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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Apr 06. 2017

사형수

살인자 A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교수대에 오르기 한 달 전, 그는 우연한 계기로 교도소를 방문한, 현인 B를 만나고 그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B를 통해 A는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


찰나의 인간의 삶 속에 지은 죄를 죽기 전까지 진심으로 참회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살인자일지라도, 사후에 낙원에 올라 영원한 행복과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말에 A는 그렇다면 진정한 참회란 무엇인지 물었다.


B는 인내와 절제를 통한 자발적인 고통과 고뇌, 즉 고행의 길을 걷고 끊임없이 고독 속에서 사색하며 자신이 지은 죄과를 반성하라 말했다. A는 그러마고 다짐했다.


A는 식사량부터 줄였다. 물만 마시고 하루에 한 끼만 아주 조금씩 먹었다. 매일 같이 자신을 학대했다. 손톱으로 몸을 할퀴고, 벽과 바닥에 머릴 찧었다. 새벽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고뇌하며 자신의 죄, 분노, 찰나의 실수, 충동과 욕구에 관해 생각했다.


A는 날이 갈수록 말라갔고, 몸에는 흉터가 늘어갔다. 간수들도 그의 자해를 막지 못했는데, A는 간수들이 혹여 감방 안에서 죽기라도 할까봐, 말리려 할 때마다 “걱정 마십시오. 고통을 피하기 위한 자살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기 위한 고행입니다. 죽음은 오직 판결의 결과, 교수대에서만 맞게 될 겁니다.” 라고 말하곤 했다.


A는 그렇게 한 달이 지나 교수대 위에 섰다. A는 마지막 만찬도 거부했다. 목에 매듭지어진 밧줄을 두른 A는 비쩍 말라 볼품없고, 목과 얼굴 곳곳에 상처투성이였다. 허나 A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고 또렷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고행의 끝이 될 터였다. A의 눈엔 야릇한 기대감마저 서려있었다.


A의 마지막 유언을 듣기 위해, 현인 B가 참석했다. B가 A의 곁에 다가왔다. A는 B에게 자신의 지난 고행, 죄에 대한 깊은 고뇌에 대해 털어놨다. B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엄정한 사실을 말하자면 사후의 낙원 따위는 없습니다. 실제로는 당신이 지은 죄와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부당한 행위에 고통 받다 죽은 피해자와 그러한 부당함을 죽음이라는 또 다른 부당함으로 부정하는 인간집단의 정의가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죽고 화장하면 재가 될 겁니다. 그뿐입니다. 다만 당신이 제가 말한 고행을 실천했다면 적어도 당신의 주관은 나름의 속죄의식을 치른 셈이며 사후에도 그로 인한 대가가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죽음이 임박한 지금도 큰 두려움이 없을 겁니다.”


A는 B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B는 잠시 그런 A를 바라보다 B와의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를 했다. 형이 집행됐다. A가 딛고 선 발판이 사라졌다. A는 몇 번 몸을 움찔거렸을 뿐, 금세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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