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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Aug 05. 2016

버스 안에서

유난히 까무잡잡한 얼굴에 왼쪽 볼에 뾰루지가 올라와 있고, 진한 쌍커풀에 입술이 두툼한 남자와 모자를 써서 눈은 잘 보이지 않는데 머리통이 주먹만 하니 작고, 코가 삐죽한 여자가 함께 버스에 올라탄다. 둘은 연인사이로 보인다. 


여자는 팬티라 하긴 좀 두껍고, 주머니가 달렸으며 반바지라 하긴 너무 짧아 허리를 조금만 수그려도 접힌 엉덩이 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핫팬츠를 입고 있다. 여자의 얼굴은 과히 못나지는 않았으나 예쁘다고 할 수도 없다. 가슴은 작아 티셔츠가 헐렁하고, 골반도 없어 그 몸매가 영 밋밋하다. 그래도 짧은 반바지 아래 허벅지는 적당히 살이 오르고 종아리는 쭉 뻗은 것이 다리는 꽤 봐줄만 하다.


남자는 평범한 줄무늬 폴로 티셔츠를 입었는데 무릎까지 가리는 칠부 반바지가 너무 밀착해 촌스러운 느낌이다. 검게 탄 얼굴도 그런 느낌에 한술을 더한다. 


팬티반바지를 입은 여자가 얼른 버스 맨 뒷자리에 올라앉는다. 양 옆으로 두 명씩 넷이 이미 앉아 있어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남자는 뒤따라와 바로 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옆쪽에 기둥을 붙잡고 몸을 지탱하며 서서는 여자와 몇 마디인가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가 출발하고 몇 정거장이나 갔을까? 남자는 위에 올라앉은 여자의 종아리와 발을 연신 만지작거리고 주무르기 시작한다. 


남자의 뒤쪽에 선, 흰 셔츠에 넥타이를 졸라매고 곤색 면바지를 차려입은,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곁눈질로 그 모습을 훔쳐본다.


셔츠남의 눈 속엔 분명 욕정이 담겨 있다. 칠부반바지남은 그 눈빛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여자의 종아리를 만진다. 핫팬츠녀는 그게 싫지 않은지 그대로 두는 것도 모자라 가끔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나름 교태 따위를 부린다.


셔츠남의 눈빛은 더욱 불타오른다. 커플이 그 눈빛을 의식하지 않는 것을 알자 대놓고 핫팬츠녀의 허벅지를, 남자의 손에 주물리는 종아리를 흘끔거린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막 발목을 만지던 남자의 손이 떨어져 천장의 부저로 간다. 버스가 서고, 핫팬츠녀가 몸을 일으킨다. 남자의 뒤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셔츠남은 그 모습을 연신 지켜본다. 핫팬츠녀의 뒷모습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그녀가 버스카드를 찍을 때는 아예 대놓고 시선을 그녀의 둔부로 향한다.


이윽고 커플이 내리고, 문이 닫히고 버스는 출발한다. 셔츠의 남자는 어느새 뒷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눈동자 속 욕정의 불꽃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소화됐다만 셔츠남의 머릿속은 칠부반바지남과 핫팬츠녀의 침대 위 사정으로 여전히 뒤엉켜있다. 셔츠남의 입가에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셔츠남은 올해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졸업을 하기도 전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건실한 기업에 입사했다. 주량은 소주 두 잔, 담배는 못 피운다. 여자친구는 딱 세 번 사귀어 봤으며 현재 솔로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마냥 착하다고 한다. 혹은 효자라 부른다. 길에 쓰레기 한 번 버린 적 없고, 무단횡단은 시도해본 적도 없다. 셔츠남의 꿈은 좋은 여자를 만나 평범한 가정은 꾸리고 아이는 둘 쯤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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