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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주 뒤 지금까지의 사건과 비슷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지하철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가해자의 이름은 고경훈. 대학생이었다.
한 노인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젊은 임산부에게 욕설을 하며 윽박을 질렀다. 여자는 이내 자리를 떴으나 노인은 여자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고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그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고경훈이 나서서 노인에게 그만두라 청했다. 노인은 표적을 바꿔 그에게 욕설을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노인과 실랑이를 하던 그가 갑자기 품에서 흉기를 꺼내 노인의 목을 찔렀다.
이번엔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으며 피의자가 현장에 머물지 않고, 도주했다는 점이 이전의 사건과는 달랐다. 그러나 마교수는 이 사건 역시 그가 지난 분노살인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박수현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단지 고경훈의 나이가 어리다보니 다른 이들과 달리 조금 미숙했을 뿐이라 했다. 마교수는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비추어 봤을 때, 고경훈은 이대로 도주하지 않고 곧 자수해 올 것이라 장담했다.
마교수는 연이은 사건들이 흉흉한 사회가 만드는 단순한 분노범죄, 우발적인 범행은 아니며 지속적으로 나름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메시지는 짧지만, 강하게 사회적인 파급력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예로 그 많던 지하철 전도사가 살인사건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교수의 예측대로 고경훈은 도주하지 않고 자신의 집 근처 경찰서에 자수해왔다. 놀랍게도 경찰조사 결과 그는 현재 박수현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었다. 경찰은 박수현과 고경훈의 통화기록을 조사한 결과 사건 일주일 전, 한 번씩 통화가 오고갔음을 알게 되었다. 통화 시간은 각각 30분정도였다.
마교수는 고경훈이야말로 사건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장담했다. 어찌됐든 그의 범죄행각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분명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자신이 직접 면담하겠다고 말했다.
마교수는 약 12시간에 걸쳐 고경훈을 면담했다. 처음엔 그저 우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하던 그는 끈질긴 표교수의 질문과 날카로운 분석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마교수는 그의 증언을 통해 2004년부터 일어난 모든 살인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건들의 진상은 마교수의 생각보다 더 흥미로웠다.
경찰은 살인교사 혐의로 박수현을 긴급체포했다.
박수현은 하나의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그 조직의 크기와 인원은 불분명하나 그들이 공유하는 기치는 분명했다.
-공공살인-
사회의 정의, 규범과 질서, 바른 도덕관을 원초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공공살인! 공포와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본보기살인! 이미 교도소에 투옥 되어 있던 자들도 모든 것이 들통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행동강령과 조직에 대한 증언을 했다. 이들은 박수현이 주장하는 그의 신념, 정의와 이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종교집단에서 순교를 결심한 순교자들처럼 자신감이 넘쳤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더 이상 숨길 것 없이,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조직에 대해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서로의 존재도 잘 모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과 박수현만의 2인 조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또한 자신과 박수현 외에 다른 조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게 누군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박수현이 답이었다. 그를 심문하지 않고선 이 조직의 실체를 가린 베일을 벗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박수현은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했고 경찰에 처음 불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번엔 마교수가 직접 나서서 박수현과 면담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