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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Nov 26. 2020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ep-2

항상 긴 머리 아이였는데

그 아이 머리는 갈색 숏컷이 돼버렸다.

머리를 짧게 쳤어도 내 눈에는 예뻤고 새로웠다.    


여중에는 긴 머리 아이보다 숏컷을 친 아이들이 많다.

남녀공학에서 짧은 머리 여학생은 드물다.  특히나 숏컷을 한 여학생은

여성스러움은 남학생들에게 매력적인 무기가 되어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여중에서 여성스러움은 그저 그런 흔함이고, 유난을 떠는, 튀는 아이로 생각할 수도 있다.  

  

동성 여자아이들이  ‘ 귀엽다 , 애교 있다. ‘  인정을 해주는 경우는

여자가 보기에도 정말 예쁘고 귀여운 아이거나,

외모가 역설적인 아이가 웃기려는 목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너그러운 상대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  저게 미쳤나?  왜 저러냐?  제정신이 아닌가?  “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중학생들의 자아 존중감과 우정은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관계의 중요성은 인생 그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할 수도 있다.

중 2 병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도 머리를 짧게 잘랐고

나도 긴 머리를 댕강 잘라버렸다.    


역시나 그 아이는 반장, 그리고 학생 회장 후보로 나왔고 당선이 되었다.

그 아이의 엄마도 여전히 학교에 자주 출현하셨다.

1.2학년 모두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하교 길에서 자주 마주쳤다.

위 아래 동네라 하차하는 버스 정류장은 달랐지만 같은 버스를 타곤 했다.    

그 아이는 항상 아이들을 몰고 다녔고

초등학교 때는 말이 없고 내성적인 모범생 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원래 성격은 그렇지 않았는지 너무나 재미있고, 톡톡 튀는 회장이라는 소문들이 들려왔다.


올해 학생회장은 공부도 잘하지만 웃기고 개성 있는 아이라고

모든 아이들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같은 반이 되지 않았으므로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내 자존심이었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운동을 하느라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운동을 그만두자

나는 노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학기 초에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네가 좋다는 고백의 편지는 한 두통씩은 받았으며

중성적인 외모에 공부도 운동도 적당히 하는 무난한 아이였다.

진지한 구석도 있었지만 코미디를 너무나 좋아했고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라

월요일이면 내 주위로 애들이 몰려와 주말에 못 본 드라마나 개그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좀 더 과장되고 재미있게, 목소리도 실감 나게 거기에 액션까지 보태서 얘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아침 자습시간이고 뭐고 집중을 못했다.


분명 나에 대한 얘기도 들었을 텐데

그 아이도 나를 아는 눈치인데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가끔 눈만 한번 마주치면 그저 스윽 서로를 지나갔다.  


  

마침내 3학년 드디어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고

짝은 아니었지만 앞, 뒤로 앉게 되었다.    


“  안녕, 내 이름은 세희야.  너 이름은 뭐야?  ”

“  난 미영이라고 해.  ”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미영이는 반장이면서 회장이라 자주 교무실에 불려 가서 일을 했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내가 도와주곤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의 웃음코드와 생각이 너무나 비슷했고 관심 있어하는 소재도 다양했다.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도 둘이 발견해내면 특별하고 유의미해졌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면 밀린 얘기를 하느라 쉬는 시간, 자습시간, 청소시간 틈틈이 수다였고

심지어 공부시간에도 노트에 글씨들을 써가며 개미줄 처럼 수다를 떨었다.

끊임없이 공유하고 함께이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상대를 웃기는 것에 지지 않으려고, 이야기를 맞받아치는 것에 안달이었다.


주변 아이들은 우리를 이해를 하지 못해     

‘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 ’ 의아스러워했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둘 만이 통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고 특별하게 해 주는지    


집에 가서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다가도 미영이와의 수다나 일상이 계속 떠올랐고

미영이도 그랬는지 다음 날 등교를 해서 말하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웃어댔다.    


“  또 뭐? 무슨 얘기하려고?  왜?  뭔데?  ”    


완성된 문장이 아니어도 그저 단어만 얘기해도 웃음이 터졌으며 서로에 대한 기대와 경탄이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나는 미영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월요일까지 미영이를 보지 못하는 것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미영이 집까지 걸어가 대문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  누구세요?  ”

“  저 미영이 친구 세희인데요.  미영이 있어요?  ”

“  어, 그래.  ”    


미영이 어머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아무 연락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내가 자기 집에 들어오니 미영인 너무 놀라 나를 쳐다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미영이 어머니도 옆에서 우리 둘을 보고 웃고 계셨다.    


“  너, 우리 집에 왜 왔어?  ”

“  나?  너랑 놀려고.  ”

“  그래?  그럼 이리 와봐. 내가 우리 둘째 오빠가 그린 만화 보여줄게.  ”    


미영이는 오백 원짜리 연습장을 가지고 왔다.    


“  이게 뭐야?  이거? 이거? 이거  진짜 너희 오빠가 그렸어?  진짜야?  ”

“  응, 진짜 웃기지?  ”    


미영이의 오빠의 상상력과 기발함은 상상초월이었다.

둘째 오빠가 자기도 모르게 미영이에게 개그 트레이닝을 시킨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집안의 개그 원조는 미영이 어머님이셨다.   

