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는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반군 그것도 그냥 반군이 아닌, 탈영병을 맞닥뜨렸다. 그냥 반군을 만날 경우엔 둘 중 하나다. 끌려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고 소년병이 되어 싸우다 죽던가, 혹은 바로 죽던가. 하지만 반군 탈영병을 만날 경우에 선택지는 하나다. 죽는 거다. 물론 소년병이 될 바에야 죽는 게 낫다는 말도 있다.
다만 탈영병들에겐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가까운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겠다는 목적 말이다. 이들은 톰보를 안내원으로 삼아 톰보의 마을, 톰보의 집을 첫 목적지로 삼은 것이다.
톰보는 강 건너 숲에서 놀지 말라 당부하던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해가 거의 기울 무렵까지 숲을 빠져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일찌감치 돌아갔는데, 톰보는 끝까지 남아 새끼 원숭이의 뒤를 쫓다가 그만 탈영병에게 붙들려 이런 지경이 됐다.
이 나라에 내전이 일어난 지도 벌써 2년이다. 정부군은 반군을 집요하게 압박해갔고 반군은 쫓기고 쫓겨 이 나라의 최남단 소수 부족민들이 거주하는 척박한 곳까지 밀려난 것이다.
톰보의 부족은 아직도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몇 안 되는 부족이다. 여전히 하늘과 땅, 자연의 신들을 모시고 주술사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가끔 종교적 갈등도 있었지만, 나름의 평화를 구가하며 여태 잘 살고 있었는데 반군이 남하하면서 그런 평화도 깨어졌다.
반군들은 약 1년 전, 강 건너 숲 속 깊숙한 곳에 본거지를 만들었다. 이따금씩 야음을 틈타 마을로 침입해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납치했다. 뒤늦게 정부군이 반군의 본거지를 기습해 토벌작전을 벌였다. 허나 완전히 말살하진 못했다. 군소조직이 여전히 숲 속에 머무르며 세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때문에 전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아주 가끔 반군 무리가 나타나 부족민들을 납치하거나 약탈을 할 때가 있었다.
물론 최악은 톰보를 붙잡은 것과 같은 탈영병이다. 그들은 정부군에도 반군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들이 총과 잔인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은 눈 한 번 깜짝이는 것보다 쉽다.
탈영병은 모두 세 명이었다. 두 명이 톰보의 양 옆에 섰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뒤를 따랐다.
반군에서 추격대가 붙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확 트인 다리 위가 아닌 다리 밑으로 내려가 강을 건넜다. 톰보는 이미 흠씬 두들겨 맞아 양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눈두덩이 부어올라있었고, 코와 입에선 찐득한 핏물이 맺혀 있었다.
톰보는 절뚝이며 걸었고, 양 옆에선 탈영병이 연신 톰보의 어깨를 밀치고, 뒤통수를 때려댔다.
우기가 한참 지난지라 강은 그리 깊지 않았지만 중간쯤 가자 강물이 넘실대며 아직 키가 다 자라지 않은 톰보의 목을 넘어, 입술과 코를 건드려댔다.
톰보의 입술과 코에서 흐르는 피가 강물에 씻겨 물밑으로 흩어졌다. 톰보가 퍼뜩 놀란 얼굴로 퉁퉁 부운 입술을 들썩였다.
"위..... 위험해."
톰보의 목소리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뭐?"
곁에 선 탈영병 하나가 답했다.
"위험해요. 빠...... 빨리...... 강에서 나가야 해요."
톰보가 연신 하늘을 살피며 말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저한테서 피가 났잖아요. 제 피가 강물에 흩어졌어요."
"그래서? 불만이냐?"
"그것이 피 냄새를 맡아요."
"뭔 소리야?"
“우구카바델레.......”
“뭐?”
“우구카바델레가 나타나요. 어서 강에서 나가야..........!”
“너희 부족은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고 있나? 이 망할 국가는 이래서 혁명이 필요하다는 거다. 물론 기독교도 답은 아니지.”
톰보가 고개를 저었다.
“미신이 아니에요! 아저씨들은 이런 노래 들어본 적 없어요? 검은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세상이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길 때 강의 괴물 우구카바델레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구카바델레가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먹고, 강물을 마시는 시간이다. 인간들이여 강가에 오지 말지어다. 우구카바델레는 인간의 살점과 물고기의 살점, 인간의 피와 강물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노래......!”
퍽!
톰보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첨벙!
톰보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강물 속을 허우적거렸다. 뒤에 서 있던 녀석이 개머리판으로 톰보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기절시킬 생각으로 때린 건 아니었다. 그저 톰보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톰보는 이내 뒤통수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이 만져졌다. 톰보를 때린 탈영병이 톰보의 등을 총구로 쿡쿡 찔러댔다.
“지금 그딴 한가한 소릴 할 때가 아니야. 멍청한 놈아.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난 말이야. 지금 네 놈이 사는 마을, 네놈의 집으로 갈 거야. 네 아비를 두들겨 팬 뒤에 목매달아 죽이고, 네놈 어미를 강간한 다음 목을 벨 거야. 네놈이 두려워해야 하는 건 우구카바데인지 뭔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란 말이야. 알아들었냐? 그러니까 닥치고 빨리 걷기나 해.”
“하....... 하지만."
