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마교수는 박수현과 취조실에 마주앉았다. 박수현은 여유 있는 자세로 등을 기대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마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교수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박수현씨 지금 기분 어때요?"
"그냥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덜미가 잡히네요? 우리나라 경찰들 정말 훌륭합니다."
"비꼬시는 겁니까?"
"아니요. 진심입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얼마나 오래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모두 들통 나게 되어있습니다. 공공살인이요? 살인으로 어떻게 정의를 구현합니까? 살인이야말로 정말 큰 죄악이고 범죄인데. 죄가 다른 죄를 벌하는 게 말이 됩니까? 왜 그랬어요?"
마교수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박수현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봇물이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교수님도 깨어진 창문 이론이 뭔지는 아시죠? 1969년 스탠포드 대학의 한 교수가 했던 실험입니다. 두 대의 차량 중 한 대는 의도적으로 창을 깨놓고 한 대는 그대로 두었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창문이 깨어진 차는 배터리며, 타이어며 싹 뜯어가고 파손 되어 완전히 쓸모없게 된 반면에 창문이 멀쩡하던 차는 아주 잘 보존됐습니다. 이 이론을 뉴욕 시장이 뉴욕의 지하철에 적용해서 뉴욕 지하철의 치안이 좋아진 일화는 따로 말 안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조그만 빈틈이 커다란 파괴와 혼돈의 시작점이 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사회엔 굳이 법으로 정화하지 않는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범들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새치기를 한다고, 극장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경찰에 신고하진 않죠. 아니 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당하게 되는 폭력이에요. 저는 그런 작은 규범들의 파괴가 이 사회의 깨어진 창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조그만 질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종국엔, 사회 전체의 무질서를 낳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내 자식, 손자들이 마음 놓고 살지 못하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룰을 지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할 겁니다."
마교수가 박수현의 말을 끊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 그렇게 마구잡이로 죽였다는 겁니까?"
박수현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마구잡이? 우리는 대상을 정할 때 아주 깐깐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의 실수 정도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고 보니 꽤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폐를 끼치고 피해를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 죄책감 없이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 거의 그런 성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늘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더군요. 바로 그런 사람이 저희의 목표, 제거대상이 된 겁니다. 한 번 대상으로 정해지면 그 사람의 생활패턴을 집중적으로 조사합니다. 약 한 달에 걸쳐서 뒷조사를 합니다. 꽤 집요하게 말이죠. 그 한 달간의 조사 결과 그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상습적으로, 습관처럼 되풀이 하고 있으며 또한 그런 행동들에 어떤 가책도 느끼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표적이 됩니다. 그 사람들은 법으로 벌해지는 큰 죄는 짓지 않았다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조그만 틈, 깨어진 창문입니다. 법과 질서가 왜 필요할까요? 일반적인 상식과 이성을 갖춘 보통 사람들, 아주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조용히 제 할일하며 사는 사람들, 제 부모님도 그랬고 교수님도 마찬가지죠. 그런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법과 질서를 강요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회구성원들의 양보와 이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법과 질서가 필요한데 법과 질서 사이의 선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인간들이 있죠. 처치가 곤란한 인간들. 법으로 처벌하긴 애매하지만 사회적 동의를 깨는 인간들. 그들이 바로 저희 목표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그런 무뢰한들에게 피해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니 합니다. 바로 그 점이 저의 불만이었습니다. 시달리다 지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들 알고 있고 모두 짜증나고 화가 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저항과 해소를 하진 못합니다. 그들이 망가뜨리고 분탕질을 치는 일상과 법의 잣대는 분명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고한 피해자들이 참다보니 그것을 항변하기 위한 속담까지 있죠. 똥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겁니다. 저희들은 단순히 그 더러운 똥들을 청소해 나아가는 겁니다."
마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청소요?"
박수현은 여전히 차분하게 대꾸했다.
"네. 저희가 행한 일들은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치부할 순 없을 겁니다.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법을 적용하자면 아주 가벼운 위반, 혹은 조그만 사회질서를 어긴 정도라고 볼 수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공분을 살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바로 그 분노의 원초적인 최종지향점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운전하다가 짜증나면 저 새끼 죽여 버리고 싶다. 공공장소에서 마구 떠드는 무리들을 보며 짜증난다. 뒈져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그 최종지향점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 무뢰한들에 대한 살인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분노의 집행을 대신 함으로써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에게 후련함과 대리만족을 주고 잠재적인 질서파괴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카타르시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라. 정말 그럴까요?"
