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다른 나
모차르트의 환상곡 D단조, K.397을 연습하고 있다. 곡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예전에 쳐 본 경험도 있어서 조금만 다듬으면 금방 잘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주에 연습을 충분히 한지라 이틀 전 레슨 시간에 꽤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 음을 꽝 내려치고 선생님을 돌아봤는데, 선생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다른 곡들은 뭘 표현하고 싶은지 알겠는데, 이 곡은 뭘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어떤 거였어요?”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이건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대방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달까. “도대체 저기서 왜 저러는 거야? 몰입이 안되네.”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연기자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대본이 납득이 안돼서 그렇게밖에 연기할 수 없었다고 핑계 대는 연기자처럼, 모차르트에게 미안하지만 그의 탓으로 돌려도 괜찮을까.
사실 이 곡, 환상곡의 흐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도 아니고, 음악도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모차르트의 환상곡은 기존의 모차르트 소나타들에서 예상되는 전개와 달리 감정선이 오락가락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안단테로 걷다가 아련한 아다지오로 어느덧 넘어간다. 갑자기 웅장하다 못해 비장한 구간이 등장했다, 뭔가에 쫓기는 절박함이 마음을 졸이게 만들다 곧 사라지며 침묵한다.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아련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 뭔가 원망으로 끝날 것처럼 하더니만, 프레스토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 다시 솟아오르는 음들. 그런 부분들이 더 발전돼 처연하게 끝날 것 같았는데, 모차르트 소나타 1악장에 나올 것만 같은 발랄한 분위기로 반전. 그동안의 시련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경쾌하게 끝나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런 감정의 극적인 변화를 제대로 압축해서 표현해내는 연주자들 덕분이다. 작년 말에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뉴스에서 이 곡을 연주했는데, 요즘 말로 순삭이었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감정의 굴곡들을 5분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거침없이 다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던 여주인공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충분히 묘사되겠지만, 환상곡에서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아픈가 싶게 변덕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한 편의 환상을 본 것 같달까. 그래서 이곡은 환상곡인 것인가.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슬프면 눈물을 쥐어짜면 되고, 즐거우면 미소를 머금으면 되는 일이니까. 다만 이렇게 훅훅 바뀌는 감정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문제인데, 선생님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너무 감정이 확확 바뀌는 거 아니에요?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하는지 잘 이해가 안 돼요." 나부터도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떤 설명도 없이 연주로만 듣는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하긴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들은 훌륭히 해냈다. 그들과 비교하기엔 너무 부족한 나지만, 내게도 '갑분싸' 같은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차르트의 환상곡은 요즘 즐겨 듣는 BTS의 노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노래 안에 랩, 팝, 댄스 음악, 발라드, 락적인 요소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녹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차르트도 이런 효과를 노렸던 게 아닐까 조금 파격적인 상상을 해본다. 모차르트의 환상곡을 살롱에서 처음 접했던 그 시절 사람들도 "뭐가 막 다양하게 나오는데, 지루할 틈 없이 신나네." 이러면서 이 곡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내 속 안에 몇십 몇백명의 내가 있어. 오늘 또 다른 나를 맞이해. BTS의 Idol의 가사가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환상곡 안에도 몇십 몇백개의 수많은 감정들이 있는데, 그 감정이라는 의미를 조금 바꿔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천재 모차르트의 감정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어둡고 외롭기도 비장하기도 그랬다가 다시 즐거워지는 나 자신으로 대체하면 환상곡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터.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이런저런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뭔가 연결도 자연스러워지겠지. 이제부터는 모차르트로 빙의하지 말고, 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다고 생각하자. 그럼 억지스러웠던 감정의 흐름도 보다 편해질 거라고 기대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나를, 나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피아노도 그렇고, 글 쓰는 일도 그렇고. 내 안의 다른 나를 나는 오늘 또 이렇게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