철컥.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만 톰보도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의 괴물 우구카바델레는 미신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르고 있다. 우구카바델레가 실제로 바로 얼마 전, 빨래터의 아낙을 둘, 강에서 멱을 감던 아이를 셋이나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낙 하나는 다리 한쪽만, 또 하나는 잘린 손목만 발견됐다. 아이들은 잘려나간 팔만 둥둥 떠다녔다.
톰보는 그걸 말해주고 싶었는데, 한마디만 더 했다간 당장에 총을 쏴버릴 것 같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날은 우구카바델레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제 강물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서 빨리 강을 나가면 될 터였다.
허나 강을 나가서도 문제다. 이들은 순순히 집으로 안내한다면 십중팔구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을 것이다. 첩첩산중이었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문득 톰보의 부은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때였다.
톰보는 막 자신의 발목을 휘감아오는 매우 이질적인 물살의 흐름과 강바닥에서 솟아오른 모래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톰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차가운 한기에 더해진 살기 따위를 느꼈다. 비단 강물이 차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톰보는 분명히 느꼈다. 자신과 탈영병들과 모래와 바위와 물고기 외에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강바닥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둔중하면서도, 민첩하고 기민하게..........
톰보는 얻어맞을 것을 알면서도 또 입을 열었다.
“우구카바델레...........”
뒤쪽에서 따르던 우두머리가 짜증이 난다는 듯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재차 톰보의 뒤통수를 후려치려고 한껏 총을 치켜든 순간, 우두머리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우두머리가 갑자기 총구를 아래로 향하더니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톰보는 우두머리가 강바닥에 빨려 들어가자마자 미친 듯이 손발을 허우적대며 앞으로 내달렸다.
"우구카바델레! 우구카바델레! 우구카바델레!"
톰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빠른 속도로 물살을 헤치며 뭍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톰보의 뒤로 콩 볶는 듯 시끄러운 총소리가 멈추었다. 연신 물을 첨벙 대는 소리, 쫙쫙 물살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찢어지는 비명소리만 들려왔다.
강물은 이제 톰보의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톰보는 마지막 힘을 냈다. 톰보는 겨우 강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톰보는 연신 숨을 헐떡이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퉁퉁 부은 눈을 치켜떴다.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강물의 파동이 보였다. 넘실대는 강물 위로 둥둥 떠 있는 잘려나간 탈영병들의 찢기고 조각난 신체 그리고 잘린 머리통이 보였다.
그리고........
톰보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안심한 듯 큰 숨을 내뱉었다. 강을 향해 공손히 허릴 꾸벅 수그렸다. 그리곤 냅다 뒤를 돌아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달은 검은 구름에 가려 사위는 완연한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우구카바델레는 여느 때처럼 먹이의 냄새를 맡고 사냥터로 온 것뿐이었다.
몇 개월 전쯤의 일이다.
근처에 먹이로 삼을 만한 것이 완전히 씨가 말라 사라져버렸을 때, 우구카바델레는 미세한 물살의 변화와 비릿한 피비린내를 감지했다. 굶주린 우구카바델레는 망설일 것 없이 곧장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헤엄쳐갔다.
점점 더 진해지는 피비린내는 우구카바델레의 식욕을 더욱 거세게 자극했다. 그러나 우구카바델레는 노련한 사냥꾼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둘러선 안 된다. 신중해야한다. 우구카바델레는 조심스레 강바닥으로 잠수했다. 천천히 강바닥을 훑듯이 헤엄쳐 점점 더 진해지는 피비린내를 향해 접근해갔다.
이윽고 우구카바델레는 멀찍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핏빛 안개를 발견했다. 상처 입은 물소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구카바델레는 더욱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헤엄쳤다.
사냥은 순간에 좌우된다.
우구카바델레는 발각되지 않았다. 사냥감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목표가 50센티 정도 앞까지 가까워진 순간, 우구카바델레는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가며 사냥감을 입에 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물컹한 살점에 깊게 쑤셔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빨이 단단히 고정된 걸 확신한 우구카바델레는 강인한 턱에 잔뜩 힘을 주고 몸을 회전시켜 먹이를 찢어발겼다. 허겁지겁 씹어 삼켰다.
처음 맛보는 고기였다. 언뜻 오래 전 먹었던 닭과 비슷한 맛이지만 조금 더 질겼다. 어쨌거나 식사를 마친 우구카바델레의 결론은 그 고기가 상당한 별미라는 것이었다.
우구카바델레는 새로운 고기와 피의 냄새를, 맛을 기억해뒀다. 그리고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비슷한 냄새를 맡았고, 사냥을 했다. 고기를 먹었다. 사냥감은 처음과 늘 비슷한 지점에 있었고, 일정한 주기를 두고 피비린내를 풍겨줬다.
사냥은 너무 쉬웠다. 가까이 다가가 물기만 하면 됐다. 한 번은 전혀 조심성 없이 첨벙대며 다가갔는데도 사냥감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구카바델레는 그렇게 쉬운 사냥감, 새로운 고기 맛에 서서히 중독되어 갔다.
그렇다.
우구카바델레는 그저 색다른 고기 맛에 이끌리고 중독됐을 뿐이다. 찾기 쉬운 먹이를 씹어 삼킨 것뿐이다. 본능과 생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러니 우구카바델레로서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우구카바델레를 중독 시킨 먹기 쉬운 고기가 다름 아닌 다리 위에서 반군들이 주기적으로 행하던 사형집행의 희생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그리 따지자면, 톰보를 끌고 가던 반군탈영병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