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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Oct 12. 2016

거인

“천성아 이러면 안 돼. 알겠어?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왜? 그러면 안 되는데?”


천성이 잘려나간 길고양이의 머리를 들고 들어온 것이 이것으로 세 번째였다. 처음엔 정말이지 너무 놀라 기절할 뻔 했다. 두 번째는 크게 야단을 쳤다. 물론 때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게 세 번째다. 이런 행위를 세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치기어린 장난이나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 내가 묻자. 넌 왜 그래야 하는데? 고양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아니.”

“그런데 왜 그래?”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다고?”

“응! 응!”


천성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우선 고양이를 쫓는 게 재미있어. 꽤 빨라. 다른 아이들은 나처럼 못 잡아. 나처럼 빠르지 않거든. 그리고 잡고 나면 막 달려드는데 발로차고 바닥에 내리치면 금세 조용해져 그게 재미있어. 상대도 안 되는데 계속 달려드는 것도 웃겨.”

“그럼 목은. 목은 왜 자르는 건데?”

“그냥 느낌이 좋아.”


천성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떤 느낌이 좋은데?”

“그냥 칼을 목에다 대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아. 그때 손바닥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거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참담한 심경이었다.


"천성아."

"응?"

"너보다 크고 힘이 센 거인이 널 쫓아와서 널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목을 자르면 어떨 것 같아?"


천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싫은데? 아프잖아.“


나는 얼른 대답했다.


"그래! 그거야! 얼마나 고양이가 싫고 아프겠어?"


천성이 눈을 찡긋하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오싹했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건 고양이 얘기잖아."

"뭐?"

"내 얘기가 아니잖아. 내가 당하는 게 아니잖아. 나랑 상관없는 얘기야."

"아니 천성아......."

"아빠는 진짜 바보네. 거기다 그런 거인은 있지도 않잖아? 그리고 만약 진짜 그런 게 있어도 난 도망칠 거야. 저렇게 멍청하게 잡히지도 않을 거야. 그럼 대체 뭐가 문젠데?"


쫙!


나는 나도 모르게 천성의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하고 뺨을 후려쳤다. 솔직히 화가 나거나, 괘씸해서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치솟은 강렬한 충동 탓이었다. 그건 분노보단 혐오에 가까웠다.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곤 때려죽이는 것처럼.


천성이 뺨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전형적인 아이의 표정이었다. 보호를 요청하고, 이해를 구하는, 본연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표정 말이다.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적절한 훈계를 시작했다.


"바로 그게 문제야! 그런 네 생각! 너만 아니면 된다는 그 생각! 그게 문제야! 그게 바로 네가 말하는 바보들이나 하는 생각이야! 잘못된 생각이라고!"


천성은 눈시울이 눈에 띄게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아무 답도 않고 눈물을 참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더 때릴 수는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조금 진정을 한 뒤 다시 말했다.


"천성아. 절대......... 절대로..........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안 돼."


천성은 대답은 안하고 그저 얻어맞은 뺨을 감싸 쥐고 날 원망스레 노려볼 뿐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이 아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도 살의의 본성이 강렬하게 들끓는 최악의 사이코패스 말이다. 때로 살의가 아닌 가책 없는 도벽 따위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데 나는 천성을 지켜보며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성이 어릴 적 길 가던 개미들을 밟아 죽이고, 잠자리를 손으로 비벼 가루로 만들던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홀로 마을을 배회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이제 조금씩 천성에게 내재된 본성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는 다른 동물들로부터, 아이들로부터, 생명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지금은 고양이의 목을 자르지만, 나중엔 뭘 자를지 모른다. 허나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여덟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강한 훈육을 통해 조금은 그런 본성을 바꾸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어쩌다 저런 아이가 태어났을까? 아내는 천성을 낳고 죽었다. 천성은 이미 태어날 때 제 어미를 죽게 했다. 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는 너무도 선하고 순수한 그런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착하기만 한 아내가 보기 안쓰러워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다. 지켜주고 싶었다. 검댕과도 같은 이기와 악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사회에서 하얀 백지 같은 아내를 격리하고 싶었다.


그런 아내에게서 전혀 다른 의미에서 격리하고픈 그런 아이가 나오다니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아내만큼 마냥 착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합의, 질서, 법규 정도는 불편하지 않게 준수하며 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왜? 천성은 저토록 뚜렷한 악의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단색이었던 아내의 마냥 선했던 내면의 반작용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일까? 일찌감치 계몽되지 않았다면 저만큼이나 끔찍했을 악의가 나의 내면에 잠재돼 있을까? 그것을 이어받은 것일까?


“아빠?”


천성이 입을 열었다.


"으응........“

“알겠어.”

"응 뭘?"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 됐지?"


천성은 이제 좀 진정이 됐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풀려 딱딱하게 굳은 뺨을 움직이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빠가 부탁할게."


나는 통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애써 천성을 꼭 안아주었다. 천성은 평소처럼 내게 꼭 안겼다. 마침 천성의 어깨너머로 잘린 고양이 머리가 보였지만, 나는 더 힘주어 천성을 끌어안았다. 천성에게 속삭였다.


