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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Oct 04. 2016

맹인들의 나라

1.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었다.


넓은 바다의 한 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조그만 섬나라인데 이곳에 사는 이들은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며,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모두 날 때부터 맹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앞을 보는 이들이 사는 곳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나라에 사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인 A씨의 하루 일과를 따라 가보기로 하자.  


A씨는 오늘 평소보다 일찍 알람을 맞춰두었다. 이날은 A씨가 직장을 옮긴 후,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출근 첫 날이니 만큼 아무래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을 하는 편이 새로운 직장 동료들과 상사에게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A씨의 아내도 덩달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A씨의 아내는 늘 그래왔듯 A씨의 출근준비를 빈틈없이 도울 것이다.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알람이 울렸다. A씨는 머리맡을 더듬어 알람시계를 찾아 알람을 껐다. 시계는 점자판으로 되어있어 손끝으로 더듬으면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릴 적 말을 배우기 시작함과 동시에 점자를 배운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눈으로 글을 읽는 것보다 배움의 속도가 빠르면 빨랐지 느리진 않았다. 


A씨의 아침 식사는 간단한 시리얼과 토스트다. A씨는 첫 출근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 어서 빨리 집을 나서야 할 것만 같았다.


A씨는 식사를 마치고 곧장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을 나서기 전 아내와 작별인사를 했다. 늘 하던 그대로 가벼운 포옹과 함께 인사를 나눴다. A씨의 가슴으로 따스한 아내의 체온이 느껴졌다.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A씨의 아내는 작별인사를 마친 A씨가 집을 나서자마자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청소부터 하기로 했다. 전업주부인 A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에 할 일이 더 많았다.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장도 봐야 한다.

A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아파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발에 느껴지는 문양의 감촉으로 가야 할 길을 파악했다. 조금 느린 듯 보이지만, 정확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 나라에서는 어디든 바닥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고 여러 가지 기호와 문자로 방향과 지명을 표시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 멀리 외국에서 관광객이 이 나라를 방문할 때면, 매우 복잡한 형태와 모양을 한 바닥에 놀라곤 했다. 필요에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바닥의 문양들이 이방인의 눈엔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A씨는 그렇게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다. 버스는 정확하게 서야 할 위치에 섰다. 운전기사들은 공사현장의 안전모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 모자에는 조그만 이어셋(ear-set)과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 모자의 이름은 네비게이터로, 도로 곳곳에 설치된 센서로부터 실시간으로 신호를 받아 이어셋을 통해 교통상황 및 길을 안내하는 기능이 있었다. 더하여 도로교통 중앙관제센터와 즉각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도 있었다.


물론 네비게이터가 아무리 완벽하게 도로의 상황을 전달해준다 하더라도 도로에 오가는 차가 많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뿐인 이곳에선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나라에는 자가용이란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그 대중교통 역시 완벽하게 통제되고 제어되고 있었다. 출퇴근 시 의례 있을 법한 교통체증이라는 개념 또한 없었다.


더하여 대중교통, 특히 도로를 오가는 버스 운전기사들은 아주 까다로운 테스트와 교육기간을 거쳐 선발되었다. 맹인들의 나라에서 버스는 언제나 정확히 정해진 구간을 정확한 시간에 오고 갔다. 그런 덕분에 이 나라에선 교통체증으로 약속에 늦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나라에서 “차가 막혀서 늦었어!” 라는 말은 농담의 범주에 속한다.