 

미영이 어머님과 둘째 오빠, 미영이는 뛰어난 관찰자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정부 아주머니, 가끔씩 살러오는 삼촌들

미영이네 집에는 사람들이 드글드글 했다.


좋은 관계도 있었지만

예전의 고부관계들이 그랬듯

미영이 어머님은 까탈스럽고 꼬장꼬장한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가셨고

장가도 가지 않은 삼촌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몇 달식 살다가 다시 충청도 고향으로 내려가곤 했다.    

개그맨들은 관찰력이나 공감 능력, 사람의 심리를 읽는데 탁월하다.


미영이 어머님과 둘째 오빠 미영이 셋은 자연스레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흉내 내면서

스트레스와 고충을 웃음으로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그 뒤에는

말은 없었지만 다정하고 우직하셨던 미영이 아버님이 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계셨다.


우리 집에는 나와 개그를 나누거나 얘길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미영이네 집에 가서 어머님과 오빠를 보니     


‘  아 물 만난 물고기라는 말이 이거구나.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웃으며 살아가다 보면

   특히나 그들에게 유머감각이 탁월하다면 웃음 유전자가 강화되겠다.  ‘    



미영이네 집에서도 타인이지만 점차 나의 개그 능력을 신뢰해주기 시작했고

나를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미영이가 없어도 부엌에서 미영이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어도 재미있었고

둘째 오빠는 나에게 너무나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둘째 오빠의 개그는 상당히 컬트적이었다.

중,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소나기나 별, 마지막 잎새, 동백꽃 등등 모든 여자 주인공을 미영이로 만들어 재해석해 명작으로 탄생시켰다.

오빠가 재창조해낸 작품들의 오리지널을 알고 있었으므로 재미는 배가 되었고

우리만 알아서는 안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학교로 가지고 와서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현재의 웹툰과 내용면에선 뒤지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신선했다.

우리는 만화의 뒷부분을 상상해서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오빠의 까탈스러운 심사에 통과하면 스토리의 결말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미영이와 우리는 서로의 집을 자주 오가기 시작했고

낮에 그렇게 수다를 떨었어도 밤이면 또 통화를 했다.

금요일 밤이면 종종 같이 잠을 잤으며 방학에도 만남은 계속되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미영이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를 기다리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우리 둘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홀수

불안정한 숫자

둘에서 셋으로


‘ 선희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키가 170이 넘었고 덩치가 좋은 아이


반에서 키가 가장 커서 눈에 띄는 아이였지만

다른 초등학교를 졸업해 알지도 못했고, 얘기를 나눠보지도 않았다.   

내 관심권 밖의 아이     

선희는 무척이나 낯을 가리고 얌전하고 소심했다.


하지만 짝이 되어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나는 선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선희는 유머의 숨은 실력자, 재야의 절대 고수였다.   

 

미영이와 나 둘째 오빠의 개그가 컬트적이라면

선희의 개그는 슬랩스틱이었고, 표정과 모사가 뛰어나 코미디언 못지않았다.

낯설었지만 새롭고 재미가 있어

미영이와 나 둘에서

미영이, 선희 나 셋으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하교 길 버스 안에서 미영이는 나에게 짜증을 버럭 냈다.    


“  왜 짜증을 내?  ”

“  나 지금 생리 중이잖아.  내가 배가 아프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너는 선희랑 노느라 나를 보지도 않고  

   나 너무 아파.  집까지 데려다줘.  “

“  알았어.  ”    


미안한 마음에 미영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선희랑 얘기를 나누느라 나는 미영이를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    


“  세희야,  미영이는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

“  아니야,  미영이가 너 재미있다고 자주 얘기하는 데.  ”

“  너랑 내가 얘기를 하고 있으면 미영이 표정이 안 좋아.  나 좀 눈치가 보여.

   너랑 미영인 원래 친했으니까 둘이 잘 지내.

   내가 왠지 너희 둘 사이에 끼어든 것 같다.  “

“  그런 거 아닌데.  셋이 놀면 더 재미있잖아.  ”

“  아니야.  나는 다른 친구도 있으니까 너랑 미영이랑 잘 지내.  

   어차피 나는 상고로 진학도 하고, 너랑 미영이는 진로도 비슷하잖아.  ”    


만약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선희의 재능에 푹 빠져있었으니까

선희의 말을 듣고 미영이를 잘 보니

내가 선희랑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미영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  선희 말이 맞나 보네.  ’      


미영이가 달가워하지 않자 나는 선희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선희도 좋은 친구고 재미있었지만 미영이 만큼은 아니었다.

다시 미영이와 나는 가까워졌고 곧 관계는 회복되었다.   

 

우리는 졸업을 했고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원래는 같은 고등학교에 가야 하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미영이의 어머니가 고교 위장전입으로

학군이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킨 것이다.    


고등학교가 달라지자 우리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상계동으로 이전 예정이라

학생들은 이전한 학교로 다닐 수도 있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도 있었다.

엄마와 나는 전학을 신청했다.    


뺑뺑이로 새로운 학교를 배정받았는데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미영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  미영아, 나 너희 학교로 전학 가게됐어.  "

"  정말?  진짜 잘 됐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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