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씻기거나 양치시키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일이 될 줄은 몰랐다. 한때는 쉽게 자신의 이를 내어주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자기 의사가 강해지면서 기본적인 씻기는 일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양치도 그중 하나인데 도서관에는 고맙게도 양치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많았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이렇다. 아이들이 양치를 하지 않고 입안에 충치균이 생기면서 이빨을 갂아먹기 시작한다. 아이는 통증을 느끼다가 치과에 가면서 깨끗이 낫고 양치를 잘하게 되는 대단히 바람직한 해피엔딩이다.
집에와서 책도 읽어주고 충분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당시에는 잘 알아듣는 것 같다가도 양치하자 라는 물음에 되돌아 오는 것은 싫어 라는 대답 혹은 요즘에는 대답도 안하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린다.
이날도 양치를 위해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혼내기도 싫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그냥 내 이빨이나 챙기자는 생각으로 양치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보통은 육아가 끝난 후 뭔가를 먹거나 맥주 한잔이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늦은 밤에 양치를 하곤 했다. 아이에게는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것이다.
아빠의 부름에도 대답없던 아이가 빼곰히 내가 양치하는 걸 지켜보기 시작한다. 처음 자세히 목격한 아빠의 양치질을 특별하게 바라봤을 수도 있다. 그러더니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자기가 칫솔에 치약을 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심 흥분했지만 못본채 하며 무심한 표정으로 계속 양치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위로 아래로 내려가며 앞니를 닦고 있는데 그게 재밌었는지 아이도 이내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 잘하지” 라며 관심을 요구한다.
끝내 무시하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는 순간 아이는 더 신이나서 나의 양치질을 보며 따라하기 시작한다. 물 헹굼도 전에는 잘 못하더니 오물오물 하는 것도 어설프지만 곧잘 따라한다. 마무리 양치만 조금 도와주고는 거의 스스로 양치질을 하며 마무리했다. 처음 벌어진 이 광경이 대단히 어이가 없었지만 이렇게 육아가 된다면 더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라고 할때는 코방귀도 뀌지 않던 아이가 내가 하기 시작하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확실히 하라는데로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한데로 따라한다.
아주 예전에 우연히 보았던 영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책을 좀 읽었으면 하는데 읽지를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비싼 책도 사주고 책을 읽으면 좋아하는 게임기도 사주고 해도 그때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강사님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질문하는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으시냐고 말이다.
아이가 책을 많이 보길 원한다면 내가 책을 많이 읽으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고 말로만 전하는 외침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배우지 못한다. 반대로 세상 쉽게 배울 수 있는게 부모의 행동이다. 아이들은 여과없이 부모의 좋은 점 나쁜 점을 흡수하며 자라난다. 그래서 아이에게 보이는 부족한 부분은 대부분 나의 못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시기의 육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충분히 설명했다면 자연스럽게 행동함으로 따라오도록 하면 된다. 양치를 시키고 싶으면 내가 양치를 하면 되고, 책을 읽히고 싶다면 내가 책을 보면 된다. 근거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아이는 관심이 없는 척 하다가도 부모의 행동에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게 뭐든 간에 따라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 행동에 조금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의 시작은 아이에게 좋은 소리를 하는 것보다 내가 올바른 행동을 잘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게 먼저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잘 보여주면 된다. 그뿐이다.
아이는 평생을 부모의 뒤에서 그를 보며 따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