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연우는 집 앞에 서 있는 강우를 발견했다.
“ 오빠, 여기는 왜? ”
“ 너 동빈이랑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니? ”
“ 아니에요.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에요. ”
“ 그래, 너 변함없니? ”
“ 네? 뭐가요? ”
“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항상 졸랐잖아? ”
“ 난 언제든 상관없어요. 오빠만 결정하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른 내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요.
너무 외로워서 나만의 집을 만들고 싶어요. “
“ 그래, 알았다.
그렇게 어른들한테 말해 놓을게. “
“ 오빠, 화란이 언니랑은 무슨 사이예요? ”
“ 그게 무슨? ”
“ 동빈 오빠가 그러던데
오빠가 화란 언니랑 깊은 사이라고 “
“ 아니야, 그건 동빈이가 오해한 거야.
화란 누나가 근무하는 회사에 도움이 필요해서 몇 번 만난 적 있어
우리 학교에도 와 준 적 있고
그걸 보고 동빈이가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동빈이가 너를 정말 좋아하긴 하나보다.
너와 내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하는 걸 보면
그런다고 내가 변하지는 않지만.
연우야
내가 냉랭하고 살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지?
나란 남자는 원래 그래.
하지만 결혼이란 걸 하고 나면 나도 변하게 될 거야.
노력해볼게. 그래도 괜찮으면 하자. 결혼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네가 동빈이 말을 믿는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그래도 괜찮아. “
“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갑자기 좀 복잡해져서 “
“ 그래, 얼른 들어가서 쉬어. 피곤할 텐데. “
연우는 강우를 뒤고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연우는 동빈에게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우에게 항상 고분고분하고 눈치를 보던 연우였는데
전처럼 연우를 컨트롤하기 쉽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고궁에 있던 연우와 동빈을 보던 순간
강우의 마음에는 작은 불씨가 피어났다.
그것은 화란과 지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자신에 대한 동빈의 도발
동빈을 보면서 미소 짓던 연우
잠시 생각을 하다 강우는 화란에게 전화를 했다.
“ 화란아
아무래도 연우가 동빈이 말을 믿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
“ 내일 동빈이 학생이랑 둘이서 술 한잔 해.
그 후에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해 놓을게. “
“ 알았어. ”
“ 걱정하지 말고 자.
그 어리숙한 촌놈 걱정은 하지 말고
내일이면 깨끗이 정리되고, 우리 계획대로 될 테니 쉬어. “
“ 그래 ”
강우는 동빈의 하숙집으로 전화를 했다.
“ 동빈아, 내일 술 한 잔 하자. ”
“ 싫어. 너랑 할 말 없다. ”
“ 연우 얘기야. 내일 만나서 얘기해보자.
나도 생각이 복잡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너랑 의논을 해보고 싶어. “
“ 그래, 그럼 내일 6시에 보자. 학교 앞 민속주점에서 “
강우가 민속주점으로 갔을 때
동빈은 이미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 왔니? ”
“ 그래. ”
“ 연우한테 말은 했어? 어떻게 할 거야? “
“ 넌 무슨 생각이야? ”
“ 난 연우를 좋아하지. 고백도 했다. 아니 고백이라기보단
너 말고 다른 남자를 보라고 했지. 그게 나라면 좋겠다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연우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만 그걸 모르고 있어. 바보같이 “
“ 단단히 빠졌구나 ”
“ 그래, 그런가 보다. 처음이다. 나도 이런 감정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모든 걸 말하든가 아니면 화란이라는 여잘 정리하고 연우만 보든가
하나만 선택해.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
“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난 연우랑 결혼할 거야. 화란이도 계속 만날 거고 “
“ 너 왜 만나자고 했어?
고작 이런 소리를 하려고 나오라고 한 거니? “
“ 너한테 말해주고 싶었어.
이제 얼마 후면 연우와 나는 결혼을 하게 될 거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거고
네 덕분에 좀 더 서둘러 진거야.
고맙다고 해야 하나? 유감이라고 해야 하나?
