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다.

by 쏘이파파

아빠를 무척 좋아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묘한 우쭐감이 생긴다. 평소 아이는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막상 셋이 함께 있을 땐 내게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과 내가 더 육아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리는 고궁을 가보기로 했다.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옛것을 보여준다는 게 의미있는 시간일 것 같았다. 아이는 답답한 승용차를 싫어해서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버스에서 딸의 옆자리는 내 차지였고 우리는 창밖 풍경을 보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여행을 시작했다. 역시 우리 딸은 나를 더 좋아하는게 분명하다.

우리의 모습에 아내는 살짝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이 기회에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쉬고 있었고, 그 모습이 의외로 평화로워 보여서 안심이었다.


고궁은 상당히 넓었다. 각 목적에 맞게 지어진 형태를 구경하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놀다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었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는데, 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고궁이 넓어 많이 걷기도 했을터라 피곤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딸이 ‘잠투정’을 심하게 부린다는 것이다. 낯선 공간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편이고 집에서도 1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재우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자, 어떻게든 달래보려 토닥이고 안아주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한번 재워볼까 싶어서 아이를 안고 있어봤는데 불편한지 계속 몸을 뒤척이고 짜증만 늘어나는 것 같았다.

문득 앞쪽 좌석에서는 어떤 아이가 엄마 품에 파묻힌 채 입을 벌리고 곤히 자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아무 데서나 편히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스쳤다.


bus-2844405_1280.jpg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애가 타던 그 순간, 내 눈앞에 해결사가 나타났다. 아내가 아이를 번쩍 들어 자기 품으로 옮기더니, 주변의 시선을 적당히 가려주면서 아이가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꾸는 것이었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착 감긴 아이 그리고는 5분도 되지 않아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와 .. 역시 엄마는 엄마다 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는 놀랐고, 그동안 품었던 “내가 더 육아에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평소에 쌓여온 엄마와 아이의 무한한 신뢰는 어쩌다 잠깐씩 놀아주는 아빠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가 잠든 상태로 30분도 넘는 거리를 미동도 없이 안아주는 아내, 원래 내려야 할 정류장에도 “아이가 얼마 못 잤으니 10분만 더 가자”고 말하는 그녀. 그 모습은 엄마만이 지닌 위대한 힘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빠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가진 위대함을 넘어서긴 쉽지 않으니까. 다만 우리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참을 자고 개운해진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다시 내 곁으로 왔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는 빨개진 팔과 무너진 허리를 세우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을 보니, “이제부터는 내가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은 아내가 푹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내게 주어진 소중한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 이 시간의 내 역할이 중요했다.

이 배려가 우리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것이고 서로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이도 평소의 엄마를 배려하기 위해 나에게 오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의 위대함은 아이가 더 잘 알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무조건적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