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종이를 한 장 꺼낸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 위에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를 적는다
보내기는 어렵지 않은 이 편지가
꽉 채워서 보내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적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흘려보낸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한 자 한 자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적어야 한다
어떤 색일지는 그때그때 다를 것이다
그때의 일마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
여러 색으로 써진 편지가 될 테니까.
한 번 보내고 나면
이메일처럼 발송을 취소할 수 없다
보내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이미 흘러가버린 물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내고 나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다
너무나도 어려운 편지이기에
더욱더 정성스럽게
더욱더 세밀하게
한 자 한 자 채워나간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돌아보면 실수가 눈에 띈다
하지만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수정할 수 없지만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괜찮다
보내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굉장히 어려운 편지
내가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일 것이다
모두 겪은 일일 테니깐
읽으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지금은 모른다
웃을 수도 울 수도 화낼 수도 원망할 수도
모든 표정을 다 담고 있을 수도 있다
편지를 읽을 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생각나서 적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무언가에 비유하다 보니 술술 써졌습니다만, 그렇다 보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 써나 갈 생각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