"시간이 되시면 한번 살펴보세요. 조사해보세요. 아마 우리가 행한 그 살인사건들 이후 사회 질서가 많이 바로 잡혔을 겁니다. 극장에서 떠들지 않고 의자를 발로 차지 말라 아무리 말해봐야 그런 버릇, 성향을 못 고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지 확인해 보세요. 그들은 절대로 극장에서 떠들고 의자를 발로 차지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그런 짓을 하다가 칼에 수십 번이나 찔려 살해당한 본보기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을 교화시킬 때 이성적인 설득과 논리적인 설명, 이해와 포용만으로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교화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아주 원초적, 동물적인 교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보기죠. 원초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와 본능적인 경계심이 그들을 교화시킵니다. 제가 조사하다보니 그런 본보기가 필요한 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좀 놀라긴 했지만요. 또 아까도 말한 내용이고, 한 가지 교수님은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유형이란 것이 상당히 자로 잰 듯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쉽게 말해 그런 인간들과 보통사람은 완전히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더 일을 결행하기가 쉬웠죠. 아예 다른 종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종이 다르다니요?"
박수현은 마교수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보이자 더욱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정신분석학, 범죄심리학에서는 보통사람과 식인종을 구분 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통사람과 구분되는 날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과 더불어 이성적인 사고와 말보다는 폭력과 무질서가 익숙한 종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저만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도 겉으론 제가 심하다고 말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의 이런 의도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몇 년 전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학생의 가해자들은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친구들과 그 가해학생들을 찾아가 죽기 직전까지, 비굴하게 울며 빌 때까지 두들겨 패고 사과를 받아낸 뒤 그 후기를 올리겠다는 글입니다. 사회적인 분노가 이렇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해소될 수 없는 것들 입니다. 제가 행한 것들도 바로 그것, 그 사회의 약자들 착한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울분을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교수는 박수현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혹시 그 조직의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아직 죄를 짓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혹여 또 당신이 말하는 이런 방식의 응징, 살인을 준비 중인가요?“
박수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마 제가 잡힌 이상 살인이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선하고 착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입니다. 단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을 강력하게 공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실천하기에는 그만한 동기와 신념이 필요한데 그 동기부여의 가장 강력한 존재가 다름 아닌 저라는 존재입니다. 아이디어의 근원입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단 이 사회의 깨어진 유리가 계속 존재한다면, 그들 중 하나가 또 다른 동기부여의 존재가 될지는 모를 일이죠."
마교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더 이상의 질문과 반론을 이어가지 않고, 그대로 면담을 끝내고 돌아나갔다.
이어진 조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박수현, 그는 12년 전 일어난 아동성폭행살인사건의 피해자였던 박소영의 아버지로 밝혀졌다. 당시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의 딸은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얼마 안가 범인이 잡혔지만, 범인의 무기징역이 확정되기까지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범인이 수감되고 사건이 종결된 이후 잠적했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의 지인들, 심지어 아내에게도 거취를 알리지 않은 채로 사라졌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추정되는 바, 아마도 그는 그의 딸이 그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된 원인에 원인을 쫓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사회에 자신만의 정의와 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렸다. 다시는 자신의 딸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일종의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마교수는 그가 조사 내내 매우 명료한 진술을 쏟아냈다고 하나 일종의 착란상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확고한 신념에 취한 상태와 정신착란에 빠진 상태는 구분이 힘든 법이다. 아무튼 그는 그가 내린 결론을 사회에 적용했고, 행동에 옮겼다.
그는 살인교사 혐의로 무기징역 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딸을 살해한 범인과 똑같은 벌을 받게 됐다. 허나 그의 증언과 과거가 기사화 되면서 많은 이들이 그를 동정했고, 심지어 그의 주장에 동화되는 이들도 생겨 인터넷에 일종의 팬클럽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대단한 활동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의 조직에 가담했던 추가적인 몇몇 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박수현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어 용의선상에 오른 자들이 모두 전과기록이 없고 평소 행실이 바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박수현이 말한 대로 사사로운 시비로 인한 살인사건이 추가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직, 보통사람들이 행한 살인과 메시지에 의한 영향인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가 조용해졌고, 도로의 무법자들도 얌전해졌다. 공공질서가 그 전보다 더 잘 지켜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이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건이 잊혀져가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치기를 하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도로의 무법자들도 다시 나타났다.
박수현은 여전히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