역시나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도착하고, A씨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사람들로 만원사례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뿐이라 해도 출근 길 버스 안의 풍경 역시 눈을 보는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저마다 시시콜콜 수다를 떠는 이들도 있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한다. 단지 그 책이 점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주 가끔씩 일부러 하의나 상의를 입지 않은 채로 버스에 올라타는 변태들이 출몰하기도 했는데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A씨는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듣고, 내릴 채비를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날 때부터 시각을 잃은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청각이 굉장히 예민했다. 그 덕분에 이런저런 안내나 표시에 음성과 소리를 이용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안내방송과 소리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끊임없이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곤 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사람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소리만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이내 A씨가 탄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버스에서 내리고, 또 올라탔다. 앞 못 보는 맹인들뿐이지만 의례 앞을 보는 이들의 나라에서 출퇴근 시간이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밀고 밀리고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가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 해도 서로 부딪히거나 누군가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넘어지면 넘어진 이는 자연스럽게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를 도왔다. 또 어쩌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서로 앞 다투어 사과를 했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가 앞을 보지 못해 피치 못하는 태생적 불편함과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보와 배려가 사람들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었다. 물론 그 불편함과 어려움이라는 것도 이들에게 문자 그대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뿌리내린 아주 당연한 행동양식이자 예의인 것이다.


A씨는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회사가 위치한 건물에 도착한 A씨는 경비원과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자신에게 배정된 사무실을 향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A씨가 회사에 도착해 사무실로 가는 모든 과정들, 그 모습은 멀쩡히 앞을 보는 이들의 그것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바닥의 촉감과 들려오는 소리들은 전혀 모자람이 없는 충분한 정보였다.사무실에 도착하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A씨는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A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인사를 할 때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아 A씨- 일찍 오셨네요. 좋은 아침~”


일찌감치 와 있던 팀장은 A씨를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A씨가 자리를 잡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출근했다.


팀장이 새로 출근하게 된 A씨를 앞쪽으로 나오게 해 정식으로 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소개를 해주고 난 뒤에 A씨를 자신의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A씨가 일하게 된 곳은 조그만 회계사무소였다.


A씨는 그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하던 일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팀장은 업무에 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필수적인 사항들을 알려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A씨가 새로이 이직한 회사에서의 첫 일과가 시작됐다.


A씨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컴퓨터의 키보드 역시 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들 역시 소리로 모든 기능을 안내하고, 음성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컴퓨터의 전원을 키면 켜졌다는 알림이 나오며 고유패스워드를 입력, 로그인이 되면 또 로그인을 알리는 소리가 나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실행시킨 뒤 작업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컴퓨터를 다루는데 미숙했던 A씨지만 처음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을 뿐, 익숙해지니 아주 편해졌다.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다뤘다.

A씨는 첫 출근이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가 꽤 많았다. 생각보다 퇴근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A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뭐하고 있었어?"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요. 이제 장보러 가야죠. 웬일이에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거짓말."

"하하 정말이야. 그런데 나 오늘 조금 늦을 것 같은데. 미안해.”

“아녜요. 일이 많은가 봐요? 당신 올 때 까지 기다릴게요. 많이 늦어요?”

“아니 많이는 아닐 거야. 최대한 빨리 마치고 갈게.”

“네. 저녁 해둘게요. 천천히 오세요.”

“그래.”


A씨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마쳤다. A씨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아직 아이는 없었지만, 여전히 신혼과 같은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A씨는 특이하게도 외할머니의 소개를 통해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따지고 들자면 꽤 복잡한 관계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A씨의 아내는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조카딸의 친구였다. 


어쨌거나 A씨는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느낌이 좋았다. 말이 통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해두지만,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맹인이다. 서로를 보지 못한다. 첫눈에 반하거나 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외모는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는데 있어 그리 중요한 요건이 아니다. 물론 좋은 목소리는 꽤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허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잦은 만남과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부딪히진 않는지 등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소개를 받을 때도 마음씨는 착한지, 성격은 어떤지, 서로의 취미나 취향이 중요했다. 이 나라에선 누군가를 소개를 받게 되면 의례히 그런 것들부터 파악하곤 한다.


물론 직업이나 돈벌이 같은 조건을 따지는 사람도 있다지만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교감, 많은 대화를 통해 상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호감이 필수적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사랑에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A씨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인가의 만남, A씨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대화를 잘 이끌어주고, 잘 웃어주는 아내에게 푹 빠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A씨는 1년간의 교제 끝에 청혼을 했고,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는 언제나 선량하고, 순종적이었다. 집안 살림이나 요리도 능숙한 편이었다. A씨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A씨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었던 터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A씨는 업무를 마치고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그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A씨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A씨가 부지런히 일을 한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좀 늦긴 했지만 함께 저녁식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A씨는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곧 들어간다고 전했다. 아내는 밝은 목소리로 저녁을 준비해놓고 있겠다고 답했다.


