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부모의 가슴엔 햇살처럼 환한 기쁨이 스며든다. 그 작은 입술로 내뱉는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서 지친 나를 일으키기도 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나며 더 많은 단어들을 다룰수록, 부모의 마음 어디엔가 미묘한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처음엔 서툰 말투와 어눌한 표현마저 귀엽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아빠 싫어", "엄마 이 집에서 나가"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나타난다. 그 순간, 부모의 마음속엔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정성과 사랑이 외면 받았다는 서운함이 깊게 자리 잡는다.
서운함이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피어나는,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빛깔을 띤 감정이다. 밤낮없이 품어온 정성과 사랑을 아이가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라지만, 아직은 미숙한 언어 속에 담긴 거친 표현들이 부모의 가슴을 아릿하게 할 때가 있다. 그 순간, 머리로는 아이의 말이 진정한 거부나 반항이 아니라 자아를 형성해가는 자연스러운 시행착오임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서운함이 쌓여간다.
얼마 전, 아내가 그런 마음을 품은 날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밖의 차가운 공기보다 더 매서운 냉기가 거실에 감돌았다. 아이는 나에게만 말을 걸고, 아내는 말없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엄마는 필요 없어”라는 한마디를 내뱉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가 잘 모르고 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방아쇠처럼 마음속에 비수를 꽂아버렸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위해 애써왔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니... 서운함이 커져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날 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상황을 이야기해보았다. “네가 아끼는 토끼 인형이 ‘이제 널 싫어해’라고 한다면 어떨까?” 묻자, 아이는 순식간에 어두워진 얼굴로 “너무 슬플 것 같아”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마음을 짚으며, 아내가 느꼈을 감정을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했다. 동시에 부모가 가르칠 책임이 있고, 당장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함부로 상처주는 말과 행동은 안 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물론 드라마처럼 단번에 아이가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고, 곧 다른 장난감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는 아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해서 미안해.” 그 말 한마디에 거대한 그림자처럼 마음을 짓누르던 서운함이 순간적으로 녹아내렸다. 나도 아내도 놀랐고,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물론 그때뿐일 수도 있다.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고, 상처와 회복의 과정은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 듣지 않는 듯한 아이는 사실 다 듣고 있었고, 자기 스스로 미안함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상처와 치유가 겹겹이 쌓이며 우리 관계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인내해야 할 때도 있고, 마음이 또다시 아플 수도 있다.
서운함이란 녀석은 그렇게 불쑥 찾아와 마음속 한 귀퉁이에 숨어 몸집을 키운다. 그러나 그 감정을 잠재우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꺼내놓는 것이다.
어딘가 숨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 솔직함은 서운함을 허물고,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렇게 상처와 치유의 반복 속에, 우리와 아이는 한 걸음씩 더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