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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Dec 13.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Imagine Bohemian Rhapsody.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퀸의 노래를 듣는다. 하늘에서 자유롭게 흩날리는 눈이 프레디 머큐리가 무대에서 붕붕 날아다니던 모습 같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눈과 퀸의 음악이 꽤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그래, 쏟아지는 눈처럼 요즘 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존 레논 전시에 다녀왔다. 사실 존 레논에 대한 팬심보다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를 움직였다. 물론 존 레논은 비틀즈의 리더로서, 심지어 비틀즈라는 수식어가 빠진다 해도, 존 레논은 존 레논이고 그 이름만으로도 갈 이유가 충분하게 넘친다. 그러나 요즘 어딜 가나 들려오는 퀸의 노래가 열풍인 상황에서는 프레디 머큐리로부터 시작된, 우리 곁을 떠나버린 위대한 뮤지션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달까. 거기다가 하나 덧붙이면 존 레논과 나 사이에는 뉴욕이라는 연결 고리도 한 몫하고.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존레논 전시회. 팬이라면 당연히, 팬이 아니라도 가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도슨트 투어 강추!

 전시회에는 존 레논이 교류했던 아티스트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사진들이 있었다. 사이가 나빴다고 언론에서 가십으로 몰고 갔던, 그러나 실제로는 절친이었던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부터, 존 레논이 힘든 시절에 찾았던 엘튼 존, 그리고 몇 년 전 생을 마감한 데이비드 보위까지, 우정이 가득 담긴 사진들을 보니 존 레논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또 어떤 그림이 탄생됐을까 싶다. 그렇다면 프레디와 존의 조합은 어떨까. 프레디 머큐리는 존 레논의 노래를 평소에 즐겨 부르고, 그를 가장 위대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할 만큼  존경했다.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life is real” 이란 노래도 만들어 헌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with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앤디 워홀... 엘튼 존과의 사진을 내가 안 찍었네.

 1980년 12월 8일. 프레디 머큐리도, 전 세계의 다른 사람들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날이 었겠지. 존 레논이 맨해튼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한 날이었으니까.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추모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다코타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센트럴 파크의 스트로베리 필즈로 모여든다. 아마 이 전시도 그의 기일에 맞춰 시기를 조정해서 기획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전시도 스트로베리 필즈를 본떠 만든 추모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죽음은 극적인 그의 인생의 드라마에 정점을 찍을 만큼 놀라운 사건이었다. 오노 요코를 나체로 끌어안은 다소 충격적인 사진을 찍은 뒤 불과 몇 시간 뒤 집을 나서던 존은 죽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소문만 무성했던 에이즈 감염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로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존 레논은 마흔의 나이로, 프레디 머큐리는 마흔 다섯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천재들은 요절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공통적인 의문과 함께, 팬으로서 아쉬움이 더욱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너무 닮았다.

이날 찍은 사진은 결국 그가 죽은 뒤 롤링 스톤 매거진 표지에 실렸다.
프레디의 죽음을 전면에 알린 그당시 영국의 'The Sun' 지. 사진 : 매일경제

 연애사를 봐도 두 사람 모두 순탄하지 않았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의 사랑 때문에 많은 팬들에게 외면당하고 욕을 먹었다. 비틀즈의 팬들은 비틀즈를 해체시킨 주범이 오노 요코라며 그녀를  동양에서 온 마녀라고 비난했다. “이 결혼 반댈세”라고 외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존 레논은 오노 요코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지켜내는데, 그에게 그녀는 뮤즈이자, 어린 시절 떠난 어머니를 대체할 대상이었다. 프레디 머큐리도 아픔이 많았다. 양성애자인 그는 그 당시 언론으로부터 집요하게 공격당했고, 그 가운데서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사랑은 메리 오스틴이라는 여인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메리와 함께하는 장면은 외로움과 따뜻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존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헛헛함이, 프레디는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그들의 삶과 음악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회 운동도 함께 했던 두사람. 사진은 BED-IN Peace 퍼포먼스 현장 사진
전 재산의 반을 그녀에게 남겼을 만큼 끝까지 프레디가 의지하고 믿었던 메리 오스틴. 사진 : 매일 경제

 그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수록 위대한 아티스트는 투쟁으로 이루어짐을 깨닫는다. 그 투쟁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적 가치관과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존 레논도, 프레디 머큐리도 누구를 위해가 아닌, 나를 위한,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을, 그리고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그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그 치열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지만 그러지 못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더 열광하게 아닐까. 그들이 힘들 때마다 그들을 위로했던 음악으로부터 우리도 함께 위로 받으면서.

영화 속 LIVE AID 의 퀸의 무대, 엄청난 팬들의 함성에 프레디도 큰 위로를 얻었겠지.  사진 : SBS

 보헤미안 랩소디를 몇 번씩 보고, 싱어롱 상영관에서 떼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인가에 빠진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현실이 너무 힘들 때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탈출구일 수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나 아직은 괜찮아.'라고 잠시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일 수도 있다. 그의 정신은 아주 강해서 죽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하는 영국 맨체스터의 사생팬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이렇게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진짜 인생의 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MBC에서 방영한 '내 심장을 할 퀸"에서 요즘 일어나는 퀸 열풍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민중의 소리

 눈이 그쳤다. 거짓말처럼. 존 레논과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는 잠깐 내린 눈과 달리 그치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 않은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럴 자리에 퀸의 노래가 무한 반복될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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