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 부모들은 무엇을 할까?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자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뭔가 조금 아쉬운 그런 날이다.
그럼에도 그냥 집에있기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남들이 잘 고르지 않았을 것 같은 선택지 바로 놀이공원을 택했다. 언젠가 이서진이 놀이공원은 겨울에 가야한다는 철학을 밝히기도 했었다. 추위만 참으면 줄서지 않고 다양한 놀이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추위가 문제기에 너무 추우면 돌아올 생각으로 출발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고 의외로 햇빛이 좋아 낮에 돌아다녀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
우리를 동심으로 데려가는 그 음악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즐거운 비명소리, 다양한 기구들이 움직이며 내는 기계음마저도 철저히 이곳이 놀이동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이는 기대감이 조금 컸다. 물론 지금도 98CM 이긴 하지만 지난 번에는 더 작았기에 100CM 가 되야 탈 수 있는 기구들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용 범퍼카에 줄을 섰는데 아주 애매하게 키높이에서 걸리는 듯 했다. 직원이 고민하고 있는 찰나 혹시나 거부당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어린 눈빛을 발견했나보다. 키높이 기구를 아주 미세하게 기울여 주시더니 통과되었다며 들여보내주셨다. 입안 가득 행복이 퍼지는 아이를 보며 부모들은 안전을 신신당부한다.
처음 탑승하는 범퍼카는 원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른 차량들과 부딪혀야 제맛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아이는 제자리만 빙빙 돈다. 옆에서 직원분이 열심히 알려줘도 반대로 빙빙 돌 뿐 제대로 핸들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탑승 시간이 끝나고 혼자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오는 그녀, 자신의 첫 범퍼카 탑승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다.)
가기 전날까지도 한 겨울에 놀이동산을 가는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게 잘 놀다왔다. 한해의 마지막을 아이에게 선물한 거 같아 정말 기쁜 마음이었다.
열심히 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를 타야하는데 의자가 좁았다. 짐은 많고 유모차는 접어야 하니 아내와 아이를 먼저 타라고 하고 나도 가까스로 탑승했다. 나는 아이에게 재밌었냐고 물어봤다. 그 대답 하나면 기꺼이 또 올만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겠다. 너무 재밌었다고 또 오자며 웃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나도 해맑게 웃었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마주 앉았는데 그녀는 저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왜 그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나에게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도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따뜻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옛날 아버지들은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히 투박했다. 그러다보니 같이 놀이동산 가서 노는게 하나의 로망과도 같은 꿈이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꿈이었는데 추운 겨울 그 힘든 짐을 끌고서도 아이가 재밌었다니 바보같이 웃는 나를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는 참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고인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같이 가고 싶었을까 그 큰 품에 안겨 어리광도 부려보고 재밌는 기구도 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의 순간들을 얼마나 느껴보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아내가 위로받았다는 표현에 나의 노력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녀도 추운 겨울에 힘들었을텐데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를 선물받았다고 했다.
아이를 통해 아내의 과거를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한해의 끝자락에 호기롭게 방문한 놀이동산은 아이의 현재와 아내의 과거 모두에게 뜻깊은 선물을 주며 뜻깊게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