사람들... 그렇게 나의, 그들의 토요일은 평화롭게 지나간다.

 

주말의 Sheep Meadow... 양떼만큼 사람이 많네. 사진: smithsonian magazine

 이 푸른 잔디를 조금 지나 왼편, Strawberry Fields에서는 Imagine이 들려온다.  존 레논이 살았고, 총에 맞아 죽은 비극도 일어났던 다코타 아파트와 가까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존 레논이 사망한 12월 8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팬들이 모여들겠지. 아티스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음악과 그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것일지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존 레논의 이웃에 살던 아티스트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스튜디오가 다코타 아파트와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기에 어쩌면 한번쯤은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던 존 레논이 김환기 화백을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을까. 김환기 화백의 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추운 겨울에도 센트럴 파크에 가서 설경을 보고 종일 멍해 있었다 하니, 가능한 일이기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든 김 화백도 여기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기에 그를 향한 추모의 마음도 스트로베리 필즈에 함께 담아본다.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존 레논 추모 공간, 스트로베리 필즈.
왼쪽 사진은 김환기 화백 스튜디오가 있던 건물, 오른쪽 사진은 다코타 아파트와 엄청 가깝다는 표시.

 마음을 추슬러 다시 오른편으로 발길을 돌리면 the lake다. 영화 "세렌디피티"에도 나오는 울먼 링크가 생기기 전에는 여기서 스케이트를 탔다고 한다. 사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스케이트를 탔다는 전설적인 기록도 남아있는데, 그만큼 호수가 넓다는 이야기다. 호수 바로 옆 오솔길로 접어들어 이름도 여성스러운 정자, Ladies Pavilion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한껏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본다. "어머! 여기선 사진 꼭 찍어야 될 것 같아!"하는  몇몇 포토 존을 지나면 나의 사랑, Oak Bridge 다. 지난 이야기에서 오크 브릿지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했으니 패스. 나만 더 독점하고 싶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면 Ramble이라는 표지판이 등장한다. 야생의 분위기가 가득한 이 곳은 센트럴 파크 내 자연 보호 구역으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는 숲이다. 여기서 230종의 새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새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미안하다, 못 알아봤다. 여기는 센트럴 파크 안에서는 가장 호젓한 느낌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갈래길이 많아서 약간 헤맬 수도 있다. 당황하지 말고 돌다 보면 Bow Bridge로 가는 길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될지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레이디스 파빌리온 근처에서 바라본 Bow bridge까지 담은 호수 풍경


아래, 위로 다 길이 있는 Ramble. 저 입구로 들어가면 또 다른 숲의 세계.

 아름다운 다리, 보우 브릿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다리 위에서 혹은 다리를 배경으로 각자의 인생 샷을 담는다. 다리 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트 하우스가 보이고, 여름이면 보트 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꽤 재밌다. 여기 살았으면서도 한 번을 못 타본 사실을 올 때마다 깨달으면서. 여의도 살면서 한강 유람선 안 타본 거랑 비슷한 경우인 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수 옆길을 따라 걷다 보면 Bethesda Fountain이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며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옛날 '해리와 샐리를 만났을 때'부터 최근에는 '존 윅, 리로드'까지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유명세로 따지면 센트럴 파크의 아이돌급이다.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그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성경 구절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곳이니, 실제로도 영화 같은 공간임에 틀림없다.

11월에도 많이 타네. 언젠가는 타 보려나... 
2년전 여름에 찍은 베데스다 테라스와 분수.  사진 실력이 부족해서 아름다움을 다 못 담네...
그래서 준비한 베데스다 테라스 2층에서 바라본 풍경

 호수를 뒤로 하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베데스다 테라스를 통과해서 위로 올라가면, 센트럴 파크 걷기는 The Mall에서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더 이상 이렇게 화려하게 끝내기는 힘들게. The Mall은 아메리칸 엘름 트리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어 나무 터널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 길은 혼자 걷기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걷고픈 길이다.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오해가 있다면 오해마저도 아름답게 풀릴 것 같아서 꼭 둘이 걷고 싶다. 함께 걸어가는 타인의 뒷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이 길을 오늘도 누군가는,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겠지. 다음번에는 나도 꼭 사랑하는 사람과 걸어야겠다. 내 뒷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라면서.


The Mall을 걷는 사람들... 가을 느낌 제대로다.

  이렇게 오늘도 마음으로 충분히 걸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자면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하는 사람으로 다시 만나지요. 뉴욕 덕후는 다시 뉴욕이 진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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