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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Sep 28. 2016

구아르

라디오에서는 연일 공격적인 언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투치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다.” 또는 “투치족은 에티오피아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다. 단, 육지가 아닌 강을 통해서.” 혹은 “투치라는 이름의 쓰레기들을 전부 쓸어버려야 한다.”, "투치는 인간이 아니다."까지, 광기는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구아르는 몰랐다. 구아르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소를 길렀다는 사실을, 더하여 소를 기르는 이들이 투치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라디오에서 연일 투치족을 몰살시키자며 선동하는 자들은 경작을 하던 후투족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구아르는 몰랐다. 후투족이 과거 타국의 식민시절, 투치족의 지배를 받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로 인해 후투족이 투치족에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구아르의 눈에는 그저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다 두 발로 걷고, 눈, 코, 입이 달렸다. 다를 것 없었다.      


구아르는 몰랐다. 후투족이 타국이 식민지배가 끝났을 즈음 봉기하여 권력을 잡은 뒤로도 원한은 계속 존속됐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어이없게도 이러한 분열의 시초는 후치족도 투치족도 아닌, 타국의 정복자가 멋대로 분리정책을 실시했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더욱 알 턱이 없었다. 구아르가 그런 일들을 알 리 없었다.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았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구아르는 고작 일곱 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아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주먹 하나 만큼 컸고, 넘어지지 않고 달리기도 잘했다. 수영도 곧잘 했으며, 잠수는 더 잘했다. 구아르의 꿈은 달리기 선수였다.


구아르는 얼마 전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대통령 물론 후투족이었으며, 후투족은 비행기가 추락한 원인을 투치족의 테러라고 여긴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없었다.


구아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구아르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구아르의 뺨을 때렸다. 구아르는 놀라고 아픈 나머지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빨리 나오라 소리치며 구아르의 손을 확 잡아끌었다. 팔이 뽑혀나갈 것 같았다. 구아르는 속옷만 입은 채로, 엉엉 울면서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에게 끌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구아르는 무턱대고 달렸다. 아니 아버지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 어찌나 정신이 없고, 어처구니가 없던지 구아르는 눈물도 뚝 그쳐버렸다.     


곧 구아르의 귀에 많은 이들의 비명소리와 욕설이 뒤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콩을 볶아대는 소리도 났다. 둔탁한 파열음도 들렸다. 아버지는 이내 안 되겠다는 듯 구아르를 거칠게 안아 올렸다.      

구아르는 다섯 살 이후로는 아버지에게 안겨본 적이 없었다. 구아르는 아기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순간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버지의 품속에서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구아르의 눈에 주위의 살풍경이 오롯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수많은 사내들이 저마다 기관총과 팔뚝만한 벌채용 칼, 마체테를 들고 마을사람들을 쫓고 있었다. 몇몇 집은 불이 붙어 검은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막 자욱한 흙먼지와 연기 너머로 구아르는 앞집에 사는 아저씨의 어깨에 마체테가 내리꽂히는 것을 봤다. 그리고 구아르는 마체테를 내리친 반쯤 눈이 풀린 사내가 구아르가 가끔 가던 옆 마을 교회의 목사님이라는 것도 알았다.      


멀찌감치, 강가에 수영을 하러 갈 때면 가끔 마주치는 댈리아 누나가 발가벗겨진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코피를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댈리아 누나의 곁에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이 반쯤 잘려나간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발가벗은 댈리아 누나의 바로 뒤에 대머리의 덩치 큰 남자가 딱 붙어 있었다. 한 손엔 마체테를 들고, 한 손은 누나의 모가지를 손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웬일인지 대머리 남자의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가 있었다.     


구아르는 고개를 돌리고 아버지의 품에 머릴 처박았다. 눈을 감고, 크게 아버지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한참을 가던 구아르는 살짝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비명소리도 여전했고, 끔찍한 살풍경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구아르는 낙심했다.     


그런데 구아르의 눈에 멀리 코끼리만큼 커다랗고 멋진 장갑차과 탱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로 깨끗하게 다림질 된, 얼룩무늬 옷을 입고 서 있는 키가 크고 멋진 군인들도 보였다.     


새하얀 장갑차와 탱크엔 잘 보이도록 진한 검정색으로 UN이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구아르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들인지도 몰랐다. 뭐랄까? 너무도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현실이라 믿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아비규환의 장막 너머에서 그들만이 평온했다. 차원이 다른 그런 세계인지도 몰랐다. 구아르도 평화로운 저쪽 세계에 머문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구아르는 계속 도망을 쳐야하는 세계 속에 있었다.


마침내 한참을 달리던 아버지가 우뚝 멈춰 섰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와 고동치는 심장소리가 요란했다. 구아르는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올려다봤다. 강물이 넘실대는 소리가 들렸다. 강에 도착한 것이다.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강 건너를 바라봤다. 구아르가 고갤 돌려보니 강 건너편에, 마체테를 든 젊은 남자들이 잔뜩 서 있었다.     


다음 순간,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치의 쓰레기들! 강물에 스스로 빠져 죽을 테냐? 마체테에 썰릴 테냐? 결정해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막 뒤쪽에서 달려온 마체테를 든 한 무리의 사내들이 강가에 선 수많은 도망자들을 둘러쌌다.      