“넌 이겨낼 수 있어. 잘못된 일이 뭔지 아빠가 하나하나 처음부터 알려줄게.”

“응 아빠.”


천성의 목소리는 냉랭하게 들려왔지만, 나는 내게 얌전히 안겨 있는 천성에게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조금 더 노력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가 나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모아둔 돈은 꽤 있었다. 한동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었다. 저축의 목적이야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내 집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천성이 더 중요했다.


일은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고, 나중에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한들 욕심만 버리면 뭐든 해서 먹고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천성을 바꿔보는 것이었다. 나는 천성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사이코패스 혹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관련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일기를 작성했다. 더하여 천성과 많은 대화를 시도하면서 천성의 원초적인 욕구에 대해 파악하고 유효한 대처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나는 아직 어린 아이인지라 섣부른 정신과 상담은 되레 아이에게 치료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병리학적 치료를 직접 시도하려 한 것이다. 더하여 당시의 솔직한 심경을 밝히자면 전문정신과 상담을 통해 혹여 아이가 파괴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유형으로 확진이 내려지고, 격리 외에 다른 치료법은 없다는 등의 절망적인 진단이 내려질까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천성이 진정 반사회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면 가장 큰 문제는 공감의 능력이다. 천성에게 희로애락의 감정과 고통과 쾌락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확립해주고 싶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쉽게 체득하게 되는 속성이지만, 어쨌거나 천성은 공감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애를 쓴 것은 아버지로서 천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천성과 함께 학교에 등교하고, 낮에는 근처에서 공부를 했으며 천성과 함께 하교했다. 주말이면 천성과 함께 산이며 바다며 여행을 했다. 많은 이들을 만나게 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에서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생명들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물 나아가 식물조차 숱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고통의 반응들을 알려주고 그러한 고통 자체가 보편적 악이며 그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했다.


정말 나의 그런 노력 덕분인지, 그저 내가 늘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의식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천성은 더 이상 잘린 짐승의 목을 가져오거나 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미약하나마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욱 열성적으로 천성에게 매달렸다. 나는 천성이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천성도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몇 번인가 예의 냉소적 표정과 말로 불만을 토로했으나 나중엔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천성은 점점 더 보통의 아이들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천성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나는 다시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천성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천성의 진짜 이성이 고개를 쳐들었을 사춘기, 천성은 친구들과 몇 번 싸움을 벌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 보였던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행위를 하진 않았다. 가시적인 신체적 변화와 함께 사춘기를 거치며 조금 과묵해졌으나 천성은 분명 바른 길로 가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 천성이 보인 일련의 잔인한 행동과 무심한 말들이 실상 그의 본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한시적인 혹은 일시적인 일탈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가 그 원인일 수 있었다. 어쨌든 막 고등학생이 된 천성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더 이상 비정상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사회 속에 융합할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됐다.


수많은 인간집단을 이념이나 사상으로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사회개조의 발상은 분명 위험하고 오만한 발상이다. 그러나 나는 한 인간을, 아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는 것만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생활은 점차 정상의 궤도에 올랐고, 천성도 그랬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특유의 인상과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그뿐 보통사람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실상 예전부터 천성은 심각했던 그 인격적 문제만 아니었다면 전혀 신경 쓸 것 없는 그런 아이였다. 예전부터 돌봐주지 않아도 혼자서 뭐든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원체 똑똑한데다 운동신경도 좋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든 뭐든 항상 1등이었다.


천성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늘 우수한 학생이었다. 천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명문대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장학금을 타면서 학교를 다녔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조금 늦어졌지만 천성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집을 마련하는 데도 성공했다. 천성은 대학을 졸업한 뒤 곧장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는데 처음부터 연봉이 엄청났다. 이제 천성은 나보다 돈을 더 잘 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아직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천성은 독립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몸은 허약해지고, 적적함만 늘어 가는데 곧 퇴직까지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늘 함께였던 천성이 곁에 없다면 홀로 되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천성은 내 전부였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내심 천성에게 쏟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함께 해주길 바랐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손자를 볼 때까지도 말이다.


이 날은 나도 천성도 일찌감치 귀가를 했다. 천성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무래도 뭔가 중요한 얘기라도 꺼낼 것 같았다. 독립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길 기대하며, 나는 천성이 먼저 입을 열지 못하도록 관심도 없는 가십거리를 주구장창 늘어놨다.


천성은 끝내 독립하겠다는 말은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다행이라 여겼지만 이대로는 아무래도 얼마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혹여 천성이 마음이 변해 그런 말을 꺼낼까 겁나 일찌감치 방으로 가서 누웠다. 어서 빨리 잠이나 자려는 심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추해진다더니 바로 이런 모습도 그런 추한 모습에 해당하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얼른 잠을 재촉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불면증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꿈을 꿨다. 나는 허허벌판 위에 서 있었다. 서늘한 느낌에 목을 만져보니, 얇은 철사 줄이 내 목에 걸려있었다. 뭘까? 하는 순간 무언가 철사 줄을 강하게 당겼다. 나는 위로 확 끌려올라가 허공에 대롱대롱 목이 매달렸다.


