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꾸는 한여름밤의 꿈
1. 감독·각본·편집: 숀 베이커(2024)
2. 마이키 매디슨 (Mikey Madison, 주연 아노라 역)
3. 제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수상
4. 영화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황금종려상 수상은 동의하기 어려움.
5. 어느 날, 클럽에 놀러온 철부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은 그곳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애니(아노라)를 만나게 됨. 둘은 거래로 일주일을 보내게 되고, 즉흥적으로 결혼까지 하게 됨. 이를 알게 된 이반 부모는 둘의 결혼을 무효화를 시켜버리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버림.
6. 남자의 밑바닥은 일용직 노가다꾼임. 반대로 여자의 밑바닥은 매춘부인데, 영화는 바로 애니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희망도 없이 살고 있음을 보여줌. 의외인 점은 생각보다 일할 때 밝고 활기차다는 점.
7. 애니에게 이반은 자신을 구원해줄 동아줄 같은 존재였을 수도. 흔히 이를 두고 신데렐라니 뭐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신데렐라와 확연한 차이가 있고, 심지어 신데렐라보다 더 밑바닥 인생이 애니인듯 보임. 신데렐라와 왕자의 관계는 사랑이지만, 애니와 이반은 욕망과 욕망의 관계로 이루어진 거래였다는 점임.
8. 여성의 흔한 판타지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거. 반대로 남자의 판타지는 화끈한 여성과 즐기는 건데, 이반의 욕망과 애니의 욕망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 만약 이반의 부모가 없었다면 둘은 의외로 잘 살았을 수도.
9. 이 영화는 이반이 아닌 애니와 이고르라는 남자와의 관계를 주시해서 봐야 함.
10. 이고르는 애니와 이반의 결혼 무효화를 처리하기 위해 온 3인조 중 한명이지만 일용직이라는 점. 아까 말했듯이 남성의 밑바닥이 일용직 노가다라고 했던 것처럼 이고르 역시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남자임.
11. 애니는 이고르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이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챔. 게다가 시종일관 자신을 챙겨주는 이고르라는 남자를 보면서 더 확신했을 수도.
12. 그래서 영화 말미에 이런 애니가 이고르에게 이런 말을 함.
"넌 날 강간했을거야."
"난 널 강간할 생각이 없어."
"왜?"
"뭐가, 왜야? 난, 강간 같은 건 안 하니까."
"아니, 그냥 니가 찌질한 쫄보여서 그런거야."
이 대화가 애니의 플러팅이라고 생각 못하는 진짜 연애 찌질이들이 많다는 걸 알았음.
13. 돈 거래 없이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준 남자가 아마도 이고르가 유일했을 수도. 그럼에도 아고르에게서 이반에게 받은 다이아 반지를 돌려받았을 때, 습관적으로 이고르와 섹스를 하려던 애니, 하지만 이내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에게서 많은 생각을 들게 되는데.
14. 애니의 마지막 눈물은 상대의 친절함마저도 거래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매춘부로서의 삶에서 한발짝도 못 벗어날 거란 어떤 느낌마저 든 것이 아닐까 생각함. 또는 아, 결국 로또는 물 건너가고 결국 이런 놈만...... 어쩌면 한탄의 눈물일 수도.
15. 아노라라는 이름의 뜻은 밝다라는 뜻인데, 이미 어두컴컴한 삶을 살아가는 애니는 이 희망적인 이름을 싫어함.
16. 이 영화는 애니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야 함. 그래서 아마도 남자들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도.
17. 영화는 이반과 애니가 결혼한다는 시점부터 예상 가능한 전개가 펼쳐지고 있어서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엔딩에서 보여준 애니의 뜬끔포 눈물이 이 영화를 살림.
18. 또한 필름 카메라를 써서 좀더 감성적인 연출을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 눈 내리는 풍경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런 장면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 줄곧 보여준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