A씨는 아직 남아있는 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버스는 역시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왔고, 보통 퇴근시간대보다 좀 늦은 시간인지 자리가 비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퇴근하는 것도 출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과정이었다.


A씨는 그렇게 집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눌렀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A씨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A씨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이게 무슨 냄새야?”

“오랜만에 고기를 좀 삶았어요.”

“그래? 서둘러야겠는데?”

“배고프죠?”

“응. 많이.”


A씨는 아내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는, 화장실로 가 몸을 씻었다. 그동안 아내는 저녁식사 준비를 마무리 했고, A씨가 나오자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집안은 아주 어두웠다. 하지만 A씨 부부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행동했다. A씨 부부뿐만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주 미세한 불빛만으로 생활했다. 모두 맹인들이지만 불빛 앞에서 움직이는 희미한 형체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형체를 감별하기 위한 최소한의 불을 밝혀두는 것이다. 그것이 이들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이 되면 새카맣게 어두워지는 맹인들의 나라지만 치안은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세계 어딜 가도 이보다 안전한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이들 뿐이다. 애당초 몰래 무언가를 훔치거나 강도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느니 차라리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수월하기 때문에 범죄가 거의 없었다.


어쩌다 일어나는 범죄는 이 나라에 가끔씩 들어오는 맹인 아닌 관광객들에 의한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만 있으니 아주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곤 했는데 덕분에 안 그래도 고립된 섬나라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현재는 자급자족하는 경제 시스템과 그들만의 질서와 규범이 있는 사회가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외국인이 이 나라의 관광비자라도 얻으려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따라야만 했다.


아무튼 A씨는 아내와 풍족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귀를 즐겁게 해주는 라디오는 여가를 즐기는 좋은 수단이었다. 마침 A씨의 아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드라마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편안히 소파에 반쯤 누워 라디오를 듣다보니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A씨는 내일도 일찍 출근할 것을 생각해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A씨 부부는 라디오를 끄고, 침실로 갔다. A씨는 보통 자기 전엔 아내와 마주보고 누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한참을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잠이 들곤 했다.


부부도 연인과 마찬가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교감하는 일 따위가 없는 대신 많은 대화를 통해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A씨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잠이 들었고, 하루를 마감했다.


A씨의 하루에서 보듯, 이들의 일상생활은 앞을 보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맹인이며 날 때부터 시작되는 장애이기 때문에 장애라고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과 학자들의 숙원은 앞을 보는 자들의 나라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는 맹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개안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도 외국과의 교류는 있었고, 시각으로 앞을 본다는 것의 의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눈을 뜨고 본다는 것. 그것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상상 속에 있는 세계는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했기 때문에 그런 세계를 청각이 아닌 시각을 통해 실제로 보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과 행복을 줄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2.

맹인들이 사는 나라의 의학자들은 앞을 볼 수 없는 자신들이 가진 유전형질에 주목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역사적인 그날이 왔다.


이 나라의 맹인 의학자가 아닌 먼 나라에서 이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 온, 앞을 볼 수 있는 한 저명한 의학자가 이들이 가진 공통된 유전형질과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치료약을 개발한 것이다.


