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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Sep 26. 2016

동전의 성

A는 이름난 평론가였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꿈이었으나 기민하게도 일신에 잠재한 재능이 뛰어난 명작을 탄생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밤낮없이 도서관에서 살았다. 미술 나아가 예술에 대해 공부했다. 한없이 깊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과  끝에 세월이 흘러, A는 마침내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고 유명한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수많은 화가, 조각가...... 예술가가 A의 몇 마디 평에 의해 슈퍼스타가 되곤 했다. 


A는 한창 공부하던 시절부터 평소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몸에 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걸어 정확한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식사시간, 공부시간, 휴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A의 사무실로 가는 길에 거지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전 하나를 거지의 깡통에 던져 넣은 이후로 그 역시 하나의 습관이자 규칙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A는 매일 같이 거지의 깡통에 돈을 던져 넣었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A는 역시나 같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멀찌감치 거지가 A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엔 멍청히 앉아만 있던 거지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A는 문득 호기심이 생겨 거지에게 다가갔다. 


거지는 깡통에서 동전을 하나씩 꺼내어 이리저리 배열하고 쌓아 일종의 성 같은, 기이한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다. A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거지에게 물었다.


"뭐하고 계십니까?"


거지는 항상 자신에게 동전을 주는 A를 잘 알고 있었다. 얼른 친근한 말투로 답했다.


"아 예- 그냥 심심해서 동전 쌓기를 하고 있었습죠."

"뭘 쌓는 거죠?"

"에?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모르다니요?"


거지는 동전을 하나 들어 불룩 솟은 탑 위에 올리더니 답했다.


"그냥 종일 앉아서 오가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자니 너무 심심해서 뭘 할까 생각했습니다. 옆으로 누워서 잠도 자보고, 여기 옆에 나뭇잎도 좀 뜯어보고, 다시 사람들도 지켜보다가 마침 동전이 꽤 쌓였기에 그냥 늘어놓고 쌓았습죠. 재미 삼아서요."

"재미로? 그러니까 그냥 늘어놓은 거군요?"

"네- 맞습니다."


A는 유심히 거지가 쌓은 동전의 성을 지켜보다 말했다.


"제가 지금 쌓아놓은 동전을 좀 찍어가도 될까요?"

"네."


평론가 A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거지가 쌓은 동전의 성을 찍었다. 그리곤 다시 동전을 몇 개인가 꺼내 거지에게 주었다. 거지는 기쁜 표정으로 동전을 받아들더니 또 성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A는 집으로 돌아갔다. 곧장 컴퓨터를 켜고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꺼내보았다. 크게 확대시켜 살펴보니 거지가 쌓은 동전의 모습이 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정한 규칙과 형태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작은 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A는 가만히 동전의 성을 지켜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꽤 신선한 영감을 받는 것을 느꼈다.


A는 거지가 쌓아올린 동전의 성에 이런저런 해석과 평론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을 한 미술잡지에 발표했는데 한바탕 난리가 났다. 무명작가의 습작이라 발표했던지라 사람들은 대체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해 했고 A에게 문의가 쇄도했다. 새롭게 발굴한 작가냐는 둥, 혹시 이름난 조형미술가 K냐는 둥 말이다. 


A는 계속 침묵을 지키다 한 미술관의 오픈 기념식에서 대체 <동전의 성>을 만든 이가 누구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냥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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