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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Sep 24. 2016

큐브

K는 오래 전부터 몹쓸 병을 앓고 있었다. 따져보니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병명은 공황장애.


공황장애라는 병은 실상 어디 하소연하기도 뭣한 그런 질병이다. 겉보기엔 딱히 남과 다를 것도 없다. 갑자기 얼굴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 빼고는, 그마저도 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나아지기 때문에 K 스스로도 대단한 병은 아니라고 치부했을 정도였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적어도 죽거나 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공황이 덮쳐오는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불안과 초조에 미쳐버릴 것 같지만 말이다.


공황발작의 징후는 앓고 있는 환자에 따라 다른데 K의 경우, 주로 사람들이 많은 혼잡한 곳이나 밀폐된 곳, 예를 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 한복판 혹은 엘리베이터 등지에서 나타나곤 했다. 그러하니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하면 공황발작이 덮쳐와 몇 정거장 못가고 다시 내려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시 탔으며, 엘리베이터는 도저히 못탈 것 같아 비상계단을 이용했다가 엘리베이터 못지 않게 밀폐된 환경에 또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거기다 이 공황발작 증세가 조금씩 그 범위를 넓히는데 어떨 땐 잠을 자다가도 K를 덮치곤 했다.


K는 보통의 회사에 취직할 엄두를 보냈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다 운 좋게 버스기사가 되기도 했는데 그 역시 얼마 못가 관두었다. 당연한 일이다. 버스야말로 대표적인 대중교통이니 말이다. K 딴에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운전에 집중하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조금 차가 막히기만 해도 기다렸다는 듯 공황발작이 K를 덮쳤고 안절부절 손이 떨려 핸들을 놓친 적도 있었다.


결국 K는 비관과 좌절에 빠져들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도 먹었다. 공황장애 환자 모임에도 나가봤다. 별의별 짓을 다 해도 공황증세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뿐이었다. 얼마 안가 재발했고, 재발한 공황장애는 더욱 강렬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K는 현재 심야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 연명하고 있으며 공황의 공포를 이기려 술을 먹기 시작해 이젠 준알콜중독자 신세가 되었다. 궁핍한 경제상황에 짓눌려 정신과 진료도 못 받은 지 오래되었다. 먹고 죽을 돈도 없다. K는 병증에 완패했고, 늘 쫓기며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K가 별똥별을 본 것은 편의점을 퇴근하고 나오는 새벽녘이었다. 지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하늘을 볼 여유가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별똥별이 너무도 밝게 빛나며 그리 높지 않게 날았기 때문이다. 긴 꼬리를 늘어뜨린 별똥별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사라져갔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봤던, 외계인의 침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다. 심지어 단 한 번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지구의 인간들이야 그들에게 한낱 미물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무슨 설명이 필요했겠는가?

 

그들은 채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지구를 완전히 정복했다. 그들은 현재의 인간으로선 불가해한 기술과 무기를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이 작용했다. 태고로부터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룬 모든 성과와 흔적을 파괴했다.


그 다음, 전 세계의 살아남은 모든 인간을 발가벗겼다. 거대하고 투명한 정육면체의 큐브 안에 전부 쳐넣어버렸다. 동시에 그들은 인간 외의 다른 동물종들과 자원을 채취했다. 인간이 갇힌 큐브 역시 그들의 자원으로 쓸 계획이란 소문이 돌았다.


큐브는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었다. 더욱이 큐브 안의 인구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머리 위를 밟고 서지 못하게 큐브 안에 투명한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차렷 자세로 다닥다닥 붙어서 큐브 안에 적재(?)되었다. 허나 신기하게도 호흡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며칠씩 밥과 물을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생명활동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뭔가 신비한 힘이 큐브에서 전달되는 듯 보였다.


K 역시 큐브에 갇혔다.


K는 건물의 붕괴와 지진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갑자기 공중으로 훌쩍 들어올려진 K는 하늘을 빠르게 날아올라 투명한 큐브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콩나물 시루 같은 큐브 안에서 공황장애를 앓는 환자인 K는 그야말로 죽음보다 더 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벌거벗은 채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만원버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큐브에 갇힌 첫째 날, K는 심장이 터질 듯 뛰다가 잦아들다를 반복했고 연이어 구역질이 났다. 숨이 막혀왔다. 헐떡헐떡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며 뱃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종일 이어졌다. 공황발작이 극에 달했을 때 K는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쳐버렸다. 그리고 깨어난 다음 다시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었다. 다시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K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차피 외계인들에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그냥 혀를 깨물고 죽으면 될 일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둘째 날, K는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공황발작에 괴로워했지만 기절은 하지 않았다.


셋째 날, 넷째 날, 다섯 째 날 K는 점점 공황발작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도망치던 전과는 달리 극단적 상황 하에서 무기력하게 강한 공황발작에 속수무책 당하는 날만 이어지자 마침내 위대한 적응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한 달 만에 K는 자신에게서 공황의 징후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큐브는 자신들의 차원, 자신들의 세계로 옮겨질 것이며 지구 상에서 인류는 완전히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K의 곁에 찰싹 붙어있던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절규했다. K는 차분하게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K에게 쏘아붙였다.


"뭐요? 이제 두렵지 않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리더니!"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기분이 괜찮아서......."


K의 말에 남자가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K는 일부러 숨을 헐떡이고 답답해 죽겠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지만 공황발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질환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알 수 없는 성취감에 희열이 느껴졌다. K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들의 예고대로 사람들이 갇혀 있던 큐브는 곧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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