치료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겠지만, 치료약의 사용과 작용은 매우 간단하고 빨랐다. 치료약을 먹고 반나절만 잠이 들었다 깨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마침내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맹인들의 나라의 대통령이 제일 먼저 앞장서서 치료약을 먹고, 개안을 했다. 그는 약을 먹고 잠든 다음날 아침, 난생 처음으로 밝게 떠 있는 하늘의 태양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그 눈부시도록 밝은 빛과 반사가 시각에 선사하는 도시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은 당장에 자신이 직접 경험한 기적과 환희에 대해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내 나라 곳곳에 치료약을 만드는 커다란 공장이 만들어졌다. 공장을 밤낮으로 가동했지만 엄청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약은 매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개안을 하여 세상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 짧은 시간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이 나라 인구의 절반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헌데 조금씩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맹인들에 의한 절도와 강도 따위의 강력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발생한 적 없는 범죄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빈곤해 약을 사지 못하는 이들이 약을 훔치고 빼앗기 위해 절도 혹은 강도를 하게 된 것이다. 늘 한가하기만 했던 경찰들이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앞을 볼 수 있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만큼, 그들을 위한 시설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대중교통 이외의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주장하는 개안한 자들 때문에 자동차가 등장했다. 또 밤은 전보다 훨씬 밝아야했다. 더 많은 빛이 필요했다. 빛을 생산하기 위한 전기의 소모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또 이제는 청각보다 시각이 우선이 돼버린 이들은 자신들에게 많은 것들을 전달해 주던 소리가 이내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국민의 반수를 넘어서기 시작한 개안한 사람들은 소리를 줄여주거나 없애주길 원했다.


우후죽순 벌어지는 이러한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 돈을 버는 것은 치료약의 특허를 가진 외국계 제약회사뿐이었다.


결국 조금씩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람들의 생활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정신과 상담을 요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정신과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이 나라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우울증과 불면증을 호소하던 한 환자가 자살하는 일까지 생겨 버렸다.


3. 

이런 상황에서 A씨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진다.


A씨는 예약이 많이 밀려있어 아주 늦게야 치료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먹을 치료약을 사느라 노후를 위해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절반이나 쓰게 됐지만, 개안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더욱 컸다.


A씨도 대통령이 연설해서 말했던 것과 같은 태양의 눈부신 광휘가 밝게 비추는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말이다. A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와 함께 치료약을 나누어 먹었다.


“이제 내일부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을 거야.”

“그래요.”


A씨 부부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부푼 맘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창틀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잠에서 깬 A씨가 받은 충격과 벅찬 감동은 단순한 몇 마디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그건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A씨는 약을 먹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뒤, 그 역시 최근 맹인들의 나라에 폭증하고 있다는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며 정신과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A씨는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A씨는 상담 중, 의사에게 치료약의 효능을 없애 다시 눈이 멀게 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의사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말했으며 이 나라는 이제 눈이 먼 사람들의 숫자가 눈뜬 자들보다 소수이기 때문에 앞으론 맹인으로 살아가기가 매우 불편해질 것이라 말했다.


A씨는 낙심했다.


다음은 A씨가 의사에게 상담한 내용 중 일부이다.


