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과연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을까. 예전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속담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아무리 소중한 존재여도 눈에 들어가면 당연히 아픈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자라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지만 떠오르게 된다.
한 번은 아이가 맨발로 뛰어놀다가 무언가 잘못 밟아 발바닥을 깊이 다치고 말았다. 피가 많이 흘러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를 달래면서, 나는 겉으로 의연한 척 연기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 다친 발을 붙잡고 되뇌던 생각은 ‘정말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내 자신을 계속해서 탓하기 시작했다. 작고 연약한 발에 난 상처와 잠들 때까지 훌쩍이며 매달리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말로 다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아이의 고통을 차라리 내가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이런 마음이야말로, 내가 믿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의 단초가 되고 있었다.
사랑이란 건 결국 내가 느껴보지 못하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사랑이 떠올랐다. ‘네 자식을 낳아보면 안다’는 부모님의 말이 사실이였던 셈이다.
얼마 전 어머니와 통화할 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나를 키울 때도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었어?”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그럼,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예뻐서 행복했지”라고 대답했다.
이제서야 그 말의 의미를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쏟아지는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쉽게도 부모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진 않는다. 결국 연약한 아이들이 자라날 때 누군가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를 기반으로 성장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더욱 마음껏 퍼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한 일까지 용납하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는 너를 무조건 사랑해”라는 사실을 아낌없이 표현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사랑을 먹고 자라면서, 마음 한켠에는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는 믿음을 쌓아간다.
세상에 맞서다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믿음을 되새기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강인한 용기와 자존감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부모들만이 해줄 수 있는 일,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