"헉!"


가쁜 숨을 뱉으며 나는 눈을 떴다. 꿈의 여파일까? 서늘한 느낌이 목을 통해 전해졌다. 이상했다. 도통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두꺼운 테이프와 노끈 따위로 몸이 단단히 결박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둑?


누군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나는 금세 그게 누군지 알아챘다.

아들을 몰라보겠는가?


"천성이........?"

"응 아빠."

"뭐야?"


나는 천성이 손에 길고 얄팍한 줄톱을 쥐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목이 서늘한 이유가 꿈의 여파가 아닌 차가운 철제 줄톱이 닿아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게......... 대체.........."


아찔했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천성의 파괴적 본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대체 이제 와서 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천성아 왜 이래?"

"응? 글쎄 그냥 이러고 싶으니까."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천성아! 이제 괜찮잖아? 그동안 우리의 노력, 시간들 다 잊었어? 갑자기 왜 이래?"


나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천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뭐 어쩌라고? 그딴 거. 어쨌든 맞아 재미있었어. 그랬던 때도 있었어. 그런데 그동안 내가 내 속에서 들끓는 뭐든 살아있는 걸 두들겨 패고 싶은 욕구, 대가리를 자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건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웠어! 아빠가 그걸 알아? 아빠가 나만큼 오래 뭔가를 참고 견뎌봤어!??? 그 누구도 나만큼 참지 못할 거야! 난 참을 만큼 참았다고!!! 결정적으로 아빠가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그냥 필요 없어. 이제 아빠는 내게 필요 없는 존재야. 거기다 아빠는 더 이상 거인도 아니야. 그래 맞아. 그게 문제야."

"뭐? 거인?"

"기억 안나? 아빤 기억력도 안 좋구나? 아빠한테 따귀를 맞았을 때 그때 아빠가 거인 어쩌고 했었잖아? 그래 아빠 말이 맞았어. 뺨을 얻어맞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 날 붙잡고, 날 내동댕이치고 대가리를 썰어버릴 수 있는 거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게 바로 아빠였어. 아빤 모르겠지만 그날 밤, 그러기 전에 먼저 내가 대가리를 자르러 아빠 방에 갔었어. 그런데 막상 그러려니까 아빠가 없어지면 난 당장 맛있는 것도 못 사먹고, 다른 애들이 아빠가 없다고 놀릴 것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방을 나왔어. 그리고 아빠 목을 자르는 건 포기했어. 아니 잠깐 보류하기로 했어. 그런데 이제 때가 온 것뿐이야."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천성아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그만 둬. 이런 장난은 그러니까.......”

"장난이라니?"


천성은 목에 닿아있던 줄톱을 거침없이 아래쪽으로 스윽 그었다. 목에서 피가 배어나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톱이 지나간 부위가 쓰라려왔다.


"아빠 그냥 받아들여. 난 이제 아빠 없이도 살 수 있어. 아빠보다 힘도 더 세다고! 아빠가 내 옆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곧 퇴직도 한다면서? 보류는 끝났어,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게 제일 깔끔한 거 같아."


말을 내뱉는 내내 천성의 눈은 노골적인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거기엔 패륜과 살인에 대한 어떠한 망설임이나 가책도 없었다. 오로지 추악한 쾌락에 대한 기대와 불경한 흥분으로 그득했다. 차가운 줄톱이 내 목에 다시 와 닿았다.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천성은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걱정 마. 나를 내동댕이칠 수 있는 거인이 아빠 말고도 있어. 기업이라는 곳이 그래. 사회란 곳이 그래. 촘촘히 엮인 그물처럼 날 속박하고 있어. 그 그물을 내 힘으로 찢어발길 수 있을 때까진 최대한 조용히 지금처럼 살게. 지금까지도 참았는데 그걸 못 참겠어? 아빠가 어릴 적 내게 했던 이야기들, 노력들이 다 부질없는 건 아니야. 덕분에 나는 이 사회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으려면 내 욕구를 억누르는 게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는 거잖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발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 꼭 뭘 죽이지 않아도 말이야.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이거야. 그것만은 확실해."


천성은 계속 끔찍한 고백을 이어갔지만, 나는 말대답을 할 수도 더 이상 들을 수도 없었다.


천성의 손에 들린 줄톱이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친 쾌락과 고통의 신음이 나와 천성의 입가에서 합창하듯 동시에 새어나왔다.


나의 모가지는 순식간에 몸통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그러고도 의식이 남아 잘려나간 내 목의 단면이 보였다. 점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성이 재미삼아 죽여 버린 벌레들이,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천성을 바꿔놓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천성의 내면에 깊게 각인된 본성은 절대로 변치 않는, 잔인하고 집요한 진리의 서판과도 같았다. 그걸 바꾸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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