상관없다. 아무래도
동빈아
정신 차려. 연우는 너랑 맞는 여자가 아니야
너랑은 다른 사람이고, 다른 물에 사는 물고기야.
포기해. 이 말해주려고 나왔다. “
“ 가라. 보기 싫다. 너 ”
“ 그래, 간다. ”
강우는 주점의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짤랑짤랑하며 문에 달린 풍경이 울렸다.
한 남자가 주점 안으로 들어와 동빈의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다.
“ 아주머니 여기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주세요. ”
“ 동빈 학생, 저녁은 먹었어? 빈속에 먹으면 금방 취할 텐데. ”
“ 이거 하나만 더 마시고 갈게요.
아무래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요. “
“ 그래, 딱 한 주전자만 더 마시고 가. ”
“ 네, 감사합니다. ”
“ 저 여기 합석해도 됩니까? ”
“ 네? 누구신지? ”
“ 아, 저도 혼자 마시다 얘기라도 하면서 마시고 싶어서요. ”
“ 죄송합니다. 저는 혼자 마시고 싶네요. ”
“ 아 그래요? 미안해요.
오랜만에 학교에 오니 기분이 우울해서요.
혼자 마시면 아무래도 취해버릴 것 같아서
5년 전 오늘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가 결혼식을 했던 날이에요.
그 날 갈까? 말까? 망설이다 여길 와서 술을 진탕 마셨죠.
다음 날 깨어나 보니 늦은 아침인데.
친구들이 그 여자는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전화로 알려주더라고요.
다 꿈만 같았어요. 그녀와 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학생을 보니 왠지 그때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같이 마시고 싶더라고요.
그래요. 혼자 적당히 마시다 가요. “
“ 앉으세요. 여기 같이 드시다 가세요. “
동빈은 낯선 사내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동빈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지나간 사랑을 얘기했고
동빈은 그의 말을 듣다 연우를 떠올렸다.
화장실에 다녀온 동빈은
마지막 잔이라며 건네주는 그의 잔을 받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 여보세요
응, 완전히 뻗어버렸네. 내일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할 거야.
어디?
응 알아, 그 호텔
거기 스위트 룸? 그럼 키는 어떻게 전해줘?
로비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 전화를 받으면 되는 거야?
알았어. 데리고 나갈게. “
“ 신애야, 나야 화란이 ”
“ 어, 언니 웬일이에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
“ 신애야, 너 동빈 학생 알고 있지? ”
“ 언니가 어떻게 그 사람을? ”
“ 네가 동빈 씨 좋아하는 거 알아. 동빈 씨는 연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
갑자기 연우의 얘기를 들으니 신애는 연우에 대한 질투에 휩싸였다.
“ 너 연우한테 동빈 씨 뺏길 거야? ”
“ 네? ”
“ 동빈 씨 미라클 호텔 스위트룸에 있는데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로 말이야.
지금 가면 동빈 씨 네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어떻게 할래?
네가 만약 간다고 하면 내가 너한테 동빈 씨가 있는 룸의 키를 줄 수 있어.
아니라면 그냥 두고 “
신애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그래, 그럼 넌 관심 없는 걸로 알고 ”
“ 아니에요. 언니. 그 호텔 키 주세요. “
“ 미라클 호텔 로비로 가서 내가 알려주는 번호로 전화를 하면
한 남자가 너한테 룸 키를 줄 거야.
그걸 받으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다 하면 돼.
동빈이란 남자는 어리숙하고 순진해서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절대 버리지 않을 타입이야.
그게 누구라고 해도 말이야.
잘해봐. 내 보기엔 꽤 괜찮은 남자야. “
“ 알았어요. 고마워요 언니 ”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목이 마른 동빈은 잠에서 깼지만
아무것도 마실 수 없었다.
자신이 일어난 곳은 그의 하숙방이 아닌 낯선 호텔이었고
누워있던 침대 위에 한 여자가 잠들어 있었다.
너무 놀라 정신이 아득해지고 그 여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다
동빈은 모든 것이 끝나버렸음을
술을 먹자던 강우의 전화는 계획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신애
강우의 동생 신애가 동빈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