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면 들린다.
여전히 난 모차르트 소나타 11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11번은 나를 놓아주고 싶지만 내가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연습해야 곡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달, 두 달, 아니 그 이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완성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고려해야 할 조건들도 다르니까. 누군가에게는 자다 일어나서도 흔들림 없이 칠 수 있는 연주가 완성일 수도 있고, 내 감정을 아낌없이 마음껏 표현하는 연주에 만족한다면 그게 완성일 수도 있겠다. 혹은 연습시간을 기준으로 매일 두 시간씩 두 달을 채웠으니 이제 더 이상의 발전도, 미련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참고로, 나는 11번을 만난 지 이제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모차르트 소나타 11번 1악장의 블랙홀은 여섯 번째 변주 부분이다. 1악장은 크게 어렵지 않은 주제부가 제시되고 여섯 번의 변주가 이루어지는데, 마지막 변주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곡이 아니라 내 연주가 문제라는 뜻이다. 발랄하게 시작되는 도입 부분을 지나면 수많은 16분음표들이 등장한다. 위로 아래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데, 순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약간 오락가락하면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샵#이 세 개인 A장조지만 마치 C장조인 것처럼, 멜로디를 한 마디씩 끊어서 읽어주면 도#라미라도#라레시미도#미도#파#미레도# 시솔#미솔#시솔#도#라레시레시미레도#시 라도#시라시레도#시도#미라미파#라시레 도#미라도#시레솔#시라미도#미라... 가 끝은 아니고 그 뒤에도 이런 16분음표들의 단체모임이 계속된다. 보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 부분이 지저분하게 들린다. 모두 16분음표이니 같은 박자로, 같은 크기로 쳐야 되는데, 중간중간 어디론가 숨은 것처럼 들리지 않는 음도 생기고 박자도 꼬인다. 게다가 여섯 번째 변주는 알레그로(빠르고 경쾌하게)라 여기에 속도까지 내기 시작하면 더 엉망이 된다. 모차르트의 곡은 예전에 영* 피아노 광고처럼,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 피아노, 영*! 을 구현해야 되는데, 맑고 고운 소리는 온 데 간데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느린 속도로,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따로, 나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솔직히 지난주는 여기 연습하는 데만 연습시간의 3분의 1을 할애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처음에는 익숙해져서 되는가 싶었는데, 어쩔 때는 되고, 어쩔 때는 되지 않는 간헐적 성공이었다.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는 그나마 있던 간헐적 성공도 배부른 소리다. 연습을 어느 정도 하셨냐는 질문에 나는 갑자기 억울한 심정이 들어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이 정도예요. 손목이 아플 때까지 연습했는데요...”라고 항변한다. “손등을 고정한 채로 손가락을 움직이셔야 근육이 제대로 음들을 기억하는데, 손등이 살짝살짝 움직이네요. 그래서 칠 때마다 정확하게 그 음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입력을 제대로 하셔야 돼요.” “그럼 지금까지 연습한 게 소용없게 된 건가요...?” 두려움이 엄습한다. “연습 방법을 좀 달리 해야 될 것 같아요. 한 마디에 16분음표가 열여섯 개 들어있는데, 이걸 두 개씩 한 조로 나눠서 친다는 느낌으로 연습하고 이게 손에 붙으면 네 개씩 나누고, 그다음에는 여덟 개씩으로 점점 늘려나가는 거죠. 한 번 해볼래요? 손등 신경 쓰면서요” 지금껏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될까 싶다. 어쨌든 선생님 말씀대로 손등을 고정하고 음들을 두 개씩 나눠서 쳐본다. 어라! 조금 다른데! 어느새 소리가 깔끔해졌다. 연습할 때 나를 끊임없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던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달라지다니.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으면 그건 연습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때는 과감히 중단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 정말 포기할 뻔했다. 아무리 집중해서 연습해도 매끄럽지 못한 연결, 뭔가 됐다 싶다가도 다음날이면 다시 삐걱거리는 음들, 그리고 긴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왜 이렇게 안될까 하는 자괴감. 거기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에겐 그래, 선생님이 있었지. 나보다 앞서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 그런 사람의 조언 한 마디, 도움의 손길이 순식간에 나를 건져낸다. 나 혼자 힘으로, 내 방식으로만 해결하려고 했다면 아직도 여섯 번째 변주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
겨울 방학을 끝내고 자기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초등학생 꼬마들이 보인다. 나도 이 아이들처럼 예전에는 귀를 열고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겠지. 그랬던 내가, 아니 우리가 나이 들면서 흔한 말로, 머리가 커지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딱히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실은 누군가에게 지적받는 느낌이 싫어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변화가 두려워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꽤 오랫동안 귀를 열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은 정해놓고 남들의 이야기는 듣는 척 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내 이야기를 하는 데는 그렇게 열을 올렸으면서.
삶은 나를 그대로 두지 않고 예기치 않는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순탄하기만 하면 그게 인생이겠는가. 회사를 다닐 때도 그리고 그만둔 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는 문제들은 언제라도 고개를 들고 나타난다. 그런 순간에도 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 굳게 믿으며 귀를 닫아 버렸다. 물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문제를 내가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그러니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답이 쉽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마치 빨간 머리 앤에게 "그건 아니라고! 길버트는 너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은 것처럼.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해봤는데 해결되지 않거나 아니면 같은 패턴의 문제가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 반복된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닫힌 귀를 열어야 할 때가 아닐까.
11번의 막힌 부분을 뚫어준 피아노 선생님처럼, 브런치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피아노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팟캐스트에 도전할 때도, 뭘 해야 할지 방황하는 그 고비마다 누군가가 있었다. 어쩌면 내 곁에는 늘 그런 존재가 있었겠지. 다만 귀를 열고 닫고의 차이일 뿐.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더 귀를 열어 볼까나. 부모님이든, 친구든, 동료든, 내 주변에 선생님은 많다. 그들이 피아노 선생님처럼 ‘진짜’ 선생님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인생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닫힌 귀를 여니 이제 좀 들린다. 그저 지나가는 소음으로 생각할지, 나를 바꿀 인생의 지혜로 받아들일지 취사선택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