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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Jul 29. 2016

배터리

콕의 꿈

리가 물었다.


"모래목욕? 그게 뭐야?"


콕이 답했다.


"그런 게 있어. 쉽게 말해 그냥 모래 위에서 뒹구는 거야. 홰도 좀 치고 말이야.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 사이에

발가락도 척척 넣어보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좋다."


"흠......."


리가 조금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듯 보이자 콕이 얼른 다시 말을 돌렸다.


"아! 아니야- 아니야. 하하- 그래 너무 무리한 요구지? 그냥 그래- 그냥 난 그거면 되겠어."

"응? 무리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뭔데?"

"모래목욕은 못하더라도 그냥 모래 바닥 위에 서보고 싶어. 그냥 그뿐이야. 그래 그러면 되겠어."

"지금 그 철망은 별로니? 모래보다 더 깨끗해 보이는데."

"별로냐고?"


콕은 갑자기 홱 발바닥을 들어보였다. 엉망이었다. 곳곳에 상처와 물집이 잡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는 저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자 이것 좀 자세히 봐. 좀 있음 내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거야. 물론 그전에 죽을 거야. 다행이지? 닭발이 잘리면 상품성이 떨어지니까 말이야. 그냥 죽기 전에 모래바닥에 서보고 싶어. 이 철망바닥이야 깨끗하겠지. 그냥 내가 싼 똥오줌을 치우기 쉽도록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그런데 또 문제가 있어 겉보기만 번지르르해 아래로 똥이 쌓이고 동시에 썩어가지. 제때 청소를 해주질 않아서 냄새 때문에라도 난 미쳐가는 것 같아.”

“이 새장이 너희를 위해 설계된 건 아니구나.”

“절대 아니지. 아 오해는 말아줘. 불평하는 건 아니야. 어 그러니까 난 인간을 좋아해. 너도 좋아하고.”

“으응.........”

“인간들이 날 죽여서 먹거나 말거나 난 상관없어. 아니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당장은 찾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의미가 부여된다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지금 나는 나라는 존재가 대체 왜 세상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그저 인간들을 먹이기 위해-라는 한 가지 사실만이 내 머릴 채우고 있을 뿐이야. 그건 됐어. 그걸로 좋아. 죽으면 끝이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죽고 나서 날 먹든 어디다 버리든 내 알 바가 아니야.”

“으음.”

“다만........”

“다만?”

“다만 그냥 살아생전에 나의 몸 안에서 날뛰는 이것들을 좀 잠재우고 싶어. 그래 인간들은 이걸 욕구라고 한다지? 본능이라고도 하고.”

“아까 말했던 것들?”

“그래 아까 말했던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이미 나와 같이 태어났던 놈들은 전부 정신이 나가버렸어. 나도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있어. 다른 녀석들은 이미 고통에 둔감해졌어. 아니 고통이 뭔지, 욕구가 뭔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 돼버린 거야. 그냥 괴성을 지르고 서로를 물어뜯고 할퀼 뿐이야. 완전히 미쳐버린 거지. 그 녀석들은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숨통을 끊어주는 게 나을 거야.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아. 더 커야 하거든. 아직 죽이기엔 작다는 말을 들었어.”

“죽이기엔 작다고?”

“응 덕분에 서로를 쪼던 녀석들은 부리가 잘려나갔지.”

“뭐? 정말? 왜?”

“말했잖아. 서로를 쪼아서 몸에 상처가 나서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다 크기도 전에 죽으면 곤란하거든.”


리가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콕이 말을 이었다.


“부리가 잘린 녀석들은 말이 없어.”

“그건 왜? 혀도 잘린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인간들이 부리를 아주 뜨거운 칼날로 자르고 제대로 소독을 해주지 않아서 곪고 썩어 주둥이가 아파 말을 못하게 되거든. 일석이조지. 하지만 곧 또 미친놈들이 생겨날 거고, 또 시끄러워질 거야. 그리고 부리가 잘리겠지. 반복될 뿐이야.”

“인간들은 참 잔인하구나.”

“다 사정이 있지 않겠어? 난 이해해 다 이해한다고. 그러니까 리, 부탁이야. 난 말이야. 난 달라. 저기 저 미쳐버린 녀석들과 난 달라........ 난 말이야. 미치지 않았어. 미치지 않았다고!”


콕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앙되어갔다.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여길 나가게 해줘! 도망치지 않을게! 그냥 여길 나가서 모래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게만 해줘!”


그때였다. 새장 안쪽에서 부리가 잘리고, 입가에 진물이 흐르는 혹을 주렁주렁 단 녀석이 콕에게 다가왔다. 좁아터진 새장인지라 닭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왔다. 사실 콕도 여태 다른 닭들의 엉덩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콕은 조금 옆으로 비켜나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어눌하게 입을 열었다.


“한가지, 콕 네가 틀린 게 있어.”

“뭐라는 거야. 이 정신 나간 녀석이!”

“아니. 난 가끔씩만 그렇다. 지금은 멀쩡해.”

“리, 이 녀석은 신경 쓰지 마. 이 녀석은 팩이라고 해. 다른 동료들을 쪼고! 먹기까지 했어.”


허나 팩은 입을 다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콕. 난 너의 말에 동의한다. 리, 난 콕이 꼭 모래바닥을 딛길 원한다.”


콕은 그제야 조금 표정이 누그러졌다. 팩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콕이 한가지 틀린 말을 했다.


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뭔데?”

“우리가 고통에 둔감해졌다고 했다. 그건 틀렸다. 살아있는 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것은 고통에 둔감해진 것이 아니라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통은 마치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똑같이 작용한다. 미쳤든 안 미쳤든, 작든 크든, 개든, 고양이든, 닭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고통은 똑같은 고통이다!”


흥분한 팩을 광기가 다시 잠식했다. 팩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콕에게 덤벼들어 쪼으려고 했지만, 부리가 없어 여의치 않았다. 콕도 끝내 이성을 잃고, 흥분해버렸다. 마구 팩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주둥이의 혹을 공격당한 팩이 몸을 부르르 떨며 물러났다. 콕은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렸다.


허나 리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콕은 실망하지 않았다. 미쳐버리지 않도록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따가운 태양을 상상했다. 드넓은 모래바닥에서 마음껏 뛰노는 상상을 했다. 부질 없는 망상만이 콕을 잠시나마 고통에서 자유롭게 했고, 콕은 그렇게 안정을 찾아갔다.


며칠 뒤, 콕은 원하던 것을 얻었다. 


물론 모래바닥은 아니었다. 콕은 충분히 자랐고, 상태도 좋았다. 콕은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렸다. 털이 뽑혀나갔다. 모가지가 잘려나갔다.


콕의 눈은 내내 감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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