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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Jul 14. 2016

깨어진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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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8일엔 무단횡단을 하던 한 50대 주부가 달려오던 차에 치어 숨졌으며 2005년 3월 10일엔 한 남성이 택시 승강장에서 새치기를 하다가 프로복서 출신인 가해자에게 처참하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일 만우절에는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휴대폰으로 방송을 시청한 어떤 남성은 이어폰을 꼽고 들으라는 가해자의 타박에 다툼을 벌이다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2004년 크리스마스에서부터 2005년 만우절에 벌어진 사건까지 모두 별개의 살인사건으로 인식되었으며 사건들 간에 어떤 연관성을 부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저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가벼운 시비가 살인으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더하여 이웃과 멀어지고 관계가 척박하게 변해가는 현대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러한 분노살인이 증가하게 된다는 주제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러한 분노살인사건들의 연관성에 관해 의문을 제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경찰대의 범죄심리학 교수인 마교수였다. 


마교수는 2004년 크리스마스에서 부터 2005년 만우절까지의 살인사건이 모든 가해자의 살해방법과 증언들이 다양한 와중에도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해자가 모두 비슷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크든 작든 모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 혹은 공공질서를 해치고 저하시킨 이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그 동기가 매우 충동적이고 그들의 증언도 일관적으로 충동적 범죄로 귀결되지만 범행과정과 수법은 계획해 온 것처럼 치밀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들의 가해자들은 비슷한 패턴을 지니고 있으며 별개의 살인사건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목적을 가진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범죄로 봐야 옳다고 말했다.


마교수는 비슷한 사례로 살인사건이 아닌 2004년 2월에 있었던 폭행사건에 주목했다. 


사건의 가해자는 한 영어학원의 강사였는데 평소 복싱을 해오고 있어 일반인보다 완력이나 체력이 월등했다.  그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지나는 길에 나 있는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와 지내곤 했는데 그 날 한 노숙자가 술에 취해 길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고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경찰에 신고도 접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경찰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노숙자는 흠씬 두들겨 맞고 항거불능 상태였다. 노숙자는 그 곳을 지나던 여대생의 손을 잡고 껴안으려 하는 등 희롱을 했으며 마침 지하도를 지나던 그의 눈에 띄어 그가 여대생을 구해주었다고 했다. 


노숙자는 전치 12주의 진단을 받고 그를 고소했다. 그는 합의를 했으나 큰돈을 합의금으로 지불해야했다. 당시 상황이 참작되었고, 여대생 역시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지만 법정은 커다란 위기 상황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사법부와 경찰도 그에게 선한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교수는 2005년 3월 10일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이 복싱선수였으니 아마 그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교수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경찰에 귀띔했으며 경찰은 그 영어강사와 복서와의 관계를 쫓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사결과, 놀랍게도 그 둘은 같은 복싱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이들은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마교수의 추리가 어느 정도 들어맞자 경찰은 좀 더 그들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추가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벌어진 살인사건들의 가해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폭행사건의 영어강사에게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교수는 그 강사에게 무언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더 있을 것이라 추리했다.   


경찰은 참고인으로 영어강사 45세 박수현을 소환했다. 


박수현은 평소 아주 착실히 생활하고 있었으며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둔 가장으로 2004년의 사건 이후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경찰의 첫 번째 신문결과 박수현과 살인사건 피의자들의 관계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들이 그에게 강의를 듣게 되었던 것 같았다. 수더분한 외모와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는 그의 증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경찰이 각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라워했다. 또한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던 복서에 대해 몇 번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으나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라 증언했다. 그는 앞으로도 경찰의 조사에 협조하기로 하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마교수는 경찰과 그의 질의, 응답이 담긴 비디오를 넘겨받아 면밀히 분석을 했다. 마교수는 경찰을 재차 다그쳤다. 그의 말투와 행동에는 거짓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차분한 상태로 시종일관 질문하는 형사의 눈을 쳐다보는 것은 진실을 말해서가 아닌, 그의 거짓말을 확실히 관철시키려는 태도로 보인다고 했다. 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수상해 보인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학생들이 모두 살인사건의 가해자란 이야기에 놀라는 대목에서 감정이 일시적으로 드러나는데 마교수는 이조차 경찰을 속이기 위한 연기라고 단정했다.


마교수는 박수현의 행동과 증언은 거짓말 탐지기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며 어떤 굳은 신념과 목표를 향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기에 이와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마교수는 아직 포기하긴 이르며, 박수현에 대한 관찰과 조사를 이어가도록 경찰에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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