구아르는 여전히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쫓고 쫓기는가, 죽이고 죽는가. 이제 처음 본 사람들끼리 그럴만한 이유가 뭐가 있는가?     


아버지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구아르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자 영문도 모르면서 서글픈 마음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막 도망을 치려던 한 남자가 마체테를 든 자들에게 붙들렸다. 남자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 곧장 아킬레스건이 잘려나갔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고, 신음을 흘렸다. 울며 발목을 쥐고 바닥을 기었다. 마체테를 든 자들은 연신 “투치족 쓰레기들!”이라고 말하며 남자를 보며 웃어댔다.      


제일 크게 웃던 녀석이 갑자기 바닥을 기는 남자의 팔뚝을 발로 짓밟더니만, 마체테를 내리쳐 남자의 손목을 싹둑 잘라버렸다. 남자는 분수처럼 피를 뿜는 손목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발광했다.     

남자는 고통 속에 천천히 죽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울고, 소리치며 제 발로 강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일방적 폭력과 잔인함의 광기에 중독돼버린 마체테를 든 자들이 아직 망설이는 물가의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체테의 사내들이 다가오자 다급하게 구아르를 내려놓더니 얼른 강 가까이 데려갔다. 아버지는 구아르를 한 차례 꽉 안아주었다. 구아르의 눈을 바라봤다. 구아르는 울음을 멈췄다. 아버지의 얼굴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인자함과 온화함,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허나 분명한 슬픔 또한 공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아르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구아르...... 사랑한다.....”

“아빠?”     


아버지는 울음을 터트렸다. 구아르를 재차 안아 올리는가싶더니 냅다 강을 향해 집어던졌다. 구아르가 멍한 표정으로 머리부터 강으로 추락하는 순간, 마체테를 든 두 명의 사내가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봤다. 마체테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아버지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다음 장면은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구아르는 그 전에 머리부터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구아르는 본능적으로 물에 빠지기 전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구아르는 깊고 어두운 강물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

.

.

.     


구아르는 살아남았다.     


튼튼한 구아르는 늘 누구보다 오랫동안 잠수를 하곤 했다. 그것이 죽음이 팽배한 강물 속에서 구아르를 다시 살려냈다. 제일 느지막히 강물에 던져졌고, 오랜 시간 강물 아래 잠겨 있었다. 연신 구아르를 얼굴이며, 팔이며, 목이며 붙들어대는 지옥의 물귀신들을 모조리 뿌리치고, 구아르의 머리가 물 위로 떠올랐을 때, 둑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강은 달랐다.     


팔, 다리, 머리통이 잘린 채로 넘실대는 강물 위를 표류하고 있었다. 강물 속, 구아르에 발에도 연신 물컹하고 단단한 것이 계속 채였다. 그것이 물고기는 아니라는 것, 구아르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물 위로 떠오를 때 구아르를 붙잡고 늘어지던 물귀신들일 터였다.......     


구아르는 공황상태에서 연신 숨을 헐떡이고, 몸을 가누지 못해 강물 아래로 머리가 가라앉았지만, 강렬한 생존의 본능은 구아르의 팔다리를 끊임없이 버둥거리게 했다. 구아르는 그렇게 천천히 뭍으로 향했다.     


강물은 얼마 전 쏟아진 비로 수량이 풍부했음에도 수족과 사지가 잘리고, 모가지가 달아난 숱한 시신들이 내뿜는 핏물을 채 희석시키지 못해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구아르는 발을 질질 끌며 뭍으로 나왔다.     


피로 물든 강물에 흠뻑 젖은 구아르는 우뚝 서서 강을 돌아봤다. 유난히 밝은 태양이 여보란 듯 강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구아르는 한참을 멍하니 산지옥의 방관자가 되어 붉은 강물이 넘실거리며 전설 속 투치족의 고향으로 숱한 시체와 그 조각들을 몰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구아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었다. 구아르의 눈은 언뜻 무심해 보일 정도로 공허하기만 했다.     


구아르는 뒤늦게야 천천히 현실을 인지해가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떠가는 움보 아저씨를, 반다 아줌마를 보았다. 강물에 휩쓸려 뭍으로 밀려나온, 공터를 함께 달리던 친구 카가메를 보았다. 거꾸로 뒤집혀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아기들을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봤다. 온전하지 않은, 끔찍한 흔적들만이 물결을 타고 부유하고 있었지만 구아르는 그것이 아버지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구아르는 점차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구아르를 달리게 하고 헤엄치게 만든, 삶을 지탱해온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좀 더 근원적이고, 역동적인 어떤 강렬한 힘이었다. 그 힘이 발산하는 열기가 강물에 차갑게 식은 구아르의 몸을 뜨겁게 데우기 시작했다.     


공허하던 구아르의 눈에 또렷한 초점이 돌아왔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구아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뒤로 돌아섰다. 연신 주위를 경계하며 걷기 시작했다.     


1994년 티 없이 맑고 청명한 어느 여름 날 아침.

르완다 키갈리 주의 한 마을, 또 하나의 새로운 복수의 서사가 첫 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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