“선생님. 보시다시피 전 아주 대머리는 아닙니다만 제 머리숱이 이렇게까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거울을 보기가 겁나고, 흉해서 요즘엔 가발을 쓰고 다닙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 가발 사업이 새롭게 뜨고 있다더라고요. 외모에 신경이 쓰인다는 말 따위, 전엔 몰랐습니다. 그런데 눈을 뜬 뒤로는 보기 싫어도 항상 내 얼굴이 보입니다. 또 나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 겉모습에 신경 쓰게 됐습니다. 남들이 날 보고 뭐라 할까 걱정됩니다. 그게 너무 큰 스트레스 입니다. 제 피부는 또 왜 이런 지. 훅 불면 먼지라도 날 것처럼 푸석푸석한 것이 영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이마와 턱엔 여드름도 많이 나서 최근엔 피부과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제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도 많이 들어 보이더군요. 전 지금까지 나름 젊고 활기찬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제 외모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했나 봅니다. 아니 확신했었어요. 눈을 뜨고 나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요. 겉모습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니 미처 몰랐어요. 아니 이제 알게 된 것일까요? 과연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마 없을 거라고 봅니다. 직장 생활도 힘들어 졌습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 차가 왜 그리 막히는지. 이젠 늘 지각을 걱정해야합니다. 잠도 덜 자야하고 시간에 더 쫓겨야 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해 해야 합니다. 왜들 자가용을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을 보게 되어 무언가 쉬워지고 편해진다는 것에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물론 언젠가 다들 적응하고 또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으로썬 힘들 뿐입니다. 회사 사람 대부분이 앞을 보게 된 뒤로 외국에서 들어온 프로그램을 쓰게 되었는데 그게 좀 어렵더군요. 왜 그렇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기능들이 많은지 오히려 업무속도가 느려졌어요. 또 이상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요즘엔 다들 인사도 잘 안합니다. 어색하다랄까요? 뭐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들도 그대로고 하는 일도 그대로인데 고작 앞을 보게 된 것 뿐이잖아요? 눈을 뜨고 서로의 겉모습을 보게 되었을 뿐인데 왜 뒤에서 남의 얘기를 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될까요? 직장동료들이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뭐 그래요. 다 좋습니다. 다 참아내고 버틸 수 있습니다. 언젠간 적응되겠지요. 그런데 제가 요즘 너무도 우울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은 제 아내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착하고 좋은 여자에요.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는 그런 여자입니다. 제 이상형이라 할만 했죠.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정말이지......... 못생겼더군요....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이야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처음 보자마자 느낀 건, 뭐랄까?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작고 귀여운 눈, 동그란 코, 도톰한 입술이 아니더군요. 쭉 찢어진 눈과 들창코, 보기 흉하게 두꺼운 입술....... 눈을 뜨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예전 앞을 보지 못하던 그 시절엔 아내가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보였거든요. 아 제 말이 이상한가요? 물론 정말로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고 할 수 있는 건 지금이지만, 글쎄요 그때도 분명히 제 기억 속에 아내의 모습은 남아있고 정말 아름다웠던 것도 기억나요. 그냥 눈을 꼭 감고 있으면 아내의 목소리, 나긋한 말투 모두 그대로이긴 한데...... 혼란스러워요. 무엇이 진짜인지....... 어쨌거나 지금 보이는 그 추한 모습은 제게 그녀를 이전과 다르게 대하게 해요. 집에도 들어가기 싫어졌어요. 전처럼 그녀와 한 침대에 누워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만큼이나 그녀를 보는 것이 싫습니다........ 예전엔 그녀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고 설레었습니다. 지금은 아내를 생각하면 그 못생긴 얼굴만 떠오릅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냅니다. 분명 제게 문제가 있는 것이 맞는 거겠죠? 그런데 저도 힘듭니다. 가만히 그러고 있다 보면 그저 우울하고 침울할 뿐입니다.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건 억지로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저는 맹인으로 살 때의 상상 속 세계와 진짜 현실 사이에서 그저 괴로워할 뿐이겠지요. 눈을 뜨고 다른 누군가를 본다는 것. 마찬가지로 눈을 뜬 다른 이들에게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 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전혀 몰랐어요.


선생님......... 과연 눈으로 보는 것이 진정 본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우리가 가진 수많은 감각기관 중 시각을 통해 보는 것만이 보는 것인가요? 이게, 정상인 건가요? 아마 그렇겠죠? 눈을 뜬 첫 날 아침햇살을 보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행복한 적이 없어요.”  


의사는 A씨에게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를 처방해주고, 일주일에 한번은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 A씨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답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실상 A씨의 아내야말로 눈을 뜨고 난 뒤, 자신의 외모에 크게 실망했다. A씨의 달라진 모습과 그 이유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A씨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A씨의 눈을 피하느라 주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다. A씨로선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다.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전처럼 다정하게 대하기는 더 어려웠다. 마냥 다른 사람 같기만 한 사람을 어찌 전과 같이 대하겠는가? 예전과 달리 집안엔 항상 어색하고 딱딱한, 무거운 분위기 속 정적만이 감돌뿐이었다.


A씨가 정신과에서 첫 상담을 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 


이 나라에서 발생한 두 번째 자살자가 되었다.


눈먼 사람들만 모여 살던 맹인들의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의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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